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경제정책과 관련 복지와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또 한일 관계 등 외교 현안에 대해서는 여러 안건을 한 테이블에 올려놓고 해결하는 ‘그랜드 바겐’ 방식으로 해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윤 전 총장은 29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기념관에서 성장 제일주의를 추구하지는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복지와 성장 중 어떤 것에 방점을 찍고 있느냐’는 질문에 “성장을 해야 복지도 가능할 것 아니냐는 생각에 대해서는 조금 거리를 두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우리 사회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유지하려면 성장만 갖고는 되지 않는다”며 “낙오되거나 다른 이유로 인해 취약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챙겨야만 지속 가능한 성장에 동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범보수 진영의 유력 대권 주자로 분류되지만 성장 제일주의의 가치만 내세우지는 않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른바 ‘따듯한 보수’의 입장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윤 전 총장은 또 “외적이 침입했을 때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는 혼자 지킬 수는 없다”면서 “우리 모두 힘을 합쳐야 지킬 수 있는 것처럼 복지라는 것도 자유 시민의 권리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외교 철학과 관련해서는 ‘실사구시’의 실용주의를 강조했다. 그는 한일 관계와 관련해 “외교는 실용주의에 입각해야 하는데 이념 편향적인 죽창가를 부르다가 여기까지 왔다”며 “수교 이후 가장 열악해지고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졌다”고 진단했다.
실제 한일 관계는 지난 1965년 수교 이후 가장 악화된 상황으로 평가받는다. 이달 영국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간 약식 정상회담이 논의됐지만 최종 무산된 것이 단적인 사례다. 한일 양국은 회담 무산과 관련해 서로 상대방 탓이라며 비난했다. 우리 정부는 일본이 ‘동해영토 수호 훈련’을 트집 잡으며 일방적으로 회담을 취소했다고 주장한 반면 일본은 “회담이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한국 정부가 사실에 반하는 주장을 한다”고 반박했다. 외교 전문가들은 현재 한일 양국 모두 정상적인 외교 질서가 적용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윤 전 총장은 한일 관계를 풀 해법으로 ‘그랜드 바겐’을 제시했다. 윤 전 총장은 “이 정부 들어 망가진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문제 등과 함께 한일 간 안보 협력, 경제문제 등을 하나의 테이블에 올려놓고 그랜드 바겐을 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한미 관계처럼 한일 관계도 국방·외무 등 2+2, 3+3 같은 소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는 그간 문재인 정부가 한일 문제와 관련해 ‘피해자 중심주의’를 주장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문재인 정부는 한일 관계에 있어 강제징용, 위안부 등 일제 만행의 피해자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일본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등으로 피해 구제 문제는 모두 종결됐다고 보고 있다.
윤 전 총장은 이에 대해 과거사와 경제·안보 문제를 다 같이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논의하자는 해법을 내놓았다. 한일 양국이 여러 의제를 꺼내놓은 뒤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식으로 하면 결국 의견 합일을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이와 관련해 “일본은 과거사 문제와 관련 한국 측이 배상 요구를 중단하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며 “한일 양국이 과거사 문제에만 집중한다면 관계 개선은 어려울 테지만 경제·안보 등 여러 의제를 한 테이블에 올려 서로 양보할 부분을 찾아내는 식으로 접근한다면 해법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