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인수합병(M&A)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은 주인공은 사모펀드(PEF) 운용사다. 풍부한 유동성에 힘 입어 사상 최대 규모의 블라인드 펀드와 프로젝트 펀드를 결성해 국내 M&A 시장의 흐름을 사실상 주도했다. 한 중형급 운용사는 2조 원 규모의 크로스보더(국경 간) 거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여파로 기업들이 주춤하는 사이 PEF 운용사는 기업들의 재무구조 및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투자에 참여해 실속을 챙겼다. 과점 시장의 혜택을 누려온 가업(家業)을 대상으로 거래를 성사시킨 한앤컴퍼니의 거래는 화제가 됐다. 시가의 두 배에 준하는 가격을 제시하며 남양유업 오너 일가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오는 데 성공했다.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PE)는 H&B 분야의 압도적 1위 사업자인 CJ올리브영의 소수 지분 투자에 참여해 CJ지주에 이은 2대주주로 올라섰다. 보험·은행 등 전통 금융업에 참여했던 MBK파트너스는 스페셜시추에이션(특수상황투자) 전용 펀드로 케이뱅크에 투자하며 포트폴리오를 확장했다.
매물을 시장에 쏟아내고 있는 핵심 주체 역시 PEF다. IMM프라이빗에쿼티는 W컨셉과 대한전선을 각각 신세계와 호반산업을 상대로 매각에 성공했다. 올해 M&A 최대어로 꼽히는 한온시스템도 한앤컴퍼니가 투자 회수를 위해 내놓은 매물이다. 신세계그룹과 SK그룹 등이 인수를 검토 중인 보톡스 제조 기업 휴젤은 글로벌 PEF 운용사 베인캐피털의 포트폴리오다. E&F프라이빗에쿼티가 보유하던 환경 기업 새한환경은 SK에코플랜트가 높은 가격에 인수했다. 이 밖에도 유니슨캐피탈(에프앤디넷)과 스카이레이크에쿼티파트너스(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등 PEF가 매각을 추진 중이다.
‘루키’의 등장도 눈길을 끌었다. 전략적투자자(SI) 없이 2조 원 규모의 크로스보더 거래를 성사시킨 5년 차 PEF 운용사 센트로이드인베스트먼트가 그 주인공이다. 센트로이드는 글로벌 골프 용품 업체 테일러메이드의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돼 국내외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인수 자금을 모집하고 있다.
PEF는 국내 M&A 시장에서 빠른 속도로 확장해왔다. 최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결성된 신규 경영 참여형 PEF는 215건으로 집계됐다. 이들 펀드가 연기금·공제회 등 주요 기관투자가 등 출자자(LP)로부터 지난 한 해 동안 모집한 자금은 총 18조 원에 이른다. 펀드 수와 결성 규모 모두 사상 최대 규모다. 팬데믹의 여파로 다수의 기업이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해 소극적으로 투자에 참여한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올해도 파죽지세의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올해 1분기 등록된 신규 PEF 수는 56건, 결성액은 3조 8,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미 지난해 결성액의 20%를 넘어섰다. 2분기에도 PEF 운용사가 주도하는 크고 작은 M&A 거래가 진행되고 있다. 더불어 국민연금공단을 필두로 주요 연기금 및 공제회가 사모 대체 출자 사업을 위한 위탁 운용사를 선정 중이어서 PEF가 활용할 수 있는 미소진자금(드라이파우더)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