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쓰레기 재활용 시장이 국내 화학업계의 미래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바람에 맞춰 재생 플라스틱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판단에 치열한 시장 선점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실제 코카콜라가 오는 2030년까지 용기의 50% 이상을 재생 원료로 만들겠다고 선언하는 등 재생 플라스틱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버려진 플라스틱을 수거해 씻은 다음 녹여 다시 사용하는 물리적(기계적) 방식에서 나아가 아예 최초 플라스틱 원재료 상태로 되돌리는 화학적 재활용 방식에 업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SK·롯데를 필두로 LG·한화 등이 폐플라스틱 화학적 재활용 기술의 미래 가치를 눈여겨 보고 관련 비즈니스에 뛰어들고 있다.
물리적 재활용에서 화학적 재활용으로 진화
‘폐플라스틱 재활용’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물리적 재활용을 의미할 때가 많다. 페트(PET)와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등의 플라스틱을 수거해 물성별로 분류하고 이를 잘게 쪼갠다. 그 다음 열을 가해 녹였다가 처음 생산되는 플라스틱에 일정 함량 만큼 첨가해 재활용하는 방식이다.
기술 장벽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화학 업체들이 이 같은 물리적 재활용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30일 삼성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플라스틱 재활용 시장에서 물리적 재활용 점유율은 93.4%에 이른다. 다만 재활용을 하면 할수록 본래의 물성을 잃기 때문에 선순환이 무한하지 않다는 점이 태생적 한계다. 식품 용기로 사용하는 것도 금지돼 있다.
이 같은 한계를 일거에 해소하는 방식이 화학적 재활용이다. 폐플라스틱을 화학적으로 완전히 분해해 원료 상태로 되돌리는 방식이다. 물리적 재활용이 제품을 폴리머(polymer)까지만 되돌린다면, 화학적 재활용은 폴리머의 전 단계인 모노머(monomer)로 되돌린다. 주요 화학 업체들이 화학적 재활용 방식에 눈독 들이며 상업화를 시도하는 이유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궁극적으로 화학적 재활용 방식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SK·롯데 이어 LG·한화도 속속 진출
현재 국내에서 화학적 재활용이 상업 생산된 사례는 아직 없다. 그럼에도 SK와 롯데 정도가 화학적 재활용 분야에서 구체적 투자 계획을 잡고 실행에 옮기는 등 가장 앞서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화학적 재활용 기술은 크게 열분해와 해중합 방식이 있는데 SK는 외부 업체와의 협력을 통해 이 두 가지 기술에 대한 사용 권한을 간접적으로 확보했다. SK종합화학이 지난 1월 열분해 기술을 보유한 브라이트마크사(社)와 협력하기로 했고, 최근에는 해중합 기술을 보유한 캐나다 루프 인더스트리에 지분 투자를 했다. SK종합화학은 루프 인더스트리 지분 투자를 통해 이 회사가 보유한 기술을 활용해 생산한 재생 플라스틱에 대한 아시아 지역 판매권을 확보했다. 이들은 오는 2030년까지 아시아 4개 국가에 재생 페트 생산 설비를 건설할 계획이다.
SK케미칼은 해중합 기술과 생산 설비를 보유한 중국 수예(Shuye) 지분 10%를 사들여 화학적으로 재활용된 원료를 연간 2만 톤 사들일 수 있는 권한을 확보했다. 올 3분기에는 수예를 통해 들여온 재생 플라스틱 원료를 활용해 폴리에스터 원사를 뽑아낼 계획이다. 폐페트를 화학적으로 재활용해 원사를 생산하는 국내 첫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SKC는 열분해 기술을 보유한 일본 벤처기업 칸쿄에네르기와 상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해중합 방식의 화학적 재활용 공장을 울산에 직접 짓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오는 2024년까지 1,000억 원을 투자하고 향후 2030년까지 울산 페트 공장 전체를 재생 페트 공장으로 탈바꿈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롯데케미칼도 자체 해중합 기술은 보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외부 업체 라이선스를 활용하고 있다.
이미 수년 전부터 폴리카보네이트(PC)와 고부가 합성수지(ABS)를 원료로 물리적 재활용 사업을 하고 있는 LG화학은 화학적 재활용 기술을 자체 개발하고 있다. 한화솔루션도 열분해 방식의 화학적 재활용 기술을 오는 2024년까지 개발해 내재화한다는 방침이다.
폐플라스틱 가격 1년새 40% ‘껑충’
플라스틱 재생 소재를 쓰려는 기업들이 늘면서 원재료가 되는 폐플라스틱 가격이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국제유가 상승 영향으로 원유를 기반으로 하는 석유화학 제품 가격 자체가 뛴 탓도 있지만, 이와 함께 공급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폐플라스틱 수요가 급증한 영향도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내년부터는 플라스틱 폐기물 수입이 전면 금지되는 만큼 가격 추가 상승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 판단이다.
환경부 자원순환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6월 ㎏ 당 289.9원이던 압축 폴리에틸렌(PE) 전국 평균 가격이 올해 6월 350.4원을 기록했다. 1년 새 가격이 20.9% 뛰었다. 압축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ET) 가격은 같은 기간 215.1원에서 301.9원으로 40.4% 급등했다. 지난 2017년 8월 305.6원 이후 4년여 만에 최고치다. 압축 폴리프로필렌(PP) 가격도 1년 동안 262.6원에서 319.6원으로 21.7% 상승했다.
수거된 플라스틱을 정육면체 형태로 찌그러뜨린 압축 폐플라스틱 가격이 껑충 뛰면서 이를 분쇄해 세척·건조한 1차 가공물인 재생 플레이크(flake) 가격도 비슷한 상승률로 올랐다. 화학업계의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국면에서 외부 활동이 제한되면서 페트병 소비가 줄었고, 이 때문에 수거할 페트병이 줄어 결과적으로 재생 페트 가격이 올랐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화학업계는 재생 플라스틱 가격이 더욱 오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가 국내 플라스틱 폐기물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지난해 6월부터 페트 등 4종의 플라스틱 수입을 금지했고, 내년부터는 모든 플라스틱 폐기물로 대상을 확대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분리 배출된 폐플라스틱 재활용 비율을 현재 54%에서 오는 2025년까지 70%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올해 초부터 국가 간 폐기물 수출입을 막는 바젤협약도 발효됐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폐플라스틱 재활용 비율이 낮다고 하지만 쓸 만한 A급 폐기물은 공급이 제한적”이라며 “재활용이 용이한 폐기물에 대한 프리미엄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