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62년 출범한 옛 대한석유공사(유공)를 모태로 하는 국내 최대·최초 정유 기업인 SK이노베이션이 오는 2050년 이전에 탄소 순배출 제로(넷제로)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은 “탄소 기반 비즈니스가 근본적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며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거센 위협을 새롭게 도약하는 기회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SK이노베이션은 석유로 대표되는 화석연료 기반 사업 비중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친환경 사업 비중을 극대화할 계획이다. 2016년 기준으로 6%에 불과한 친환경 그린 자산 비중을 2025년 70%로 대폭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탄소에서 그린으로’ 정체성 바꾼다
1일 SK이노베이션이 ‘스토리 데이’에서 향후 5년간 친환경 그린 사업에 투자하겠다고 밝힌 30조 원은 최근 5년간 전체 투자 금액의 두 배 수준이다. 전기차 배터리 18조 원을 비롯해 배터리 핵심 소재인 분리막에 5조 원, 폐플라스틱 100% 재활용 등 그린 사업 전환에 7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김 총괄사장은 “배터리 사업을 중심으로 연관 산업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키겠다”고 말했다.
전기차 배터리 18조 원 투자는 SK이노베이션이 글로벌 톱티어 배터리 업체로 급부상할 수 있는 날개를 달아줄 것으로 전망된다. 2017년에야 본격적인 전기차 배터리 투자에 나선 SK이노베이션은 시장에서 후발 주자로 통한다. 글로벌 배터리 생산 능력은 40GWh로, LG에너지솔루션(120GWh)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SK이노베이션은 과감한 배터리 투자를 통해 생산 능력을 2025년에 현재의 다섯 배 규모인 200GWh로 늘리고, 2030년에는 500GWh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는 순수 전기차 약 712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지난해 전 세계에서 판매된 전기차 수가 294만 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공격적인 목표치다.
SK이노베이션은 이미 전기차 배터리 수주 잔액이 1,000GWh를 넘어섰다며 수익 구조도 빠르게 개선될 것으로 기대했다. 금액으로 치면 130조 원 규모다. 전 세계적으로 수주 잔액이 1,000GWh 이상인 곳은 중국 CATL과 LG에너지솔루션 정도로 알려져 있다. SK이노베이션이 수주 잔액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업이익 흑자 전환도 내년이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동섭 배터리사업 대표는 “내년 말이면 월 판매량 기준으로 세계 3위에 올라설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수주와 매출 모두 글로벌 톱3 업체로 도약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분리막·리사이클링 사업도 박차
분리막 사업 계열사인 SK아이이테크놀로지(SK IET)도 5년간 5조 원을 투자해 생산 능력을 현재 14억 ㎡에서 2025년 40억 ㎡로 확대할 계획이다. 분리막은 양극재·음극재·전해질과 함께 배터리 4대 핵심 소재로 꼽힌다. SK IET는 이미 중국과 폴란드에서 동시다발적인 증설 작업을 하고 있다. 올해 3,000억 원 수준인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이 2025년에는 1조 4,000억 원까지 올라설 것으로 보고 있다.
‘제2의 분리막’으로 낙점한 폐배터리 재활용(BMR) 사업도 2024년 상업 생산에 들어간다. ‘배터리에서 배터리를 캔다’고 불리는 BMR 사업은 버려진 배터리에서 수산화 리튬을 회수하는 사업이다. 수익성 측면에서 뛰어나다는 평가다. SK이노베이션은 54건의 특허를 출원해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다고 강조했다.
폐플라스틱 화학적 재활용 등 기존 사업을 그린화하는 데도 7조 원을 투자한다. SK종합화학은 친환경 제품 비중을 2023년 50%, 2027년에는 100%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SK이노베이션 차원에서 배터리·분리막 사업은 2035년 넷제로를 조기 달성하고, 전체적으로는 2050년 이전까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나경수 SK종합화학 사장은 “2025년이면 그린 사업이 전체 이익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