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미래세대가 짊어질 거품

◆최형욱 금융부장

투자 버블, 경제위기 요인이지만

신기술 동반땐 혁신 마중물 역할

집값·재정 등 文정부 만든 거품은

성장동력만 훼손…미래세대에 짐





“금융 당국은 비트코인 가격이 결국 ‘제로(0)’에 수렴할 것으로 봅니다. 소비자 피해를 줄이려면 가능한 한 빨리 거품을 터트려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다만 암호화폐거래소 운영 금지와 같은 강공책을 폈다가 경제학사에 무능한 관료로 기록될까봐 주저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석에서 기자가 암호화폐 규제의 장기적 그림이 뭐냐고 묻자 한 당국자가 털어놓은 속내다. 만에 하나 암호화폐가 세상에 없던 메가 트렌드를 촉발할 수도 있는데 섣불리 때려잡았다가 정책 실패 사례로 남아 두고두고 욕을 먹을까봐 걱정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도 아닌 기자로서는 암호화폐의 미래를 더 모르겠다. 하지만 정부 보증이나 민간 은행의 신용 창조가 뒷받침되지 않고 기초 자산도 없는데 기존 통화를 대체할 것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가치 척도, 교환 수단, 지불 수단 등과 같은 화폐의 본래적 가능성이나 공공성이 사라진다면 해외로의 자금 유출, 자금 세탁, 투기 등의 역기능만 남는다. 온라인 공간의 유희 수단에 불과했던 비트코인이 갑자기 인기를 끌었던 것도 2013년 키프로스 구제금융위기 때 돈세탁 수단으로 악용되면서부터다. 과연 각국 정부가 국가 시스템을 위협하는 이런 가상자산을 그대로 내버려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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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문명 발전은 중앙화·집중화·조직화·융복합의 역사였다는 통념에 비춰주면 탈(脫)중앙화라는 비트코인의 슬로건은 너무나 낯설다. 화폐 역시 부족들의 조개 껍데기를 시작으로 금과 은, 어음과 수표, 동전, 지폐를 거쳐 미국 달러화라는 글로벌 기축통화 출현으로 발전했다. 흩어져 있던 유통·소비·금융·언론 등도 플랫폼으로 집중되고 있다. 이처럼 기자의 얄팍한 지식으로는 신기술 하나가 사회 진보의 패턴 자체를 뒤바꾼다니 이해가 잘 안 된다. 하지만 앞서 금융 당국자의 말대로 비트코인이나 블록체인 기술이 나중에 세상을 바꿀지 누가 알겠는가.

다만 경제 거품이 위험한 이유는 개인 파산 등 경제 부담을 넘어 때로는 한 나라마저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1630년대 중반 네덜란드의 튤립 거품이 단적인 사례다. 거품이 터지자 네덜란드는 만성 디플레이션에 빠졌고 그 여파로 자본이 신흥국 영국으로 이동하면서 강대국 지위를 잃고 말았다. 18세기 프랑스는 미시시피 버블 이후 재정 건전성 훼손, 물가 폭등, 화폐 신뢰성 추락 등으로 경제가 붕괴되더니 결국 대혁명을 초래했다.

거꾸로 역사적 버블들은 경제 위기를 거쳐 뜻밖의 진보를 불러오기도 했다. 국내 네이버와 카카오, 미국의 구글·페이스북 등은 2000년 정보기술(IT) 버블의 부산물이다. 당시 거품을 우려했을 정도로 돈이 몰리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빅테크 출현이나 인공지능(AI) 혁명은 상당히 늦어졌을 것이다. 1840년대 영국의 철도 거품은 은행 파산 등을 불러왔지만 철도라는 기반 시설을 남기며 생산성을 높였다.

사기성 금융 기법에 놀아난 거품은 국민 경제에 부담만 줬지만 실물경제와 신기술에 대한 투자 거품은 미래 성장 동력을 남긴 셈이다. 최근 수출 등 경제 회복도 이전 정부가 뿌려 놓은 씨앗 덕분이다. 박정희 정부는 자동차·반도체·조선 등 전통 제조업에 과잉 투자했다가 당시 경제 위기를 맞았지만 자식 세대에 먹거리를 남겼다.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의 글로벌 경쟁력도 김대중 정부의 유산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사회 곳곳에서 커지고 있는 각종 거품들은 어떤가. 임기 초반 내세웠던 소득 주도 성장과 증세 없는 복지라는 신종 경제 이론은 성장 동력만 훼손시켰다. 혁신 성장의 구호는 난무하지만 신산업 육성을 위한 과감한 투자나 규제 완화, 이해관계자 간 갈등 조정 등은 보이지 않는다. 기성세대는 집값 급등, 재정 적자 등의 거품으로 흥청망청하면서 국민연금 부실화 등과 같은 짐만 물려주고 있다. 도대체 현 정부는 미래 세대에 어떤 유산을 남기고 싶은 걸까./choihuk@sedaily.com


최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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