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노조가 올해 임금 및 단체교섭 요구 사항 중 하나로 ‘산업 전환에 따른 미래 협약’이라는 것을 포함시켰다. 친환경 자동차와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로보틱스 같은 현대차가 추진하는 미래 사업의 주요 부품과 완성품을 반드시 국내에서 생산하겠다고 약속하라는 요구다. 기존 내연기관차 대비 부품 수가 적은 전기·수소차 보급이 확대되면서 조합원들의 고용 불안이 커지자 이에 대한 해결책을 국내 투자 명문화로 제시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노조의 이 같은 요구가 글로벌 생산 거점화를 통해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자동차 산업이 추구하는 방향에 역행하는 과잉 요구라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주요국들이 전기차 배터리와 완성차 생산 시설 유치 전쟁을 벌이고 있는 글로벌 상황과도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재 내연기관차 산업처럼 미래차 산업에서도 노조가 칼자루를 쥐겠다는 것”이라며 “회사 경영권을 위협하는 노조의 이기주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자동차업계가 요구하는 정년 연장은 고령화라는 화두와 맞물려 대선 주자들이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슈다. 민주노총 산하 완성차 3사(현대차·기아·한국GM) 노조는 현재 60세인 정년을 국민연금 수급 시기에 맞춰 65세로 연장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국노총도 정년 연장을 집중적으로 논의할 시기를 대선 직전인 올해로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차기 정권인 오는 2022년을 정년 연장 논의 시점으로 잡고 있지만 막강한 세력을 과시하는 자동차 노조가 정년 연장 이슈를 끌고 나온 이상 대선 국면에서 논의가 불붙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정년이 1년 늘어날 때마다 청년 취업자(정규직 근로자) 비중은 0.42%포인트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화 흐름에 맞춰 정년 연장이 논의되려면 직무급제 등 고용 유연화가 병행돼야 한다는 게 경영계 입장이지만 노동계는 이를 외면한 채 정년 연장만 요구하고 있다. 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노조가 정년 연장 이슈를 선점해 대권 주자들에게 찬반 입장을 요구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포석”이라고 진단했다. 경제 단체의 한 관계자는 “고령 근로자 1명의 고용을 유지하려면 청년 3명이 신규 취업 기회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도 마찬가지다. 경영계가 대상과 기준이 모호하다며 강하게 우려를 표해온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노조는 한술 더 떠 중대 재해를 막기 위한 비상 조치를 정부가 취해야 한다며 압박하고 있다. 조만간 입법 예고될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에는 경영계가 반영해달라고 호소해온 경영 책임자의 범위와 원·하청 관계 책임 소재 등 구체적 내용은 담기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노동계의 압박 속에 정부가 속수무책으로 밀리는 형국이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대선을 앞두고 노동계가 합리적인 주장을 하기보다는 과잉 요구를 쏟아내는 데 대해 우려스럽다”면서 “노동계가 일방적인 주장을 하기보다는 국가 전체적으로 청년 일자리를 늘리고 경제 선순환을 일으키는 차원에서 합리적 주장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