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단독] 못 받은 대북차관 4,184억…정부, 팩스 독촉만 하고 끝

2000년부터 빌려준 뒤 장기 방치

2037년에는 1조 2,800억원 연체

"회수 소극적…지원 재조정 필요"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연합뉴스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연합뉴스




정부가 지난 2000년부터 올해까지 북한에 차관 형식으로 빌려줬다가 제때 돌려받지 못한 돈이 총 4,184억 원(약 3억 7,400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평균 360억 원(약 3,000만 달러)의 연체 금액이 쌓이고 있지만 정부는 대화 재개에만 매몰돼 장기 연체를 방치하고 있다. 국민의 세금 체납 등에 대해서는 강력한 행정력을 동원해 미납액을 추징하고 있는데 북한에 대해서는 체납 행위를 묵인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4일 서울경제가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제출받은 한국수출입은행 자료에 따르면 북한이 올해 갚아야 할 차관은 총 4,184억 원에 달했다. 항목별로 보면 식량 차관은 연체 원금 2,401억 원에 연체이자 695억 원, 지연배상금 204억 원을 더해 총 3,302억 원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경공업 차관은 연체 원금 687억 원에 연체이자 82억 원, 지연배상금 113억 원 등 총 883억원이 미회수액으로 남아 있다. 북한은 또 2002년 금강산 사업 관련 설비 공사를 위해 빌린 자재·장비 차관 1,480억 원도 제때 돌려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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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차관은 매년 규모가 증가하는 상황이다. 북한이 오는 2037년까지 차관을 상환하지 않으면 무려 1조 2,834억 원이 연체된다. 이는 국세청이 지난해 말 공개한 2020년 고액·상습 체납 법인의 체납액(1조 4,786억원)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정부는 조세 포탈범에 대해 성명·나이 등 신원 공개는 물론 형사 고발까지 진행하고 있지만 정작 북한에 대해서는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통일부와 수은 등 관련 부처의 대응은 북한의 미납 행위와 관련해 조선무역은행에 상환 독촉 공문을 보내는 행위가 사실상 전부였다. 북한이 지난해 1월부터 코로나19 방역 목적으로 국경을 봉쇄해 국제우편 전송도 불가능해져 이마저도 중국 베이징사무소를 통해 간접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북한에 일방적으로 팩스를 보내는 데 그치고 있으며 북측의 수신 여부에 대한 답신도 전혀 없는 상황이다. 통일부 담당자는 “팩스 업무는 수은이 담당하고 통일부는 진행 상황을 보고받고 있다”면서 “2019년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남북 관계에 진전이 생기지 않아 북한과 차관 문제를 협의할 계기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남북 관계의 여러 가지 측면을 고려하면 적극적인 추심이 어려운 상황은 맞지만 국세 미납자와 비교하면 차관 회수에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북한의 차관 상환 시도 노력은 남북 관계의 척도로 볼 수 있다”며 “비록 작은 규모지만 2007년 노무현 정부 시절 북한은 아연으로 대신 갚는 성의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도 “주무부처 통일부는 돈을 받을 의지도 없고 1조가 넘는 국민세금이 이렇게 흐지부지 탕진되고 있는 것에 대해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차관 상환에 미온적인 만큼 지원 규모를 재조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채무 불이행을 선언할 수도 있는 만큼 북한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원은 재검토해야 한다”며 “남북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하지만 막대한 규모의 차관 지원은 결국 차기 정부에 짐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혜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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