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전자 상거래 업체 아마존의 수장이 창립 27년 만에 바뀐다. 아마존 창립 기념일인 5일(현지 시간) 제프 베이조스에게 바통을 이어받아 최고경영자(CEO)로 공식 취임하는 사람은 앤디 재시(53·사진) 아마존웹서비스(AWS) CEO다.
재시는 아마존을 ‘유통 공룡’에서 ‘클라우드 컴퓨팅 업계의 거인’으로 변모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마존 창업자인 베이조스의 그늘에 가려 있었지만 재시의 경영 능력은 스티브 발머 전 마이크로소프트(MS) CEO와 트래비스 캘러닉 우버 창업자가 모두 후임으로 그를 탐냈을 만큼 빼어났다. 아마존 입사 24년 만에 최고 위치에 오른 재시가 빅테크 규제가 날로 강화되는 악재 속에서 아마존 왕국을 어떻게 이끌어나갈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MS·우버도 탐낸 경영가
‘베이조스의 그림자’는 지난 1997년 마케팅매니저로 아마존에 입사한 재시의 별명이다. 2002년부터 약 1년 6개월간 베이조스가 참석하는 모든 회의에 동석해 이런 별칭이 붙었다. 베이조스가 사업 전략을 짜거나 신사업을 구상할 때 재시는 그의 곁에서 아이디어를 알려주고 조언도 수시로 했다. “재시는 베이조스의 지적 스파링파트너(영국 가디언)”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그만큼 베이조스는 재시의 능력을 신뢰했다.
실제 재시는 아마존이 커가는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아마존의 판매 품목을 책에서 CD와 DVD로 넓혔고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인 아마존뮤직을 처음 제안한 이도 그였다.
무엇보다 2003년 클라우드 사업을 구상하고 론칭했다. 바로 아마존 총수익의 50%를 차지하는 알토란 기업 AWS의 전신이다. 2016년부터는 아예 AWS CEO를 맡아왔다. 현재 AWS는 클라우드 서비스 분야에서 32%(2020년 시너지리서치 기준)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애저(20%), 구글(9%) 등을 너끈히 제칠 만큼 부동의 1위다. 내로라하는 글로벌 테크들이 재시를 경영자로 모시려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아마존의 다음 먹거리는 블록체인?
이런 재시의 다음 관심사에 이목이 쏠린다. 시장에서는 그가 이끌 아마존이 블록체인 서비스를 내놓지 않겠느냐고 예상한다. 이미 재시는 2017년 “고객들이 블록체인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후 AWS는 기업을 타깃으로 블록체인 기반 클라우드 서비스인 ‘아마존QLDB’와 ‘아마존매니지드블록체인’을 내놓았다.
특히 아마존이 블록체인을 이용한 디지털 결제 토큰을 출시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달 아마존이 디파이(탈중앙화 금융) 관련 경력이 있는 블록체인 전문가를 구한다는 채용 공고를 냈기 때문이다. 공고에서 아마존은 “채용자는 블록체인 분야, 특히 디파이 서비스나 전통 금융 서비스의 혁신을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사회적 이슈에도 적극적 의견 개진
재시는 흑인 인권이나 성 소수자의 권리 등을 옹호하는 트윗을 종종 올렸다. 지난해 흑인 여성 브리오나 테일러가 백인 경찰에게 사살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트위터로 경찰을 규탄했다. 또 미국 연방대법원이 직장 내 성 소수자 차별을 금지하는 판결을 내리자 “2020년에 이런 질문이 제기되는 것 자체가 얼마나 미친 짓인가”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아마존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중 약한 부분이었던 S가 보완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아마존은 지난해 코로나19 대유행에도 창고에서 방역 조치를 제대로 시행하지 않고 이에 반발한 직원들을 부당 해고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1일 아마존은 아마존 리더십 원칙에 ‘최고의 고용주가 되겠다’와 ‘광범위한 책임 의식을 갖겠다’는 원칙을 포함했는데 재시의 경영 방향이 예고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다만 재시가 마주할 과제 역시 만만치 않다. ‘아마존 저격수’인 리나 칸 미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 취임으로 더욱 거세진 빅테크 규제 압박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까지 ‘반(反)독점 강화’ 행정명령을 준비하는 상황이다. 또 최근 전미트럭운전사노조가 첫 아마존 노조 설립을 추진해 아마존의 ‘무노조 경영' 원칙이 다시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