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 출신 총독 지명은 154년 역사의 캐나다에 영감을 주는 순간이자 화해를 향한 긴 여정의 첫 걸음입니다”
캐나다에서 처음으로 원주민 출신 여성이 총독 자리에 올랐다. 주인공은 50년 가까이 캐나다 이누이트족을 위해 헌신한 메리 사이먼(73 사진). 그는 6일(현지시간) 자신에 대한 총독 지명을 “보다 포괄적이고 공정한 캐나다 사회를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BBC 방송, AFP 통신등에 따르면 이날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메리 사이먼을 총독에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총독은 공식적인 국가원수인 영국 여왕을 대리하는 자리로 의회 개회사 및 정회 선언, 법안에 대한 왕실 인가, 캐나다 군 최고사령관 등 몇몇 중요한 국가 업무를 주재한다.
트뤼도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이 나라는 역사적인 걸음을 딛는다. 기회를 충족한 더 나은 후보를 생각할 수 없었다”며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사이먼의 캐나다 총독 임명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사이먼 신임 총독은 ‘직장 내 괴롭힘’ 논란으로 지난 1월 사임한 줄리 파예트 전 총독의 뒤를 잇게 된다. 사이먼은 “영예롭고 겸손하게 캐나다 최초의 원주민 총독이 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사이먼 총독은 퀘벡 북동부 누나벗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가 청소년기에 “1 년 중 몇 달 동안 우리는 야영을 하고 사냥했다”고 말할 정도로 전통적 누이트족 생활방식에 따라 성장기를 보냈다.
CBC 방송에서 일한 적이 있는 그는 1970년대 퀘벡주 이누이트협회 간사 일을 시작으로 1980년대에는 이누이트가 토지개발을 통해 받은 자금을 관리하는 기업의 사장에 올랐다. 캐나다, 미국 알래스카, 그린란드 등에 사는 약 18만명의 이누이트의 대표 조직(ICC) 집행협의회에도 합류한 그는 2012년 누나벗 지역의 어린이 건강관리 지원을 위한 ‘북극 어린이 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또 1994년에는 극지문제를 다루는 이누이트 출신의 첫 캐나다 대사자리에 올라 8개국 ‘북극위원회’그룹 창설 협상을 이끌었고 덴마크 주재 캐나다 대사도 지냈다.
사이먼 총독은 영어와 이누이트어 만큼 불어에는 능통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캐나다 총독은 상징적 자리지만 과거 영어와 불어 모두 구사 가능한 인사들이 맡아왔다. 일부 정치권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에 대해 사이먼은 “연방 통학학교에 다닐 때 불어를 배울 기회는 없었다”며 “계속해서 불어 공부를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원주민 보호와 복리를 위해 일한 신임 총리 지명을 두고 최근 캐나다에서 과거 원주민 기숙학교에 다니던 아동 유해가 대거 발견된 사건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과거 캐나다에서는 인디언, 이누이트족, 유럽인과 캐나다 원주민 혼혈인 메티스 등을 격리해 기숙학교에 집단 수용한 뒤 백인 사회 동화를 위한 강제 교육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원주민 언어 사용을 금지하고 엄격한 훈육 아래 육체적, 정신적, 성적 학대 등의 심각한 인권 침해 행위가 벌어졌다. 최근 가톨릭교회가 운영한 원주민 기숙학교에서 어린이 유해가 수백 구씩 잇따라 발견되면서 캐나다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