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지급준비율을 인하해 시중에 유동성 공급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번 결정은 최근 중국 당국이 유동성 공급보다 축소에 무게를 뒀던 것과 결이 다르다. 시장에서는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의 여파로 기업 수익성 악화, 디폴트(채무불이행) 급증 등이 나타나자 응급 처방에 나선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8일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국무원은 전날 리커창 총리 주재로 상무회의를 열고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이 기업의 생산·경영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적시에 지급준비율 인하 등 통화정책 도구를 사용해 특히 중소기업·영세업자에 대한 실물경제 지원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통상적으로 국무원 회의에서 지준율 인하가 구체적으로 예고되면 해당 주 금요일 저녁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지준율 인하를 공식 발표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르면 9일 밤 지준율 인하에 대한 공식 발표가 나올 것으로 시장은 예상했다.
중국 경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코로나19의 충격에서 벗어나 정상화돼왔지만 최근 들어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이 중국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원자재 값 급등을 반영해 지난 5월 중국의 생산자물가지수(PPI) 상승률은 9.0%로 2008년 이후 13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블룸버그통신의 시장 전망치에 따르면 9일 발표되는 6월 PPI 상승률도 8.8%로 고공 행진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중국 제조업 기업들은 원자재 가격 인상분을 모두 제품 가격에 전가할 수 없어 수익성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이 지준율을 인하할 경우 지난해 4월 이후 15개월 만에 처음이다. 코로나19의 충격에서 지난해 중국은 1~4월 모두 지준율을 세 차례 인하한 바 있다. 올해부터는 통화정책 정상화 과정에서 시중 유동성을 줄이는 출구전략 시행에 나섰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한계 기업들의 디폴트가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금융 정보 업체 다즈후이에 따르면 올 1~6월 중국 기업들의 회사채 디폴트 규모는 1,160억 위안(약 20조 원)으로 상반기 기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반도체 업체인 칭화유니그룹 등 그동안 정부 자금을 믿고 방만한 운영을 이어온 국유 기업의 디폴트가 많았다.
이번에 새로운 시중 유동성 확대로 부실기업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현지 관계자는 “국무원이 발표문에서 ‘중소기업·영세업자 지원’을 꼭 집어 강조한 만큼 중소기업 관련 금융기관에만 한정된 지준율 인하가 이뤄질 듯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