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라이프

"자녀와의 깊은 유대, 함께 보내는 시간에 달렸다"

[라이프점프X주한스웨덴대사관] '글로벌가이 토크' 되짚어보기

여가부 폐지론 둘러싸고 남녀 갈등 고조

서로 향한 적대감으론 사태 해결 할 수 없어

양성평등을 위해 서로 입장을 이해하는 노력 필요

5명의 글로벌 남성들 육아와 양성 평등에 대해

솔직 담백한 의견 표출...이런 기회 많아져야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제기된 ‘여성가족부 폐지론’이 남녀 갈등 양상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선거철마다 등장하는 주장으로 치부하기엔 갈등의 골이 깊어 보입니다. 한 쪽에서는 여가부가 제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젠더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편에선 성별에 따른 불평등이 여전한 우리나라에서 여성 정책을 전담하는 부처를 없애는 것이 맞느냐고 반박하죠. 양쪽 모두 맞는 얘기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필요한 것은 뭘까요. 이번 사태를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게임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해 나가 려는 마음 자세입니다.



라이프점프는 지난 6월 스웨덴대사관과 공동으로 ‘글로벌 가이 토크’ 라는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이 행사는 양성 평등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기획했습니다. 총 5명의 남성들이 참여해 한국 사회에서 남자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육아에 대한 아빠들 생각은 어떠한지,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눴습니다. 성평등을 여성의 관점에서 여성들만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들도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며 서로의 간극을 줄여 나가자는 취지였죠. 남자들이 그간 말못했던 고충을 털어놓고, 이를 통해 서로 이해하지 못했던 남녀가 서로를 이해하고 사회가 정해 놓은 관습을 타파해 나가자는 나름 큰 목표도 있었습니다.

한 달 전 얘기를 다시 꺼내는 건 서로를 이해하는 노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가이 토크’ 행사처럼 남녀가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고, 간극을 줄여나가는 시간들이 필요한 때입니다. 서로를 향한 분노는 잠시 내려놓고 시계추를 한달 전으로 돌려 라이프점프와 스웨덴대사관이 공동으로 주최한 ‘글로벌 가이토크’ 행사를 다시 한번 살펴보시죠.

‘글로벌가이 토크’ 행사에는 총 5명의 남성들이 참여했습니다. 양성평등의 나라 스웨덴의 주한대사인 야콥 할그렌, 두 명의 대한민국 국적의 직장인(이해동, 심현석씨), 스웨덴 국적의 사진가 시몬 가테, 그리고 예능프로 ‘비정상회담’에 출연해 한국 사람들에게 익숙한 얼굴인 스웨덴 출신의 엔터테이너 요아킴 소렌센이 그 주인공들입니다. 이들은 약 2시간에 걸쳐 진행된 토크 행사에서 한 가정의 아버지에 대한 역할, 아내와 아이들과의 관계 형성, 한국 사회가 남녀에 강요하는 고정관념, 관습 등에 대해 솔직한 의견을 나눴습니다. 아래 주요 내용을 소개합니다.



요아킴: 사회를 맡은 요아킴이다. 네 분께 질문 드린다. 자녀들과 깊은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야콥: 그때 그때 다르다. 내가 아이들과 친밀할 때가 있고 엄마가 더 친밀할 때도 있다. 제 경함상 아이마다 다른 것 같다. (참고로 야콥 대사는 세 자녀를 두고 있다. 자녀가 태어날 때마다 육아휴직을 내며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 전형적인 ‘라떼파파’다. 라떼파 야콥 대사의 스토리가 궁금하다면 "내 삶의 그 무엇도 아이와 함께 한 시간을 대체할 수 없죠", '라떼파파(latte papa)'의 원조...스웨덴 아빠들이 육아에 적극 나서는 이유는?)



현석: 아내가 직장을 다니지 않고 저만 다니고 있다. 아내가 저보다 다섯 배는 더 오래 같이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이 아직 아빠가 일 하러 나가는 것을 이해해주는 나이는 아니다. 그래서 아내가 아이들과 더 친한 것 같다.

해동: 저도 그런 것 같다. 제가 일을 좀 많이 해서 그런 것 같다. 항상 밤늦게 퇴근한다. 자연스럽게 아내가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이 많은 편이다. 아이와의 관계 친밀도는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에 달려 있는 것 같다.

요아킴: 다들 자녀를 둔 부모다. 내가 상상했던 모습의 부모가 됐는가.

모두: 아니오.(웃음)



현석: 아이를 가지기 전에 우리 부부는 꽤 긴 신혼생활을 했다. 2010년에 결혼해서 2017년에 첫째를 가졌으니 7년을 꽉 채웠다. 아이를 가지려고 준비하고 있을때 지인들이 ‘아이가 생기면 한명의 남자, 여자로서 정체성은 사라지고 아이의 아버지와 어머니로 생활하게 될 거다’ 라고 말했다. 내가 현석이라는 사람보다 아이들의 아빠로 살게 된다는 것은 듣기만 한 것과 막상 해보는 것은 다르다.(웃음) 가정과 일 사이에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한데 서른 초반인 내겐 큰 시련이다.

요아킴: 정체성을 잃는다? 한국적인 문화인가.

현석: 다른 나라 부모와 비교할 수 없겠지만 한국에선 아이가 생기면 아이에게 전념한다.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면 그럴수 없다. 아이를 재우고 나서는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해동: 첫째를 가질 때는 은근한 이상을 품고 있었다. 항상 아이를 생각하는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다. 아이와 시간도 자주 보내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서는 충분히 사랑해주지 못한 것 같다. 아이와 얘기도 조금 더 하고 공놀이더 더 해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요아킴: 흥미로운 지점이다. 한국사회에서 아버지에 대한 기대와 고정관념이 아이들과의 관계 형성에도 영향을 미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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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 한국 사회에서 느끼는 전형적인 아버지 상이란 게 있다. 한국에서 아버지는 가정의 가장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안정을 줘야한다. 직장은 일을 하는 아버지를 가족으로부터 떼어내는 것 같다.



해동: 동감한다. 아버지는 항상 같은 자리에 물질적 지원을 해주거나 가정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가족들이 충분히 먹고, 쓰고, 하고 싶은 일을 할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그런데 그런 건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가족을 위해 무엇을 하느냐다. 항상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아쉬운 건 우리의 손이 두 개밖에 없다. 돈을 쥐어야 한다면 다른 하나를 떨어 뜨려야 하는데 그것이 가족들과의 시간일수도 있다. 서글프다.

요아킴: 아빠들은 엄마처럼 임신하지 않는다. 산고의 고통도 없다. 그런 아내를 위해 보상이 필요하지 않을가.

현석: 맞다. 아이를 낳기 위해 임신해야 하는 것처럼 그 불편함에 대한 보상은 필요하다. 특히 임신 기간이랑 후에 몸을 회복할 때 더욱 그렇다. 아이가 어려서 보살핌이 필요한 것처럼 아이를 막 낳은 엄마도 보살핌이 필요하다.

야콥: 나는 아이를 낳을 때 곁에 있었다. 아이가 처음으로 세상의 빛을 볼때의 그 신성한 경험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곁에 있어주는 것이 보답이 될 수 있다. 육아휴직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흔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세 자녀가 태어나는 기간 육아휴직을 모두 썼다. 자녀들과의 유대감을 형성하기 위해선 아버지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유일한 방법은 곁에 있어주고 보살펴 주는 거다.



시몬: 첫째 아이는 아내가 수술을 해서 낳았다. 아내보다 내가 먼저 딸한테 가서 돌볼수 있었다.(웃음) 아내가 깨어나지 않아서 제가 딸을 두시간 정도 돌본 것이다. 아내가 일어나고 딸과 함께 아내를 보러 갔다. 정말 좋았다. 아빠가 됐다는 생각. 뭔가 한계를 넘은 듯한 기분이었다.

현석: 임신, 초음파, 출산, 모유 수유까지의 과정이 엄마와 아이의 생리적인 유대를 형성하는 것 같다. 이건 어떤 아버지도 넘을 수 없는 벽이다. 그래서 2년 전에 첫째 딸이 태어났을대 일년간 유아휴직을 썼다. 그 시간은 매우 소중했다. 딸과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둘째 딸과도 그런 기회를 갖고 싶은데 어떻게 될지는 봐야 한다.

요아킴: 지켜봐야 한다는 게 무슨 말인가.

현석: 상관이 결정해줘야 한다. (웃음)

야콥: 중요한 포인트다. 직장내 관리직들에게 책임이 있다. 육아휴직을 못하게 한다면 그건 본질적으로는 당신이 아이들과 깊은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심각한 문제다. 한국 사회의 관습이고 문화인 것을 알지만 바뀌어야 한다. 스웨덴도 30년전만 해도 남성의 육아휴직은 어려운 이슈였다. 하지만 바뀌었다. 한국도 가능하리라 본다.

현석: 문화적인것도 있지만 인센티브 문제도 있는 것같다. 한국에서는 육아휴직을 하면 월급이 반 이하로 줄어든다. 금전적으로 어렵고 직장으로 돌아가도 휴직하지 않은 사람처럼 대우해주지 않는다.

야콥: 관점을 달리해볼 필요도 있다. 월급을 절반만 받는 것이 손해는 아니다. 내가 믿는 것은 30대 젊은 나이에 1~2년을 잃더라도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냄으로 인해 아내와 자녀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한다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자신이 더욱 성숙하고 완전한 사람이 된다. 나중에 직장에서도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이 더 친절한 동료가 되고 어쩌면 더 좋은 상사, 리더가 될 수 있다.

※다섯 남성들의 더 진솔한 대화를 듣고 싶다면 아래 영상을 클릭해 주세요

글로벌 가이들이 한 곳에 모여 솔직하게 터놓는 아버지로서의 삶! LET'S START TALKING


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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