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불붙은 여가부 폐지론..."역할 한계 깨기 고민해야"

정치권서 잇단 폐지론 제기에도

OECD 24개국에 여성 전담부처

"남녀 아우른 정책역할 논의 필요"

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열린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규탄 기자회견에서 여성정치네트워크 등 참석자들이 손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열린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규탄 기자회견에서 여성정치네트워크 등 참석자들이 손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야권 대선 주자를 중심으로 ‘여성가족부 폐지론’이 거세게 불고 있다. ‘여가부를 폐지하고 업무를 다른 부처가 맡도록 하자’는 유승민 국민의힘 전 의원과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의 주장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거들면서다. 이후 한국의 성 평등 수준과 해외 사례 등을 감안할 때 여가부를 폐지할 때가 아니라는 반론이 연일 제기되며 논란이 뜨겁다. 한국 사회에서 여가부의 역할을 어떻게 보완하고 확장할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여가부 폐지론에 불을 지핀 것은 유 전 의원이 지난 6일 올린 페이스북 글이다. 유 전 의원은 “정부의 모든 부처가 여성 이슈와 관계가 있어 여가부가 따로 필요하지 않다”며 “대통령 직속으로 양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해 각 부처들이 양성 평등 정책을 제대로 추진하도록 종합 조율하겠다”고 공언했다. 같은 날 “여가부의 존재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재검토해야 한다”는 하 의원의 주장이 이어졌다. 다음 날 이 대표도 “(여가부가) 캠페인 정도 하는 역할로 전락했다”며 주장을 거들었다. 요지는 ‘별도의 정부 부처로서 여가부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이 잇따라 제기된 이유는 여가부가 여성 이슈에 대해 주무 부처로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여론과 이에 대한 미진한 대응 때문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비서 성추행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여가부는 지난해 7월 17일 첫 입장문에서 피해자를 ‘고소인’이라 지칭했다가 이틀 후에야 ‘피해자’로 정정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이정옥 전 장관이 국회에 출석해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는) 국민 전체가 성 인지성에 대해 집단 학습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성폭행 피해 지원 주무 부처 장관으로서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비판이 빗발치자 이 전 장관은 사실상 경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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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가부의 모든 역할을 다른 부처로 이관했을 때 여성 정책이 제대로 추진될지 미지수라는 지적이 여전히 많다. 이삼식 한양대 정책학과 교수는 “많은 나라에서 역할이 중복되더라도 노인·여성·청소년 등 특정 대상을 위한 정책을 만드는 부처들을 두고 있다”며 “다른 부처들에서 보기 어려운 사각지대를 보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6년 발간한 ‘해외 여성정책 추진체계 조사연구’에 따르면 지난 2015년 기준 OECD 국가 중 한국처럼 여성 정책을 전담하는 독립 부처를 따로 둔 곳은 24개국에 이른다. 여가부가 학교 밖 청소년, 한부모 가정, 결혼 이주 여성 등 타 부처의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기 쉬운 집단에 대한 각종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것도 무시할 수 없다.

김경선 여성가족부 차관이 7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새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성폭력방지법)’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날 김 차관은 여가부 폐지론에 대한 질문을 받고 “저희(여가부)는 저희의 도움을 필요로 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항상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답변했다./연합뉴스김경선 여성가족부 차관이 7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새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성폭력방지법)’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날 김 차관은 여가부 폐지론에 대한 질문을 받고 “저희(여가부)는 저희의 도움을 필요로 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항상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답변했다./연합뉴스


이번 논란을 계기로 여가부의 역할을 어떻게 보완할지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출산과 양육기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상당히 차별 받는 점, 노인 빈곤이 여성의 경우에 특히 심각한 점 등을 보면 여가부의 존치 이유는 충분하다”며 “다만 성 평등은 남성과 여성 모두를 위한 것인 만큼 여가부의 정책이 한 성별의 관점에서만 이뤄지지 않도록 한계를 깨고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정책연구원도 2016년 보고서에서 “장기적으로 ‘젠더(gender)’ 혹은 ‘양성 평등’ 키워드를 활용해 여가부의 명칭을 변경하고 실질적으로 여성과 남성을 동시에 고려한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김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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