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정여울의 언어정담] 내 안의 피터팬을 보듬을 시간

작가

'어른스러운 연기'하며 사는 우리

마음속엔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는

또 하나의 '내면아이' 살아 숨쉬어

'피터팬 콤플렉스' 비난 말았으면

정여울 작가정여울 작가




피터팬 콤플렉스는 나쁘기만 한 걸까. 책임지지 않으려 하고, 철들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사람들은 피터팬 콤플렉스라는 낙인을 찍는다. 어른이 됨으로써 필연적으로 지불해야 할 성숙의 대가를 치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불만. 그것이 피터팬 콤플렉스라는 이름에 묻은 부정적인 뉘앙스다. 하지만 피터팬 원작소설에는 피터팬 콤플렉스가 정작 등장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인물들이 피터팬을 부러워하거나 질투한다. 피터팬은 어른이 되지 않기에 평생 결혼도 직장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언제든 하늘 높이 찬란하게 날아오를 수 있는 피터팬의 가벼운 몸은 그 모든 감정의 무게로부터도 자유롭다. 해맑게 까르르 웃어대는 피터팬의 순수함은 어른들의 복잡한 상념을 휙 날려버리는 마법의 묘약이다. 슬픔도 원한도 결코 피터팬을 늙게 하지 못한다. 기억의 덫에 걸리지 않는 것. 불쾌감도 원망도 하룻밤 푹 자고 나면 깡그리 잊어버리는 이 놀라운 망각이야말로 피터팬의 능력이다.




모든 책임감으로부터 자유로운 이 피터팬의 눈부신 빛 뒤에는 어둡고 쓸쓸한 그림자가 숨어 있다. 피터팬이 네버랜드로 간 까닭은 그가 어린 시절 가출했기 때문이다. 어린 피터팬을 두고 부모가 나누는 대화를 엿들은 것이다. 아이를 무엇으로 만들지 철저히 계산하는 부모,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부모의 탐욕을 간파해버린 피터팬. 그는 마침내 부모를 떠나기로 결심한 것이다. 시간이 흘러 그래도 엄만 날 기다려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찾아가 보니, 그들은 피터팬을 잊고 새로운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피터팬이 데리고 있는 아이들도 부모의 부주의함과 무관심으로 잃어버린 아이들이다. 웬디는 피터팬이 자신에게 다가온 이유가 그 쓰라린 버려짐의 상처 때문임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엄마가 읽어주는 동화책 이야기를 동생들에게 들려주는 웬디의 따사로운 미소. 바로 그것이 피터팬이 그토록 찾고 있던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미소였던 것이다.

관련기사



피터팬이 웬디네 집에 처음 들어온 날, 피터팬은 그림자를 잃어버린다. 피터팬은 영혼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고통스러워한다. 그런 피터팬을 치유해준 사람이 바로 웬디였다. 웬디는 슬퍼하는 피터팬을 능숙하게 달래며 뛰어난 바느질 솜씨로 그 말썽 많은 그림자를 꿰매준다. 자기자신으로부터 분리돼 버린 영혼의 그림자를 꿰매주는 웬디의 손길. 아무 조건 없는 보살핌의 몸짓이야말로 피터팬의 치명적인 결핍이었다. 누구의 보살핌도 받지 못한 것. 사랑이 필요할 나이에 어떤 사랑도 제대로 받지 못한 피터팬의 깊은 상실감이야말로 웬디가 자신도 모르게 보살피고 있던, 고통받는 존재의 그림자였다. 피터팬은 밤마다 자는 동안 꿈을 꾸며 흐느낀다. 밝은 대낮에는 한없이 자유롭고 해맑은 피터팬이 밤이 되면 꿈속에서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따스한 사랑과 보살핌을 찾아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행복한 웬디네 가족을 남몰래 창문으로 엿보고 있던 피터팬의 몸짓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자신은 영원히 가질 수 없는 행복을 향한 쓰라린 갈구였다. 이쯤 되면 우리는 피터팬을 결코 미워할 수 없다. 밤이면 남의 집에서 스며나오는 따스한 온기를 부러워하고, 잠이 들면 꿈속에서 애타게 무언가를 찾으며 꿈속에서도 흐느끼는 아이. 그것은 온갖 상처로 얼룩진 우리 모두의 그늘진 내면아이가 아닐까. 겉으로는 훌륭하게 ‘어른스러운 연기’를 해내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어쩌면 밤마다 흐느끼며 오래전 잃어버린 그 무언가를 찾아 애타게 헤매는 또 하나의 내면아이, 우리 모두의 피터팬이 살아숨쉬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제 피터팬 콤플렉스라는 말을 쓰지 않으련다. 그러기엔 내 안의 피터팬, 우리들의 가엾고 쓸쓸한 내면아이를 너무도 열렬히 사랑하니까. 철들지 않는 사람들을 피터팬 콤플렉스라 손가락질하기보다는, 우리 안의 피터팬의 조그만 어깨를 꼭 안아주자. 몸은 어른이지만 아직 저마다 조금씩은 피터팬의 천진무구한 미소와 눈부신 날갯짓을 감추고 있는 우리들의 내면아이를 힘껏 보듬어 안아주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