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그래도 군은 국가와 국민을 지킵니다

안영호 글로벌국방연구포럼 수석부회장(예비역 육군 중장)

안영호 글로벌국방연구포럼 수석부회장(예비역 육군 중장, 전 합참 작전본부장)안영호 글로벌국방연구포럼 수석부회장(예비역 육군 중장, 전 합참 작전본부장)




최근 발생한 공군부대의 성추행사건은 국민뿐만 아니라 군 조직 내에서도 공분을 사고 있다. 40년 가까운 군 생활을 하고 최근에 전역한 필자도 지금의 군대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에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할 수가 없다. 고통을 견디지 못해 삶을 버린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 유가족에게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다.



최근까지 군 복무를 해왔던 예비역 군인이자 장성한 자녀를 둔 아버지로서 이 사건을 접하는 마음은 참으로 비통하다. 군에 대한 국민의 불신에 변명할 여지가 없다. 대부분 상하관계의 위력에서 비롯되는 성범죄의 특성과 상명하복의 필연적인 군 조직문화를 고려할 때 그 예방 시스템은 다른 조직에 비해 더욱 철저해야 된다는 신념으로 추진해왔던 절치부심의 노력이 이번 충격적인 사건 앞에서 또 한 번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군은 읍참마속의 자세로 일벌백계를 실행하고 성범죄 예방시스템과 조치시스템을 해체 수준으로 수술하여 국민의 신뢰회복에 전력투구할 때다.

군을 향한 국민의 질타는 군을 사랑하는 마음의 발로이므로 군은 이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때로는 질타의 수준이 지나쳐 받아들이는 마음에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이마저도 군에 대한 애정이 큰 탓이므로 그 취지를 수용하여 앞으로의 노력에 반영해야 한다. 질타를 받아들이는 마음은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미군도 군내 성범죄에 몸살을 앓고 있다. 밀리 미합참의장은 2021년 5월 9일 펜타곤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2만명 정도의 남녀 미군이 성범죄 대상이 됐다고 추정한다. 이는 미군 병력의 1%에 해당한다. 만약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서 2만명이 죽거나 다쳤다면 그것은 막대하고 중대한 사상자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 숫자는 줄지도 않는다. 우리는 이 숫자를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이는 아군에 대한 아군의 공격이다. 해결해야만 한다.’라고 말했다. 군내 성범죄에 대한 미합참의장의 고뇌가 느껴진다. 이러한 미군의 수치는 인원비율을 고려하더라도 우리 군의 수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치이다. 물론 문화의 차이가 있으므로 단순 비교는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가 우리 군만이 안고 있는 ‘후진적 관행’ 때문이라고 치부해 버리기는 무리가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다른 조직이나 집단에서도 성 문제가 발생하지만 유독 군에서 발생하는 성 문제에 대해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다른 조직과 달리 군은 국가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신성한 임무를 수행하기에 군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상대적으로 크고 다른 조직에 비해 더욱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대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번 사건에 대해 쏟아지는 비난과 질타를 접하면서, 또한 절치부심하는 군을 보면서, 주어진 소명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대다수 군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우려된다. 질책을 하는 이유는 동일한 문제가 다시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과도한 질책이나 이성을 잃은 비난은 그 대상을 왜곡된 모습으로 단죄하게 하고 잘못된 방향의 해법을 강요하게 되어 그 목적과 본질을 훼손하기 때문에 이를 경계해야 한다. 사람이나 조직이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 질책을 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이것이 잘못에 비해 과도하게 행해지거나 화풀이, 분풀이식의 폭로로 확대되면 본능적으로 그 조직은 문제해결보다는 질책을 회피하는 방안 모색을 우선하기 마련이다. 정신의학 및 행동과학의 권위자인 데이비드번스 박사는 이런 현상을 ‘인지적 왜곡(cognitive distortion)’이라고 표현하고 불충분한 일부의 자료들로 성급하게 일반화시키는 ‘과잉 일반화(Overgeneralizing)’에 대해 지적하였다. 따라서 진정으로 군을 위한다면 올바른 질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최근 일련의 질책성 보도와 관련하여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이번 사건의 원인을 상명하복의 군 조직문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상명하복의 조직문화로 인해 성범죄의 가능성이 어느 집단보다 높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과 비난은 앞서 언급한 ‘과잉 일반화’에 해당한다. 이런 오해는 아마도 상명하복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상명하복이란 상급자의 명령에 하급자는 무조건 복종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 조건이 따른다. 첫 번째는 반드시 지휘관계가 성립되어야 하고 둘째는 명령의 내용이 직무에 관련된 것이어야 하며, 셋째는 그 내용이 반드시 법규에 부합되어야 한다. 지휘관계는 분대원-분대장-소대장-중대장 등의 지휘계통과 정비병-정비부사관-정비관 등 업무계통을 의미한다. 그래서 지휘관계가 아닌 상급자가 지시하거나, 지휘관계에 있더라도 직무와 관련없는 내용을 지시하거나, 지휘관계에 있고 직무와 관련된 내용이라 하더라도 법규에 위배되는 내용을 지시하면 이것은 명령의 합법적 권위를 유지할 수 없다. 상명하복은 이러한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했을 때만 효력을 발휘하므로 이로 말미암아 성추행이 만연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는 자칫 ‘상명하복의 군 기강 유지’라는 본질을 훼손할 수 있기에 관점의 재설정이 필요하다. 위압적으로 발생한 성추행 사건은 군의 조직문화로 인한 것이 아니라 상하 관계설정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비뚤어진 개인의 심성으로 인한 것이다. 물론, 이런 잘못된 관계설정을 방치하고 비뚤어진 심성을 가진 구성원을 계도하지 못한 책임은 군이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둘째, 군을 범죄행위를 은폐하는 집단으로 표현하는 것은 명예를 생명보다 중하게 여기는 군과 그 구성원들에 대한 지나친 비난이다. 일부 언론에서 ‘이 사건을 통해 은폐·축소·회유가 판치는 군의 후진적 조직문화를 총체적으로 드러냈다’고 비난하였다. 연일 이런 보도를 접해야 하는 대부분의 군인들은 아마 한없는 자괴감을 느꼈을 것이다. 성추행 자체는 개인의 심성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은폐·축소·회유는 조직이 관여되는 문제이다. 연대장, 사단장, 군단장 등 지휘관 직책을 경험한 필자로서는 은폐·축소·회유했다는 언론 보도에 더욱 비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과거에도 군에서는 세간의 주목을 끌었던 성추행 사건이 있었다. 때로는 장성급 고위 직위자가 가해자인 사건도 있었지만 그때도 예외 없이 우리 군은 장성급 고위 지휘관을 즉각 해임시켜 분리 조치함으로써 피해자를 보호하고 법적 절차대로 조치했었다. 고위급 지휘관이 관련된 사안이었으니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군이 심하게 비판받아야 할 줄 알면서도 숨기지 않고 모든 고통을 감내해왔는데 은폐·축소·회유를 군의 일반적인 조직문화로 간주하는 것은 그간의 군의 자정 노력을 보았을 때 지나치게 가혹한 표현이다.



필자가 사단장, 군단장 재임 중 성범죄 사건이 발생하면 아무리 경미한 사안이라도 피해자 보호 우선, 피해자 의도 중심으로 모든 조치와 처벌을 시행했었다. 때로는 가해자가 아주 유능한 인재여서 솔직히 안타까운 생각이 든 적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규정대로 처벌했었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군 시스템이자 일반적인 문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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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군은 성범죄에 대해서 어느 조직보다 단호하게 대처하여 왔다. 국방부에서 국회로 제출한 자료에 ‘2015년부터 작년 6월까지 군사법원에서 다룬 성범죄 건수는 1,708건, 이중 1심 실형 선고는 175건으로 10.2%’라는 내용이 있다. 이를 언론에서는 ‘인원 비율로 볼 때 군대 내 성범죄 건수가 다른 조직보다 훨씬 많았고 실형 선고율은 다른 조직이 25%인데 비해 반도 되지 않았다. 솜방망이 처벌로 군내 성범죄가 많아졌다.’라고 보도했다. 단순 수치 비교로는 그럴듯하다. 하지만 법원에 기소되는 건수가 많아졌다고 해서 군내 성범죄가 증가했다고는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군내 폭력은 과거에 비해서 획기적으로 줄었으며 이는 병영문화를 혁신시키기 위해 군이 노력한 효과일 것이다. 그러나 폭력으로 징계나 기소되는 건수는 과거보다 늘었다. 과거에는 상해가 발생한 정도의 심각한 폭력 사고만이 보고되고 처벌을 받았지만, 지금은 아무리 경미한 사안이라도 모두 보고되고 처벌받는다. 폭력의 경중에 관계없이 피해자가 폭력으로 느꼈으면 처벌의 대상이 된다. 그만큼 폭력에 대한 군의 의식수준이 높아지고 투명해졌다는 것이다.

성범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군에서는 아무리 경미한 성추행이라도 피해자가 성추행이라고 느꼈으면 즉각 보고되고 처벌이 시행된다. 그만큼 성범죄에 대해서도 군의 의식수준이 높아지고 투명해졌다는 것이다. 아주 경미한 사안도 모두 기소되었으니 다른 조직에 비해 건수가 많아질 수밖에 없고, 경미한 사안까지 모두 포함되었으니 실형 선고율이 낮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방부에서 제출한 데이터는 성범죄에 대한 군의 의식수준과 투명성을 나타내는 수치이다.

넷째, 이 사건의 원인 중 하나로 군사법원 체계 문제를 제기하는 부분에 있어 사실관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제기하는 문제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현행 군법은 군단장이 관할관으로서 재판 전반에 관여하여 재판부가 결정한 형량을 1/3 범위에서 감경하는 권한까지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군내 범죄행위에 대해 단호히 대처하지 못하고 제 식구 감싸기가 횡행한다는 얘기다.

지휘관의 감경권은 군사법원법 제379조 제1항에 의거 ‘작전,교육,훈련 등 업무를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범죄에 한정하여 선고된 형의 1/3 미만의 범위’에서 시행할 수 있다. 작전이나 훈련 중에 일어난 사건 처리에 대해 지휘권을 보장하는 조항으로 이해된다. 지휘관의 감경권은 성범죄 등 일반 범죄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필자가 군단장 재직 시에 수많은 재판이 시행되었지만 재판부가 결정한 형량을 감경한 것은 단 1건도 없었다.

모든 군사재판은 군사법원 계통으로 이루어지고 지휘관이 관여하는 것은 극히 제한된다. 사단, 군단에 편성되어 있는 법무참모의 역할은 군이 합법적이고 정당한 무력행사를 하기 위한 국제법, 국내법적 작전행위의 정당성에 대한 법적 조언 역할을 하는 것이지 사법적 재판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다.

‘계급깡패가 군내 성범죄 만들었다.’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우월적 지위에 의한 성폭력이 군에 만연되어 있다’는 비난은 많은 군인들을 더욱 절망감에 빠지게 한다. 군에서 계급은 목숨보다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그 권위를 존중받아야만 하는 신성한 것이다. 심성이 비뚤어진 상급자의 일탈행위에 의한 사건을 두고 ‘계급깡패’, ‘성폭력이 군에 만연되어 있다’고 표현한 것은 과했다. 특히 의무가 아닌 선택으로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대한 수많은 여군들에게 ‘성폭력이 만연된 군’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간주한다면 모욕감을 느낄 것이다.

군인은 언론에 대응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언론에 대응하는 것보다 언론에 순응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군인은 국민의 종복이고 언론이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가혹한 비판도 받아들인다. 그것이 군에 대한 애정에서 나오는 사랑의 질책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가끔 군의 실상을 모르고 하는 질책은 마음의 상처를 낳는다. 군의 사기에 영향을 미친다.

군의 잘못에 대한 보도가 군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말이 아니다. 어느 조직이든 잘못된 점은 들추어 밝히고 이것을 시정해야 한다. 문제는 한 부대의 잘못을 군 전체의 잘못으로 간주하고 군 전체가 그럴 것으로 일반화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군이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참으로 가슴 아픈 사건이다. 한두 명의 품성 저열자의 범죄행위를 예방해야 했지만 그보다 후속조치 과정에서 노정된 문제점은 더욱 변명의 여지가 없다. 모든 부대가 우리 부대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로 생각하는 자만에 빠지지 말고, 다시 한번 부대원을 교육하고 시스템을 정비하여 유사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진력해야 한다.

그래도 우리 군은 묵묵히 국가와 국민을 지키고 있다. 국민의 질책은 극소수 일탈자로부터 본연의 임무에 전념하고 있는 대부분의 군인을 보호하려는 애정과 신뢰의 표현이다.

거듭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에게 심심한 애도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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