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서울 청원고등학교 강의실에는 20여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소설 ‘페스트’를 역사와 접목시켜 이해하는 시간을 갖게 된 것. 노원평생학습관이 지역 청소년을 위해 마련한 인문학 강좌였다. 이화여대 사학과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선아 박사가 강의를 맡았다. 이날 김 박사는 질문을 이어가는 강의법으로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도왔다.
김 박사는 “알베르 카뮈(1913~1960)의 소설 ‘페스트(1947)’의 역사적 배경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운을 뗐다. 소설 ‘페스트’의 배경인 ‘오랑’은 알제리의 도시라고 설명한 그는 “페스트의 주요 등장인물인 베르나르 리유, 장 타루, 조제프 그랑의 이름에 공통점을 발견했는가”라고 학생들에게 물었다. 학생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모두 프랑스 사람의 이름 같다”고 답했다. 학생들의 대답에 김 박사는 “배경이 알제리인데 왜 소설에는 프랑스 이름만 나올까”라고 되물었다. 학생들이 고민에 빠지자 김 박사는 알제리의 역사와 작가 알베르 카뮈에 관한 설명을 시작했다.
아프리카 대륙의 북서부에 위치한 알제리는 1830년대 프랑스의 식민지가 됐다. 프랑스는 알제리를 거점으로 아프리카 대륙을 식민지화 하려고 했던 것. 알제리는 프랑스와 8년간의 격렬한 전쟁을 벌인 끝에 1962년에 독립을 맞았다. 무려 130년간 프랑스의 식민지로 있었던 것이다.
작가 알베르 카뮈는 알제리에서 태어난 프랑스인이다. 당시 알제리의 전체 인구의 10%가 유럽인이었고 이중 대부분이 프랑스인이었으며 카뮈처럼 알제리에서 태어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프랑스 국적을 갖고 있지만 프랑스의 주류사회에 발을 들이기는 어려운 애매한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카뮈는 1·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겪은 세대이다. 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됐을 때 그는 이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다. 레지스탕스는 독일점령군에 대항한 프랑스인들의 저항운동을 뜻한다.
알제리와 카뮈에 대한 설명을 마친 김 박사는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한 것을 참을 수 없어 목숨 걸고 저항운동을 한 카뮈는 알제리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원했을까”라고 학생들에게 물었다. 그의 질문에 학생들은 “그랬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김 박사가 “카뮈에게 알제리는 곧 프랑스였기 때문에 알제리의 독립을 원하지 않았다”고 하자 학생들은 놀라는 눈치였다. “카뮈는 자유해방과 독립을 마치 프랑스인이나 유럽인의 전유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라는 김 박사의 말에 학생들은 숙연해졌다. 그는 이어 “영향력 있는 작가 카뮈가 알제리의 독립을 위해 어떤 행동을 했어야 했는지 여러분도 이 기회에 생각해 보면 좋겠다”고 말하며 강의를 마쳤다.
노원평생학습관이 마련한 김 박사의 ‘‘페스트’, 알제리와 프랑스’ 강좌는 ‘고인돌2.0(고전·인문아카데미2.0: 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의 프로그램의 하나로 개최됐다. ‘고인돌2.0’은 서울경제신문 부설 백상경제연구원과 서울시교육청 도서관 및 평생학습관이 2013년부터 함께한 인문학 교육 사업이다. 성인 중심의 인문학 강좌로 시작한 ‘고인돌’은 지난해부터 명칭을 ‘고인돌2.0’으로 바꾸고 서울 전역의 중·고등학교와 연계해 강연을 하고 있다. 역사와 건축, 경제, 과학,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의 총 56개 강좌로 구성된 올해 제9기 ‘고인돌2.0’은 특히 교과목과의 연계성을 높여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원격 강의 등 비대면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청원고 3학년 한현준 군은 “혼자서 책을 읽을 때는 생각하기 어려운 부분들에 대해 여러 방면으로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고 강의에 참여한 소감을 밝혔다. 3학년 윤찬혁 군은 “소설 ‘페스트’의 배경과 연결해 역사에 대해 알게 된 유익한 강의였다”고 말했다.
고인돌 2.0은 올 11월까지 80여개 중·고등학교를 찾아가 청소년들의 인문학의 사고를 높이기 위한 강연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 이효정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원 hj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