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칼럼

[만파식적] 양봉음위


중국 한나라 무제 때 제남 지방에서 정장(면장급)을 하던 ‘안이(顔異)’는 청렴하고 강직해 재정 담당 장관급인 대사농까지 올랐다. 하지만 한무제가 제후들의 재물을 빼앗으려는 수작에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가 괘씸죄에 걸렸다. 어떤 사람이 그를 고발했고 한무제는 아첨꾼인 어사대부 장탕(張湯)에게 사건을 맡겼다. 장탕은 안이가 예전에 황제가 내린 어떤 명령에 입술을 삐죽 내민 적이 있었다는 말을 전해 듣고 ‘마음속으로 황제를 비방한 분명한 증거’라며 ‘복비(腹誹·마음속으로 비방함)죄’로 그를 사형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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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비죄는 현대 중국에서 양봉음위(陽奉陰違)죄로 이어지고 있다. 앞에서는 순종하는 척하고 속으로는 딴마음을 먹고 있다면서 처벌하는 죄다.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측근으로 막강한 권한을 휘둘렀던 저우융캉 전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도 2014년 이 죄명으로 당적을 박탈당하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인민일보는 당시 “당 정치 기율의 레드라인을 엄수하고 결코 양봉음위와 제멋대로 하는 행동을 윤허하지 않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2017년 쑨정차이 전 충칭시 당 서기가 낙마할 때의 죄목도 같았다. 양봉음위죄는 북한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적용됐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고모부인 장성택은 ‘양봉음위하는 종파적 행위를 일삼았다’ 등의 이유로 참혹한 죽음을 당했다.

중국 당국이 최근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한 자국의 차량 호출 업체 디디추싱을 무자비하게 제재하는 것은 ‘양봉음위’로 여기기 때문이라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최근 트위터에 유포된 ‘디디 사건 해독(解讀)’이란 문건은 “이런 속전속결 응징의 배경에 ‘중앙’의 분노가 자리 잡았다”고 주장했다. 권력의 뜻을 거스른다고 왕조시대에나 있을 법한 죄목을 동원하는 행태를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러위청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중국 공산당에는 인권과 관련해 금메달이나 훈장을 줘야 한다”는 억지 주장까지 폈다. 반민주적 통치를 하면서 ‘늑대 외교’를 벌이는 중국의 눈치를 보는 외교를 접을 때가 됐다. 이런 나라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민주와 인권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과의 협력을 한층 강화해야 할 것이다.


오현환 논설위원
hho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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