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개혁을 누구보다 염원했던 이가 있다. ‘조국 흑서’로 불리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의 공저자인 권경애 변호사이다. 지난 2019년 당시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권 변호사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쓴 검찰 개혁 논리를 회의 자료로 활용했다. 권 변호사는 2019년 서울지방변호사회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및 검경 수사권 조정 태스크포스(TF)에서 활약하면서 문재인 정권의 든든한 응원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무법과 위선이 판치는 세상을 목격하고 깊은 배신감과 환멸을 느꼈고 세상에 진실을 알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는 조 전 장관이 출간한 ‘조국의 시간’에 대항해 ‘무법의 시간’이라는 책을 내며 다시 한 번 화제의 중심에 섰다.
권 변호사는 12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조국 사태를 통해 집권당과 친문(親文) 지지자들이 보여준 모습은 파시즘적 행태였다”며 “자기 편에 불리한 뉴스는 불신하고 혐오하며 공격하고 검찰 개혁과 조국 수호를 등치시키는 이른바 ‘빠시즘’으로 변질됐다”고 꼬집었다. 그는 ‘촛불 혁명’의 정신 역시 철저하게 훼손됐다고 말한다. 권 변호사는 “촛불 혁명은 우리 사회가 헌법에 명시된 법적 절차를 통해 민주주의에 역행한 대통령을 탄핵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면서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헌법의 범위를 넘어선 법치 파괴를 일삼으면서 촛불 정신을 배반했다”고 강한 톤으로 비판했다.
-‘조국의 시간’의 대척점에서 ‘무법의 시간’을 냈다. 각오가 남달랐을 것 같다.
△2019년과 2020년은 합법의 외피를 두른 법치의 붕괴 과정이었다. 그런데 꼼꼼하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법치의 와해가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 알아채기 어렵다. 진보 진영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사실을 왜곡하고 선동하고 있지만 반박 논리를 찾기가 그리 쉽지 않다. 전문적인 법률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앞장서 사실관계를 제대로 규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욕심을 내자면 시민들이 ‘조국의 시간’과 ‘무법의 시간’을 함께 읽고 양측 논거를 균형 있게 보는 재료로 삼았으면 한다.
-책 제목이 당초 검토했던 ‘독재의 풍경’에서 ‘무법의 시간’으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무법의 시간’은 2019년 조국 사태 이후 2020년까지를 설명할 수 있는 적합한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승자의 거짓 기록이 역사가 되게 할 수 없었다. 누군가는 사실을 충실히 기록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하나둘씩 자료를 모으고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 때 컴퓨터에 저장했던 파일명이 ‘독재의 풍경’이었다. ‘무법의 시간’ 역시 내가 제안한 제목인데, 법을 초월하고자 하는 세력이 법치를 파괴하는 무법의 시간이었다고 봤기 때문이다.
-‘참여정부’로 불리는 노무현 정부를 계승했다는 문재인 정부에서 실망스러운 풍경을 자주 목격하게 되는데.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정계에 본격 진출한 86세대 운동권 세력은 이미 참여정부의 주축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행태는 거의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본인이 절차적 민주주의를 매우 중시했기 때문에 여당과 청와대 역시 법적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그렇지 않았다. 전혀 다른 정부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른바 ‘대깨문’이라 불리는 강성 친문 지지층이 등장하면서 그렇게 됐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들은 ‘나꼼수’와 유시민에게 정치를 배웠으며 10년 넘게 이들의 책을 읽고 강연을 따라다녔다. 자신들이 원하는 뉴스를 포털에 전진 배치시키기 위해 ‘실검(실시간 검색어)’ 전쟁에 참전하고 비방 댓글과 문자 폭탄으로 반대 의견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 마치 독일 나치 정권의 돌격대와 같은 행태를 보여왔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정치적 타살’이었다고 규정했는데.
△문 대통령에게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가족과 측근의 잘못에 대한 전직 대통령의 속죄나 우리의 후진적 정치 문화의 결과가 아니었다. 그에게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정치적 타살이었다. 타살자는 이명박 정권, 검찰, 보수 언론, 그리고 특히 더 아프게 했던 진보 언론이었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의 타살자에 대한 적개심을 검찰 개혁과 언론 개혁이라는 개혁 프로그램으로 치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친문 지지층 스스로 검찰 개혁과 언론 개혁을 완수할 사명을 부여 받았다고 믿게 만들었다. 이처럼 만들어진 적에 대한 증오로 집단의 치부와 무능을 가리고 집단의 우수성을 확인 받고 싶어하는 심리를 파고들어 대중을 결속시키는 정치가 바로 파시즘이다.
-독일 나치와 문재인 정부의 통치 방식을 등치시킬 수 있는가.
△제1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살인적인 인플레이션과 가혹한 전쟁 배상금으로 고통 받는 독일 민족들에는 자신들이 겪는 불행을 탓하며 맘껏 증오할 적이 필요했다. ‘볼셰비즘은 세계 정복을 꿈꾸는 유대인들의 수단’이라는 음모론은 독일 민족에 패전이 독일 민족의 무능 탓이 아니라는 희망을 줬고 유대인에 대한 증오심을 불태우게 만들었다. 로버트 O 팩스턴은 ‘파시즘이 강권적 통치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증오와 폭력의 정치에 가담한다는 점에서 군사 독재나 권위주의 체제와 다르다’고 말한다. 문재인 정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참여 정부의 정치적 무능과 측근·가족의 비리 때문이 아니라 검찰과 언론 등 적폐 세력 때문이라며 증오의 정치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대중의 증오와 열정을 결집시켜서 정권이 추진하는 사법 개혁과 언론 개혁에 참여하도록 선동한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과거 독재 정권과 다른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권위주의 군사 정권은 은밀하고 음습하게 통제하고 감시하는 방식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다. 국가 정보기관을 활용해 억압하고 강제로 구인해 물리적 폭력을 가했기 때문에 독재 정권이고 불법행위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날조된 사실로 검찰과 언론을 악마화시켜 대중을 움직인다. 친정권 검사들에 의해 날조된 ‘(건설업자) 윤중천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어용 지식인 혹은 좌파 언론이 선동하면 대중들이 날조된 정보를 유통하면서 증오심을 확산시킨다. ‘적폐’로 낙인 찍히면 무차별적으로 공격 당한다. 훨씬 더 교묘해지고 지능화됐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에 파시즘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 금지 사건이 검찰 개혁에 이용됐다고 주장했는데.
△나치 정권이 ‘의사당 방화 사건’을 이용해 수권법을 통과시킨 것처럼 문재인 정권은 김학의 전 차관 사건을 검찰 개혁에 활용했다. 김 전 차관을 특수강간 혐의로 처벌하기 위해 날조된 ‘윤중천 보고서’를 만들었고 검찰을 악마처럼 비치게 했다. 국민의 인신을 구속하는 국가의 형벌권은 절차적·실체적으로 법의 한계 내에서 행사해야 한다. 법치주의와 적법 절차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의 공권력 행사를 제한하는 헌법의 대원칙이다. 그런데 검찰을 개혁하겠다는 세력이 법치주의를 무시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범한다면 검찰 개혁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정권은 촛불 정신을 계승한 정부라고 자부해왔는데.
△촛불 혁명은 우리 사회가 헌법에 규정된 탄핵이라는 제도를 현실에서 가동시킨 역사적 사건이다. 민주주의에 역행한 대통령은 언제라도 탄핵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헌법 정신과 법치주의에 근거한 시민의 정치적 참여였다. 촛불 혁명은 우리 국민의 민주적 의식과 헌법적 의식을 획기적으로 전환시킨 혁명이었다. 하지만 촛불 정부라고 자부하는 문재인 정부가 민주주의를 발현시킨 촛불 정신을 정면으로 배반했다. 검찰 개혁, 사법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법치주의와 적법 절차의 원리가 붕괴됐고 이 땅의 민주주의를 훼손시켰다.
-파시즘은 현대 대중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양한 형태로 변주될 수 있다고 경고했는데.
△파시즘은 이성적 논쟁을 직접적인 감각의 경험으로 교묘히 바꿔치기함으로써 정치를 미학으로 변형시켜 본질을 전도시키는 대중 심리 조정술이자 통치 기술이다. 어떤 이데올로기와도 결합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특히 SNS가 발달된 현대 대중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얼마든지 특정 정치인과 지지자 사이의 정서적 결합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문 대통령과 대깨문의 관계가 이재명 경기지사와 그 지지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그 지지자 사이에서 재연될 수 있고 파시즘의 형태로 변질될 수 있다. 대중민주주의가 역설적으로 파시즘의 토양이 된 셈이다. 거짓이 진실을 묻으려고 하는 파시즘의 위험한 도전에 굴하지 않고 상식이 통용되고 공존과 민주가 일상이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깨어 있어야 한다.
She is…
1965년 서울에서 출생해 1983년 연세대 국문과에 입학했다. 서울·경기 등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1995년 늦깎이로 대학을 졸업했다. 2001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33기)을 졸업한 뒤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쌀 협상 이면 합의 의혹 국정조사위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범국본 등의 활동을 했다. 2005년 참여연대, 2006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에 가입했으나 2020년 두 곳 모두 탈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