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쓰레기 조각들, 그의 예술에 조각이 되다

아르코미술관 '사랑과 평화' 초대전

故 정재철 수행적 작품세계 조명

폐플라스틱 연결해 '미술 언어'로

해외서도 공유지 가치 환기시켜

미공개작 24점 등 100여점 선봬

정재철의 ‘제주일화도’(2019)/사진=아르코미술관정재철의 ‘제주일화도’(2019)/사진=아르코미술관




자연의 섬 ‘제주도’의 지도 위로 주황색 작은 원이 곳곳에 찍혔다. 섬 주변을 둘러싼 크고 작은 바위의 표시인가도 싶지만, 사실 이 점들은 제주도 근해에서 발견한 해양 쓰레기를 좌표처럼 표시한 것이다. 미술가 정재철(1959~2020)이 2013년부터 간암으로 생을 마감한 2020년까지 진행한 ‘블루오션 프로젝트’의 하나인 ‘제주일화도’(2016)는 작가가 직접 제주도를 돌아다니며 현장 답사를 통해 담아낸 해양 쓰레기의 루트맵이다. 정재철은 블루오션 프로젝트를 통해 신안군, 제주도, 새만금 등 전국 해안가를 다니며 해양 쓰레기의 이동 경로를 담은 지도를 만들었다. 지도 위에 박힌 작은 점들과 해류 드로잉은 해양 산업과 근대화, 문명의 발전 같은 인류의 밝은 역사 뒤에 가려진 ‘마이너스 시대’의 모습을 투영한다. 제주일화도가 걸린 벽면 뒤편 바닥에는 그간의 긴 여정을 반영하듯 찌그러지고 때 묻은 형형색색의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거대한 뗏목처럼 줄지어 섰다.

‘정재철: 사랑과 평화’ 전시장 한쪽 바닥에 늘어선 해양 쓰레기들/사진=아르코미술관‘정재철: 사랑과 평화’ 전시장 한쪽 바닥에 늘어선 해양 쓰레기들/사진=아르코미술관



현장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공동체와 공유지에 대한 남다른 사유를 선보여 온 미술 작가 정재철. 그의 예술 세계를 조명하는 전시 ‘사랑과 평화’가 아르코미술관 기획 초대전으로 오는 8월 29일까지 열린다. 정재철의 미공개 유작 24점을 포함해 총 100여 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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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는 블루오션 프로젝트와 함께 정 작가의 개념·수행 미술 작업을 대표하는 ‘실크로드 프로젝트’(2004~2011)도 만나볼 수 있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소비 문화의 상징인 폐 현수막이 소통의 매개였다. 정 작가는 중국과 파키스탄, 인도, 네팔 등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여행하면서 현지인들에게 폐 현수막을 전달하고, 이후 현지를 재방문해 그들이 이 현수막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확인해 기록하고, 다시 현지에서 폐 현수막을 활용한 새 작품과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총 3차례의 기획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장소와 시간을 탐구하고, 공유지에 대한 의식을 환기하고자 했던 그의 여정은 설치 작품과 드로잉, 사진·영상 기록 등으로 소개된다. 참고로 전시 제목인 ‘사랑과 평화’는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마지막 여행지였던 런던 팔러먼트 광장에서 반전 시위대 천막에 한글로 적은 문구에서 따 왔다. 작가가 지난 20여 년 간 장소를 옮겨가며 기록하고 추구했던 세계관을 함축한 문구다.

정재철 작가가 영국 런던 팔러먼트 광장의 반전 시위대 천막에 한글로 ‘사랑과 평화’를 적는 장면이 담긴 ‘실크로드 프로젝트’ 영상/사진=아르코미술관정재철 작가가 영국 런던 팔러먼트 광장의 반전 시위대 천막에 한글로 ‘사랑과 평화’를 적는 장면이 담긴 ‘실크로드 프로젝트’ 영상/사진=아르코미술관


전시에서는 이 밖에도 재개발 지역에서 가져온 돌, 씨앗, 버려진 식물부터 작가의 작업 변천 과정 등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영상감독 백종관과 연구자 이아영이 정재철의 작품을 재구성·해석해 선보이는 작품도 눈길을 끈다. 두 사람은 생전의 작가와 특별한 인연이 없던 사람들이다. 아르코미술관은 “유작을 중심으로 섣부르게 미술사적인 평가를 하기보다는 작업의 의미를 살려 존중하자는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다”며 “그래서 생전 정 작가와 인연이 없는 분들의 시각으로 그의 작업의 의미와 삶의 단면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작가가 던진 질문은 지금도 유효한 내용”이라며 “회고전이라기보다는 작가와 작품의 사회적 맥락을 짚고, 그 의미를 발굴하려는 취지”라고 덧붙였다.


송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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