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김창경 "원천·기초연구, 금과옥조 아니다…기술 연결 플랫폼 구축해 사업화해야"[청론직설]

◆김창경 한양대 교수(전 교과부 차관)

R&D 성공률 98%지만…단일 기술 상용화 힘들어

20세기 사고방식 버려야 4차 산업 혁명 성공 가능

R&D, C&P·S(Connect&Problem Solving)로 전환을

연구 개발비의 20%, 기술 이전에 과감히 투자를

대형 R&D, 예타에 2년 걸려 뒷북 지원 개선해야

김창경 한양대 과학기술정책학과 교수가 14일 연구실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하며 “국가 R&D 시스템에서 기초·원천 연구만 강조하거나 지원금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플랫폼을 먼저 구축한 뒤 여러 기술을 응용해 사업화하는 쪽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권욱 기자김창경 한양대 과학기술정책학과 교수가 14일 연구실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하며 “국가 R&D 시스템에서 기초·원천 연구만 강조하거나 지원금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플랫폼을 먼저 구축한 뒤 여러 기술을 응용해 사업화하는 쪽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권욱 기자




“정부가 자꾸 대학이나 출연 연구원의 연구개발(R&D) 과제에서 원천 기술, 기초연구를 금과옥조처럼 강조하는데 그런 발상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것입니다. 세상이 빅데이터 플랫폼 경제와 인공지능(AI) 시대로 바뀌었기 때문이죠. 제조업을 하는 기업도 아직 3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교육과학기술부 제2차관을 지낸 김창경(62·사진) 한양대 과학기술정책학과 교수는 14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 연구실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플랫폼 시대를 맞아 이제는 R&D에서 C&P-S(Connect&Problem Solving, 연결해 문제 해결)로 전환해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분야별로 데이터가 모이는 플랫폼을 구축하고 다양하게 존재하는 국내외 기술을 연결해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R&D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 R&D 과제 성공률이 98%라고 하는데 그런 단일 기술이 상용화될 것이라는 20세기 사고방식을 버려야 4차 산업혁명에서 성공할 수 있다”며 “우리 대학이나 출연연의 R&D가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일부에서 삼성전자 위기설이 나오는 것도 21세기 마인드로 무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과학기술 파워는 기업에서 꽃을 피워야 하는데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어떻게 보는가.

△삼성전자가 세계 메모리 반도체에서 선두 자리를 위협 받고 있고 설계·비메모리 반도체뿐 아니라 파운드리 분야에서도 대만 TSMC 등에 점점 더 뒤처지고 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대만을 키우려는 지정학적 요인도 있어 삼성의 추격이 힘들어지고 있다. 삼성이 초격차를 강조해왔는데 올 초부터 그런 말이 사라졌다. 초격차를 빼앗긴 지 벌써 몇 년 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삼성은 반도체 공정에선 재빨리 잘하는데 그곳에서 혁신 문화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반도체는 사실 100% 미국 기술 아닌가. 세계가 AI 퍼스트 시대를 맞아 플랫폼 경제로 넘어갔는데 국내 기업들은 플랫폼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물론 네이버나 카카오가 플랫폼을 구축했다고 하나 아직도 국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 경제에서 기업가 정신 고취와 기술 사업화 촉진이 중요한데.

△정부가 올해 27조 원 넘게 대학과 출연 연구원, 기업의 R&D를 지원하는데 이 가운데 사업화되는 게 얼마나 있는가. 기업가 정신의 쇠퇴는 중소기업의 경쟁력 약화와 연계돼 있다. 대기업의 문화도 여전히 관료적인데, 특히 최고경영자(CEO)는 임기 중 실적 내기에 급급하다. 스페이스X·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나 엔비디아의 젠슨 황처럼 기술의 흐름을 잘 아는 경우도 드물다.

-우리 국가 R&D 시스템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국가 R&D에서 원천 기술, 기초연구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경향이 생겼다. 하지만 이 시대에 아직도 원천 기술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정부 R&D 과제에서 성공률이 평균 98%라고 하는데 대부분은 이미 남이 가진 기술이어서 산업화가 잘되지 않는다.대학이나 출연연, 기업의 연구자나 병원이나 자신의 경쟁상대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



-연구소나 기업들이 플랫폼을 먼저 구축하고 기술을 붙여야 한다는 얘기인데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렇기는 하지만 지금은 신기술이 있을 수 없다. 어딘가에 이미 있다. 정부도 기술 흐름을 빨리 이해해 문제를 해결하는 관점으로 R&D 시스템에 접근해야 한다. 물론 기초연구도 중요하다. 제가 2010~2012년 교육과학기술부 2차관을 지낼 때 기초과학연구원(IBS) 설립을 위한 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그렇게 대규모로 투자해야 경쟁력이 있다. 하지만 실상 IBS에서 얼마나 네이처나 셀에 논문을 쓰고 기술 사업화로 이어지게 했는지는 의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3,000만원짜리 기초연구도 나오는데 학생 양성에는 의미가 있으나 세계적 성과를 낸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다.

-그동안 남 따라하기 추격형 연구 관행이 이어졌기 때문에 기초·원천 연구를 강조하는 것 아닌가.

△맞다. 그런데 기초연구도 데이터 사이언스로 전환해야 하는 것이지, 이제는 실험실에서만 하는 게 아니다. AI, 데이터 로봇이 한다. 미국 실험실의 경우 코로나19 상황에서 온라인으로 실험하고 플랫폼으로 구현하고 있다. 기술이 어떻게 될지 아는 노하우를 가져야 한다. 그 정도 안목을 가지려면 사업화 연구 경험이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대학이나 출연연이나 기술 이전 전담 조직(TLO·Technology licensing office)이 매우 약한데.

△특허 내고 기업에 기술을 이전해 몇억 원 받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다. 우리보다 훨씬 앞선 경쟁 상대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 연구개발비의 20%는 기술 이전을 위해 써야 한다. ‘브레이크스루(돌파구) 기술’이나 근본적인 솔루션이 있어야 한다. 화이자나 모더나가 발상을 전환해 코로나 바이러스의 스파이크를 사람 세포에 만드는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백신을 1년 만에 개발한 것은 엄청난 일이다. 우리는 그동안 바이오에 엄청나게 투자했지만 백신을 개발하려면 아직 멀었다. 해마다 노벨상 후보로 언급되는 몇몇 교수가 있는데 연구비는 많이 받지만 솔직히 그런 연구로 노벨상을 받기는 힘들다.

-결국 기존 방식대로 R&D 지원만 늘린다고 될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인데.

△정부나 연구자나 세상이 급속히 바뀐 것을 뼈저리게 체감해야 한다. 비슷한 부류와 수준의 전문가들이 모이고 잘나가는 전문가에게 연구비를 집중 지원해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커다란 판을 봐야 한다. 2007년 말 대선 공약으로 단군 이래 최대 기초과학 프로젝트라고 불리던 중이온가속기(라온)가 한 예다. 1조 5,000억 원 정도의 비용이 드는데 2017년이 완공 목표였지만 앞으로도 6년 정도 지나야 완공될 것으로 보인다. 요소만 많이 투입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당시 물리학자들에게 사업 기획을 맡겼는데 공학자들이 같이 했어야 했다.




-원전이나 신재생에너지 등 에너지 문제도 통합적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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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 시대에 태양광·풍력·태양열·지열 등 신재생에너지와 수소 등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나 당장은 친환경 기술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전기가 굉장히 많이 필요한데 신한울 원전 3·4호기를 착공했다가 중단하는 원전 정책은 너무 이상적으로 앞서간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실을 냉정하게 봐야 한다.마찬가지로 핵융합 발전쪽도 장밋빛 전망을 하고 있다.

-‘개방형 혁신’이 잘 안 된다는 지적도 많은데.

△R&D가 잘되지 않고 있는데 이제는 C&D(Connect&Develment, 연결해 개발) 또는 C&P-S를 해야 한다. 여전히 대학 혁신의 가장 큰 적은 교수다. 너무 자기 생각만 하니 해외 일류 대학과의 격차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노벨상 수상자 등 초우량 교수가 있으면 학과·단과대·대학이 초우량이 된다. 우리 연구자 가운데 노벨상 수상자의 실험실을 직접 찾아가 본 사람도 거의 없지 않은가. 그런 초일류 연구자에게 연구비를 줘서 연을 맺고 우리 학생들을 그 쪽에 보내 훈련 시켜야 한다.

-대형 R&D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예비 타당성을 검토한다고 시간을 보내는데.

△기초연구가 산업화되는 세상인데 이미 뒷북을 친 상태에서 2년여 동안 예타를 검토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결과적으로 연구비는 많이 풀리지만 뒤처진 연구를 하게 된다.

-산학 협력과 국제 공동 R&D를 활성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미국 일류 교수들에게 과제 수행 가능성을 적극 타진해야 한다. 미국 교수들은 10억 원뿐 아니라 1억 원의 연구비도 크게 여긴다. 기업도 실력이 있어야 산학 협력이 효율적으로 이뤄진다. 해외와의 공동 R&D는 정부 R&D 투자비의 5% 정도라도 MIT나 우수 연구기관과 같이 하면 효과가 엄청날 것이다. 물론 그동안 했던 것처럼 양해각서(MOU)만 맺고 끝내서는 안 된다.

◆“우울증 등 치료 위한 디지털헬스케어센터 플랫폼 구축에 나서”

김창경 한양대 교수(전 교과부 차관)

“코로나19 사태로 정신 건강도 크게 위협 받는 상황에서 우울증 등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플랫폼 구축에 나서고 있습니다.”

김창경(사진) 한양대 과학기술정책학과 교수는 14일 대학 연구실에서 진행한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정서 행동 변화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게임 등 맞춤형 디지털 치료제를 내놓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 교수는 한양대 디지털헬스케어센터(센터장 김형숙 교수) 운영위원장으로서 최근 이 센터가 중심이 된 컨소시엄이 디지털 치료제 개발을 위한 총 290억 원 규모의 정부 연구개발(R&D) 과제 사업자로 선정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 과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4년간 140억 원을 지원하고 기업들이 150억 원을 출연해 수행하게 된다. 컨소시엄에는 대기업, 벤처·중소기업, AI 업체, 클라우드사, 블록체인사, 글로벌 정보기술(IT)사, 여러 종합병원 등이 참여하고 있다.

김 교수는 대학 연구센터에 대해 “신약과 원자력처럼 안전이 중요한 영역과 디지털처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문제 해결을 위한 독창성이 필요한 영역이 있다”며 “디지털 신약은 두 가지를 융합한 신산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울증·ADHD·치매·불면증·자폐·스트레스·비만·당뇨병 등을 어디서든 게임이나 모바일 앱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이번 컨소시엄의 목표”라며 “국내외에서 다양하게 여러 디지털 치료제 개발이 추진되고 있으나 우울증 등의 치료를 위한 국제 표준을 선점하는 데 발 벗고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이 센터는 스마트폰을 통해 수집하는 생활 데이터, 뇌 영상, 심전도 등 생체 신호 데이터를 클라우드로 자동 전송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표준화하고 있다.

He is…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MIT에서 재료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센소매틱일렉트로닉스코퍼레이션(도난 방지 센서 기업)에서 6년 동안 수석엔지니어로 일하며 MIT에서 산학 협력을 수행했다. 1997년 한양대 재료공학과 교수가 됐다. 110여 편의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 논문을 쓰는 등 전문성을 인정받아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을 거쳐 2010~2012년 교육과학기술부 제2차관을 지냈다. 한국연구재단 선임이사, 산업기술진흥원 이사, 과학창의재단 이사도 역임했다. 현재 한양대 디지털헬스케어센터 운영위원장으로서 디지털 치료제 개발과 과학기술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고광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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