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서초동야단법석]"과거 아닌 미래" 취지 무색…진흙탕 싸움 번진 '한명숙 사건 감찰'

'한명숙 사건' 합동감찰 발표 후 법조·정치권 곳곳서 반발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나왔는데…"소모적 논쟁 끝내야"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14일 오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대회의실에서 합동감찰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제공=법무부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14일 오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대회의실에서 합동감찰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제공=법무부




“우리 검찰이 과거와 단절하고 완전히 새로운 미래검찰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장장 4개월여 간 이뤄진 법무부와 대검찰청의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 합동감찰 결과를 발표하면서 내놓은 말이다. 하지만 박 장관의 바람은 하루도 못 채우고 산산이 깨지고 말았다. 합동감찰 결과 발표 후 법조계는 물론 정치권까지 가세한 ‘진흙탕 싸움’으로 흘러가는 양상이다. 급기야 합동감찰과 관련해 진위 여부를 둘러싼 소송전까지 예고된 상태다.

10년 간 이어져 온 ‘한명숙 사건'이 뭐길래


이번 사태의 발단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참여정부 당시 실세 총리이자 친노계의 대모로 불린 한명숙 전 총리는 2010년 7월 재판에 넘겨진다. 한신건영 대표였던 고(故) 한만호씨로부터 9억원의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가 적용됐다. 한 전 총리가 기소에 이르게 된 결정적인 증거는 “뇌물을 줬다”는 한씨의 진술이었지만, 같은 해 12월 한씨는 2번째 공판에서 진술을 번복한다. 하지만 검찰의 항소로 진행된 항소심에서 한 전 총리는 징역 2년의 실형과 추징금 8억8,000만원을 선고받는다. 대법원은 2015년 8대 5로 한 전 총리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그렇게 잊혀져 가던 이 사건은 지난해 4월 한씨의 구치소 동료 수감자였던 최모씨의 민원을 통해 되살아난다. 최씨는 법무부에 제출한 민원서를 통해 “한만호 사건은 검찰의 공작으로 날조된 것으로, 상상할 수 없는 추악한 검찰의 비위와 만행이 저질러졌다”는 취지의 의혹을 제기했다. 이 사건이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한명숙 모해위증 교사’ 의혹이다.

법무부는 최씨의 민원을 대검찰청 감찰부로 이첩했고, 지난해 9월 임은정 당시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은 ‘한명숙 수사팀’의 모해위증 교사 의혹 사건을 조사한 뒤 이듬해 2월 ‘재소자 증인들을 입건하겠다’는 결재를 올렸다. 하지만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지시로 지난 3월 사건의 주임 검사가 대검 감찰3과장로 지정된 뒤 관련자들에 대해서는 ‘증거부족’으로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이에 박 장관은 기소 가능성을 대검 부장회의에서 재검토하라는 수사지휘와 함께 한 전 총리 사건 수사 당시 인권 침해적 수사·재소자 편의 제공 등 부적절한 수사관행이 없었는지 들여다보라는 합동감찰을 지시했다. 조남관 당시 검찰총장 직무대행 주재로 열린 대검 부장회의에서는 앞선 결정과 마찬가지로 모해위증 의혹에 대해 ‘죄를 물을 수 없다’는 판단이 나왔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연합뉴스한명숙 전 국무총리/연합뉴스


“부적절했던 수사"…사실상 대검 판단 뒤집은 감찰 결과


대검의 결정과는 별도로 합동감찰은 진행됐다. 문제는 4개월 만에 나온 감찰 결과가 사실상 앞선 무혐의 판단을 뒤집는 내용이라는 점이다. 감찰 결과에 따르면 수사상황 유출은 물론, 조사를 빌미로 한 재소자 반복 소환, 협조자에 대해서는 부적절한 편의를 제공하는 등 위법한 수사관행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박 장관은 지난 14일 합동감찰 결과를 직접 발표하면서 한명숙 사건 수사팀이 당시 한 전 총리를 기소한 뒤에도 재소자로 있던 증인을 무려 100여 회나 불러 향후 재판에서 증언할 내용을 미리 조사했다고 전했다. 재소자 증인들은 외부인과 자유롭게 접견하거나 통화할 수 있었고 공소 제기 후 검사의 참고인 조사는 이른바 증언 연습으로 증인의 기억이 오염되거나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박 장관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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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대검이 “수사팀이 허위 증언을 사주했다”는 민원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절차적 정의가 훼손됐다는 입장이다. 법무부가 규정에 따라 대검 감찰부로 이첩한 사건을 당시 윤 총장이 이례적으로 인권부에 재배당했고, 사건을 수사하던 임 검사를 배제시킴으로써 ‘제 식구 감싸기’ 의혹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다만 정작 모해위증 의혹이 사실로 확인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실체적 혐의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대선 예비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17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 후 5·18 구속 관련자들과 만나고 있다./연합뉴스대선 예비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17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 후 5·18 구속 관련자들과 만나고 있다./연합뉴스


합동감찰 후폭풍, ‘진실공방’으로 장기화되나


이 같은 발표에 당시 대검 지휘부 및 수사팀의 반박은 물론, 이를 맞받아치는 관계자들의 재반박으로 ‘진실공방’이 벌어지는 모습이다. 가장 먼저 포문을 뗀 조남관 법무연수원장은 민원 처리 과정에서의 절차적 정의를 문제 삼은 박 장관의 발언에 “전임 대검 지휘부 입장에서 볼 때 사실과 다른 내용이 포함돼 있다"는 글을 검찰 내부 통신망에 올렸다. 조 원장은 우선 그는 "본 민원 사건은 대검 감찰3과에 접수돼 당연히 감찰3과장이 주임검사가 돼 처리해 왔다"며 "다른 검사가 이를 처리하려면 검찰총장이 재배당 지시를 해야 하는데 전임 검찰총장은 임은정 당시 감찰정책연구관에게 그런 지시를 한 바가 없다"고 사실을 바로잡았다. 임 검사는 감찰3과장의 보조 역할에 그쳤을 뿐,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는 취지다.

윤 전 총장 역시 자신의 SNS에 “하다 하다 안되니 요란하기만 하고 알맹이도 없는 결과 발표로 '한명숙 구하기'를 이어가는 것”이라며 “한 씨가 불법 정치자금을 받지 않았고, 대법원의 유죄 판결이 그렇게 억울하다면 재심을 신청하면 된다”며 합동감찰 결과를 비판했다.

이에 조국 전 장관은 자신의 SNS에 “(윤 전 총장과 조 원장 등) 이들은 한명숙 전 총리 사건에서의 증언연습 등에 대한 감찰을 맡은 대검 감찰부가 감찰을 철저히 할까 걱정돼 이 사건을 수사권이 없는 인권부로 재배당했다”며 “윤(尹)로남불”이라고 꼬집었다.

정치권에서도 합동감찰 발표로 촉발된 신경전에 기름을 붓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와 이낙연 민주당 전 대표는 이번 합동감찰 결과와 관련해 경쟁자인 윤 전 총장에 대한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같은 당 김용민 최고위원도 "윤 전 총장이 검찰의 잘못을 덮기 위해 배당권 등을 남용했고 수사 감찰을 방해한 형사 처벌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공세를 펼쳤다.

합동감찰 결과와 관련한 소송전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임 검사는 “감찰과정에서 임 검사의 협박이 있었다”는 한 전 총리 재판 당시 검찰 측 증인의 발언을 보도한 한 언론사를 겨냥해 “민형사상의 책임을 곧 물을 예정”이라고 SNS를 통해 밝혔다.

일각에서는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나온 사건에 대한 소모적인 논란은 불필요한 정치적 논쟁과 사법 불신만 초래할 뿐, 바람직하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수사 관행 개선에만 집중하되 더 이상의 갈등 국면을 초래하는 건 막아야 한다는 취지다.

광주지검 순천지청장을 지낸 김종민 변호사는 “(한명숙 뇌물사건과 관련한) 더 이상의 소모적 논쟁은 국가적 낭비”라며 “논쟁이 지나치면 진실은 사라진다”고 꼬집었다.



이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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