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초대 경제부총리인 김동연 전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오는 19일 정책 구상을 담은 저서를 정식 출간합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최재형 전 감사원장과 함께 현 정부 사람이면서도 야당 대선주자로 꼽히는 만큼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신랄한 비판이 쏟아질 것이라는 예상속에 책이 정식 출간되기도 전에 기자들이 책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습니다.
특히 윤 전 총장이나 최 전 원장과 달리 부총리 재임기간 정권과의 갈등을 수면위로 끌어올리지 않은 채 묵묵하게 역할을 수행한 만큼 오히려 속에 담아둔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적나라하게 꺼내놓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습니다.
고졸신화 김동연…국가경영 목표를 세우다
도대체 현 정부 정책에 어떤 비판을 내놓을지 궁금해 기자도 온갖방법을 동원해 저서를 먼저 구해 읽었지만 김 전 부총리는 여당도 야당에도 무게를 두지 않고 국가 경영에 대한 질문과 혜안을 내놓고 있었습니다. 그가 은행 합숙소 쓰레기통에 버려진 고시 잡지를 주워든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었던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상고출신으로 낮에는 은행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야간대학(국제대)을 다니는 주경야독 끝에 1982년 입법고시와 행정고시에 붙으며 고위관료의 길에 들어섰고, 엘리트 집합소로 불렸던 경제기획원에서 “요즘은 저런 학교 출신도 오느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비주류였지만 실력으로 편견을 극복한 대표적인 인물로 꼽힙니다.
그의 삶이 곧 정책이었습니다. 기자들이 섣불리 현 정부를 비판하겠거니 생각하고, 야당 대선주자로서의 입지를 다지려는 포석으로 저서를 출간한 것이라는 생각은 지나치리만큼 수준낮은 사고였습니다. 그는 보다 큰 틀의 국가경영 목표를 세우고 정책 아젠다를 꼼꼼하게 기술했습니다.
좌절1. 비전2030
김 전 부총리의 저서 <대한민국 금기 깨기>첫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야당과 언론으로부터 융단폭격을 받은 ‘비전2030’이 나옵니다. 그가 첫번째 좌절이라고 표현했지만 국가경영에 대한 목표를 세운 최초의 사건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어 보였습니다. 책을 인용하자면 <비전 2030의 지향점은 단순하고 분명했다. 제도혁신과 선제적 투자를 통해 동반성장, 질 높은 성장을 이루겠다는 것이었다. 실천을 위한 핵심전략으로 다섯가지를 제시했다. 성장동력의 확충, 인적자원 고도화, 사회복지 선진화, 능동적 세계화, 사회적 자본의 확충이다.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란 개념이 정부 보고서에 들어간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중략) 비전의 실천을 위해 25년간 재정계획을 만들었다. 국가의 역할과 할 일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었다. 단년도 예산편성만 해오다가 이정도 기간의 장기 재정계획을 세운 것은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일이었다. >
장기 재정계획이자 복지설계였던 비전2030은 알고 계시는 것처럼 보고서 발표와 함께 세금폭탄이라는 논쟁으로 완전히 좌초됐습니다. 이를 두고 김 전 부총리는 “보수와 진보의 진영논리 싸움, 이념 논쟁, 프레임 씌우기가 이어졌다. 왜 정책을 이념으로 도색하는 건지, 정치권에서 저렇게까지 싸우는 ‘이념'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지 궁금했다”고 회고하고 있습니다. 현재 당시 야당과 언론의 이념 도색에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현실과 한계를 지적한 셈입니다.
좌절2. 경제부총리의 한계…가장 큰 문제 ‘정치’
두번째 좌절은 현정권 일원으로 내부적 한계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부총리를 제안하며 “우리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꿔주십시오”라는 말에 그는 가슴이 벅찼다고 회상했습니다. <12년전 비전 2030에서 내세웠던 바로 그 모토가 아니었던가!>하지만 그는 현 정부 핵심 정책인 소득주도성장부터 우선 네이밍(naming)부터 잘못됐다고 지적합니다. ‘소득’만이 ‘주도’해서 는 ‘성장’이 이뤄지지 않고, ‘공급’측면에서 혁심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결과적으로는 우리 경제가 ‘가야 할 방향’임에도 많은 국민들이 ‘잘못된 방향’이라고 오인하고 말았다. 진보의 가치를 추구한다고 하면서 진보의 가치를 해치는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무엇보다 김 전 부총리는 비전2030작업 때 경험한 문제들이 부총리 재임 때도 여전했고 더 악화됐다고 밝혔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정치라고도 했습니다. 정권이 바뀐다고 틀이 달라질리가 없다는 한계를 직시한 셈입니다. <기존 패러다임의 견고함, 핵심 의사결정자들의 의식과 역량에 대해서 여러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모든 것이 합쳐져 우리 사회의 수준과 실력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다시 용납할 수 없는 좌절…금기에 도전
그래서 김 전 부총리는 세번의 좌절은 용납이 안된 모양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국가과잉과 격차과잉, 불신과잉’의 사회라고 진단한 뒤 기회복지국가의 길로 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나섰습니다. 이를 위해 금기깨기를 시작해야 한다고도 제안합니다. 벤처 생태계를 정부 주도의 공급시장 위주에서 민간 주도 회수시장 중심으로 전환할 것으로 주장하고 과거 추격경제 시대의 대기업이 아니라 빅블러 시대를 선도하는 혁신 대기업이 늘어나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반(反)기업 정책은 무조건 반(反)시장적이라는 금기, 친(親)기업 정책이 무조건 친(親)시장적이라는 금기도 깨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규제일변도의 정책 패러다임 전환의 필요성도 주장했습니다.
규제개혁부를 신설하고 장관을 부총리급으로 해 규제개혁의 실질적 컨드롤타워가 되도록 하자고 강조했습니다. 노동유연성 모델과 함께 공공기관 일몰제를 제도화하는 등 다양한 정책 제언을 내놨습니다. 부동산 문제 해법으로 야당이 극렬하게 반대하는 ‘토지 공개념’ 도입 필요성도 제시했습니다.
절박한 대한민국 ‘사회적 대타협’의 필요성…연정 수준의 토론과 협력
무엇보다 김 전 부총리는 ‘자기 진영 금기 깨기가 이뤄져야 사회적 대타협의 길이 열린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노사정위원회를 확대 개편한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사회적 합의 도출은 번번히 실패하고 있는 상황에서 완전한 독립성을 확보해 주자고도 합니다. 지금과 같이 예산과 조직을 정부에 의존하게 하지 말고 네덜란드 사회경제위원회(SER)과 같이 고용보험기금을 통해 운영예산을 확보하고 조직도 자율적으로 구성하자는 구상입니다. 특히 그는 동시에 정권이 바뀌어도 논의하는 의제들이 연속성을 갖도록 해야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연정(聯政)수준의 토론과 협력을 촉구하면서 ‘대한민국이 절박하다’고 강조했습니다.
15년전 김 전 부총리가 좌절해야 했던 비전2030의 목표가 이제 더이상 늦춰져서는 안된다는 절절한 호소를 대신해 당시 보고서의 일부를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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