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회식 사라지며 '혼술 안주' 요리…칼 퇴근으로 가족과 대화 늘어

낮술 늘며 초저녁에 '대리기사 콜'

MZ세대는 퇴근후 자기계발 열풍

자영업자·택시기사 등은 직격탄

"밤엔 손님 전멸해 매출 크게줄어"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 시행 첫날인 지난 12일 오후 퇴근 시간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 시행 첫날인 지난 12일 오후 퇴근 시간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독신남 이 모(39) 씨는 얼마 전부터 요리하는 재미에 푹 빠져 살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줄곧 재택근무를 해온 그는 저녁이면 가끔 직장 동료나 친구들과 만나 술잔을 기울이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하지만 지난 12일부터 시행된 수도권 거리 두기 4단계로 사실상 야간 외출이 어려워지면서 이 씨는 ‘혼술’에 곁들일 안주를 만드는 게 새로운 취미가 됐다. 그는 “원래는 주말마다 직장 동료들과 골프를 치거나 동호회 사람들과 바이크를 탔었는데 코로나19가 심해지면서 포기했다”며 “요즘은 업무가 끝나면 인터넷에서 각종 레시피를 찾아보는 재미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으로 수도권 사회적 거리 두기가 4단계로 격상된 지 열흘째를 맞았다. ‘오후 6시 이후 3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라는 사상 초유의 방역 조치는 우리의 일상도 바꿔놓고 있다. 사실상 저녁 회식자리가 사라지면서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와 택시 기사들은 울상을 짓고 있는 반면 젊은 직장인들은 퇴근 이후 자격증 공부나 몸 만들기에 땀을 흘리며 자기계발에 열중이다.



거리 두기 4단계 시행 9일째인 20일 만난 50대 택시 기사 박 모 씨는 깊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낮에는 업무상 택시를 타야 하는 분들이 간혹 있는 편이지만 방역 당국에서 3인 이상 사적 모임을 금지한 오후 6시 이후에는 손님이 전멸이나 다름없다”며 “개인택시 기사들은 요즘처럼 손님이 없으면 차라리 휴가를 가거나 집에서 쉬면 되지만 영업용 택시는 사납금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빈 택시라도 운행을 멈출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사실상 ‘야간 통행금지’에 준하는 거리 두기 강화로 식당업주를 비롯한 자영업자들이 직격탄을 맞은 가운데 저녁 시간대 유동 인구가 줄면서 택시 기사들도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리운전 기사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서울의 한 대리운전 업체 관계자는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가 시작되기 전에는 그래도 오후 9시부터 11시까지가 피크타임이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시간대를 불문하고 대리운전 기사를 부르는 사람들이 크게 줄면서 매출이 4단계 이전과 비교해 3분의 1 이하로 줄어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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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유의 거리 두기 4단계 조치는 대리운전을 부르는 ‘콜’ 시간대도 바꿔놓고 있다. 오후 6시 이후 사적 모임이 어려워지자 점심시간을 이용해 낮술을 마시며 인맥 관리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영향이다. 실제로 카카오모빌리티에 따르면 오후 5~7시대 카카오T 대리 호출 비중은 거리 두기 4단계 이전인 지난 5~11일 2.36%에서 4단계 적용 이후인 12~18일 4.89%로 두 배 넘게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대기업 홍보팀 소속의 김 모 씨는 “거리 두기 강화로 저녁 약속이 모두 취소되면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고객들과 술을 마시는 경우가 늘어났다”며 “자가용으로 출근한 날에는 아직 날이 훤한 오후 6시쯤 대리운전을 불러야 해서 민망할 때도 있다”고 전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 적용 첫날인 지난 12일 저녁 서울 강남역 일대 식당가 골목이 한산하다. /연합뉴스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 적용 첫날인 지난 12일 저녁 서울 강남역 일대 식당가 골목이 한산하다. /연합뉴스


회식이 사라진 저녁 시간을 활용해 자기계발에 투자하는 ‘M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도 부쩍 늘고 있다. 거리 두기 4단계 조치를 자기계발을 위한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스펙 강화를 위한 자격증 공부에 매진하거나 근육질 몸매 만들기에 도전하는 직장인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30대 직장인 권 모 씨는 “재택근무 덕분에 출퇴근에 소모되는 시간이 사라졌고 회식이 사라지면서 업무 이후 저녁 시간도 오롯이 내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며 “이번 기회에 영어 회화 말하기 시험에 도전하고 인터넷을 통해 코딩 수업도 함께 듣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주 헬스장에 등록하고 퍼스널트레이닝(PT) 이용권도 끊은 직장인 강 모(27) 씨는 “그동안 잦은 회식 탓에 체중이 늘었는데도 시간이 없어서 운동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며 “코로나19가 걱정되긴 하지만 퇴근 이후 집에 혼자 있는 것보다는 운동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보디프로필’을 찍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거리 두기 4단계 조치로 회식이 사라지면서 가족과의 관계가 돈독해졌다고 만족해하는 이들도 있다. 두 명의 자녀들 둔 40대 직장인 최 모 씨는 “업무상 술자리가 많아서 평소 아내와 속 깊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오후 6시면 ‘칼퇴근’을 하다 보니 그동안 못했던 대화를 많이 하고 있다”며 “퇴근 이후 놀이터에서 놀아줄 시간도 생겨서 아이들도 매우 좋아하고 있다”고 전했다. 출퇴근 때문에 서울에서 홀로 자취 생활을 하던 사회 초년생들 일부는 본가에서 어머니가 해주는 따뜻한 집밥을 먹으며 재택근무하는 경우도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가 시작된 이달 12일부터 경기도 수원의 본가에 내려와 생활하고 있는 직장인 허 모 (29) 씨는 “회사가 재택근무로 전환하면서 부모님이 계신 본가로 내려왔다”며 “오랜만에 집밥을 먹으면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니 부모님과의 관계도 돈독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박홍용 기자·김태영 기자·심기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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