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수태고지


윤제림


승강기 버튼을 누르면서 아이가 물었다

할아버지 몇 층 가세요?

나는 화를 내며 말했다

나, 할아버지 아니다

아이가 먼저 내리며 인사를 한다

안녕히 가세요,

할아버지!

“이런 고얀 녀석” 하려는데,



“그래, 안녕”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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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나왔다

잘 했다

저 아이가, 내 딸애한테

태기(胎氣)가 있음을 알려주러

먼길을 온 천사인지

누가 아는가





고 녀석도 고스란히 돌려받을 겁니다. 한동안 ‘학생’ 하고 불리다가, ‘총각’ 하고 불리겠죠. 그때까진 우쭐하겠죠. 어느 날 ‘아저씨’라는 말을 처음 듣겠죠. 잠이 안 올 겁니다. 벌떡 일어나 전신 거울 앞에 서겠죠. 볼록 나온 아랫배 아래 발등이 보이는지 목을 빼보겠죠. 성긴 머리털을 쓸어보겠죠. 머잖아 녀석보다 쉰 살쯤 어린 아이가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네겠죠. ‘할아버지, 어디 가셔요?’ 눈물이 핑 돌겠죠, 뭐. 수태고지 변명 저작권은 시인에게 있으니, 뭐라고 둘러댈까요? 생각만 해도 삼복더위가 잊히도록 꼬숩네요, 우하하! <시인 반칠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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