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현실 동떨어진 결정 반복...위상 흔들리는 인권위

코로나 확산 우려 속 “집회·시위 보장” 의견에 공분

인권위 권고 수용 않는 정부 부처·기관도 증가 추세

“국민적 공감대 고려해 다양한 관점 반영해야” 지적

“실제 개선 가능한 수준의 현실적 권고 필요” 목소리

국가인권위원회./연합뉴스국가인권위원회./연합뉴스




개인의 인권을 보호하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출범한 국가인권위원회가 올해로 만 스무 돌을 맞았지만 국민 공감대와 어긋나는 결정을 잇따라 내리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수도권에서 시작된 코로나19 4차 대유행이 전국으로 확산하는 와중에 나온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인권위의 의견 표명은 오히려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최근 들어 정부 부처나 산하기관들조차 인권위의 권고 조치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하면서 인권위의 존재감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권위는 27일 강원 원주시가 사회적 거리 두기 3단계 기준을 적용하면서 집회에만 4단계로 격상한 것에 대해 “집회·시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 것”이라는 의견을 나타냈다. 앞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지난 23일 건강보험공단 인근에서 집회를 열려고 했지만 원주시가 1인 시위를 제외한 모든 집회를 금지했다. 이에 노조는 평등권과 집회의 자유 침해라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하고 긴급 구제를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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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집회를 일괄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비례 금지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게 인권위의 설명이지만 코로나19 방역 조치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자영업자들은 인권위 결정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영업권이 제한당한 채 코로나19 확산세가 한풀 꺾이기만 바라고 있는 상황에서 집회·시위의 자유만 존중하는 인권위의 판단이 현실과 동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또 최근 인권위는 장애 아동을 상습 학대한 혐의에도 자격정지 6개월에 그친 어린이집 교사를 재조사하고 처벌 수위를 재검토해 달라는 피해 아동 부모의 진정도 모두 기각·각하해 논란이 됐다. 인권위는 해당 지자체가 학대 행위에 대한 행정처분 기준을 다소 낮춰 적용한 점은 인정되지만 처분권을 행사함에 있어 중대한 절차상 위반이 있거나 권한을 남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아동학대 사건에 대해 지나치게 형식 요건만 따진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 부처나 산하기관에서 인권위의 권고를 거부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인권위는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남동발전 등에 하청 노동자의 직접 고용 관련 권고를 내렸지만 이들 기관 모두 ‘불수용’ 의사를 밝혔다. 또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도 무기계약직 처우를 개선하라는 인권위 수용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권 말기로 접어들수록 인권위의 위상이 떨어지는 수순을 밟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문재인 정부 집권 초기인 2017년 94.9%에 달했던 인권위 권고 수용률은 지난해 92.3%까지 낮아졌다.

전문가들은 인권위가 현장에 대한 이해도를 토대로 국민적 공감대와 조화를 이루는 권고와 의견 표명을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조영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무차장은 “과거 인권위는 현장 밀착형으로 운영됐을 때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을 했다”며 “현장 활동가에 준하는 이해도를 바탕으로 인권 문제를 살피는 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과거 인권위에서 활동했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인권위가 최종 지향점만 제시할 뿐 다음 단계를 제시하는 일은 소홀했다”며 “당장 개선 가능한 수준의 권고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심기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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