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이 빛나는 점을 보라. 그것은 여기, 우리 집, 우리 자신인 것이다. 지구는 광대한 우주의 무대 속에서 하나의 극히 작은 무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행성은 우주의 어둠에 둘러싸인 외로운 티끌 하나에 불과하다.”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저서 ‘창백한 푸른 점(A Pale Blue Dot)’의 한 구절이다. 1990년 2월, 그의 요청으로 무인 우주 탐사선 보이저 1호가 태양 둘레에 늘어선 6개의 행성 사진을 전송했다. 그 사진 속 작은 점, 지구를 바로 창백한 푸른 점이라 부른다.
지난 2019년부터 운영 중인 우리 기상위성 천리안 2A호는 우리나라 상공에서 지구와 함께 같은 속도로 돌며 24시간 끊임없이 지구 대기를 촬영한 영상을 보내고 있다. 영상 속 지구는 부지런하게도 매일 다른 구름, 다른 날씨를 입고 있다. 그 영상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한 번도 같은 적이 없는 내일의 날씨를 예측하기 위해서다. 무심하게, 있는 그대로 자연을 들여다봐야 한다. 희망이나 목적을 가지고 본다면 도리어 마음이 흐트러진다.
요즘같이 찌는 듯한 폭염이 연일 계속되는 때는 비라도 한바탕 시원하게 내려주길 바라게 된다. 조그마한 구름이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며 비구름으로 발달했으면 하는 바람이 무의식중에 예보를 분석하는데 반영된다면? 결과는 십중팔구 왜곡될 수밖에 없다.
지식도 마찬가지다. 불확실성이 크거나 이론적으로 설명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작은 경험이나 지식이 오히려 눈을 가리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
불교의 한 경전에 ‘수미산이 겨자씨 속으로 들어간다’는 표현이 있다. 비현실적인 것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사물의 외형으로 나타나는 물리적인 세계가 아니라 형상 너머의 본질을 보아야 열리는 세계를 논한 말이다. 불교적 관점에서는 모든 존재의 본질은 변하는데 있다. 무상(無相)이 본질이다. 텅 비어 마음이 크게 열리면 수미산이 아니라 지구인들 겨자씨에 들어갈 수 없겠는가.
날씨는 무상(無相) 그 자체가 아닌가. 어쩌면 자연은 본질을 그대로 우리에게 내보이고 있지만 이를 관찰하는 인간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것은 아닐까? 올바른 날씨 예측을 위해서는 마음을 맑게 비워야 한다. 있는 그대로 하늘을 들여다보고 주관적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눈앞의 현상과 그 이면에 있는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 오늘의 날씨를 제대로 관찰, 관측하는 것이 중요한 첫걸음인 이유다.
기상청 예보관들은 오늘도 천리안 2A호가 어둠 속에서 외롭게 지구를 돌며 부지런히 보내는 지구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다. 우주의 어둠에 둘러싸인 외로운 티끌 하나에 불과한 지구, 그중에도 아주 작은 한반도의 날씨가 보여주는 역동적인 모습에 경외감을 느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