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경제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진 그로스먼 프린스턴대 교수와 엘하난 헬프먼 하버드대 교수는 1991년 경제성장 연구의 선구자적 업적이라는 평을 받는 ‘글로벌 경제에서의 혁신과 성장’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1990년대는 정보기술(IT) 분야의 혁신에 기초한 신경제로 생산성 향상과 성장이 두드러졌던 때였기에 새로운 기술에 기반한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한 두 교수의 경제성장 이론은 더욱 주목됐다.
이들의 연구는 미국처럼 자본축적이 충분히 이뤄진 국가의 경제성장률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는 전통적 이론을 뛰어넘어 새로운 경제성장의 패러다임을 여는 데 일조했다. 이러한 분석과 접근 방법은 ‘내생적 경제성장’ 이론으로 불렸다. 실제로 정보통신혁명 시기로 일컬어지는 1990년대 미국의 실질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3.45%에 달했다. 같은 시기 전 세계 평균 성장률이 2.81%였음을 고려하면 놀라운 성과다. 경제성장의 결과 소득이 높아져 자본이 축적됐어도 반드시 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전통적인 성장 이론으로 대표적인 것은 1987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솔로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의 신고전파 경제모형이다. 이 이론에서는 경제성장에 따라 성장률이 하락하는데 그 핵심 메커니즘은 자본의 한계 생산성 체감이라는 특징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자본이 축적되지 않은 경제나 기업에서 새롭게 기계를 도입하면 획기적인 생산성 증대가 가능하지만 이미 많은 시설과 장비를 갖춘 경제나 기업에서는 새 기계가 들어와도 추가적인 생산성 증대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직관적으로도 타당성 있고 현실에서도 발견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전쟁으로 폐허가 된 경제에서는 저축과 투자만 이뤄지면 높은 경제성장이 가능하다. 따라서 이러한 발전 단계에서는 어떻게 저축과 투자를 이끌지가 경제성장의 핵심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61년 전 서울경제신문이 창간됐던 1960년대의 한국 경제가 바로 그런 상황이었다. 그때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저축만이 살 길’이라는 각오로 투자 재원을 마련했고 부족한 재원은 해외에서 메우며 경제성장의 기초를 만들었다.
그렇기에 경제정책 설계의 많은 부분이 국민 저축을 유도하고 이를 투자 재원으로 활용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물론 워낙 소득이 낮은 상황이라 국내 저축만으로 가능하지 않아 심지어는 외채망국론이 나올 정도로 해외로부터 대규모 투자 재원 조달이 이뤄지기도 했다. 현재도 경제발전 초기 단계에 있는 많은 국가에서 성장 전략의 가장 기초적인 출발점으로 국민 저축과 투자 정책이 강조되는 이유다. 심지어는 사회주의권에서도 경제성장 초기에 대규모 자본 동원을 강조한다. 이렇게 1960년대에 시작된 저축과 투자가 지금의 한국 경제를 가능하게 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2020년대 한국은 이미 자본축적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다. 단순히 장비와 장치를 쌓아가는 투자 방식으로는 고도화된 자본주의하에서 자본 수익률 저하를 피할 수 없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경제가 성장한 어느 국가에서나 발생한 일이다. 다만 이를 어떻게 헤쳐나갈지가 중요하다. 그로스먼과 헬프먼은 이에 대한 해답을 ‘글로벌 내생적 혁신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에 제시했다.
이론의 핵심은 혁신이 자본수익률 하락을 뛰어넘는 경제성장의 원동력이며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글로벌 확장성을 가지는데, 특히 중요한 것은 혁신이 미래를 예측하고 이윤을 추구하는 경제주체의 몫이라는 것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다국적 제약 기업이 백신을 개발한 과정은 실제로 글로벌 내생적 혁신 성장이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예다. 수요자가 가장 필요로 할 제품을 예측하고 이를 연구개발할 능력을 지닌 국제적인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백신 개발에 성공했고 이를 통해 전 세계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기업의 가치는 놀랍게 높아졌다. 그리고 그 산업 자체의 성과를 통해, 또 감염 확산 통제를 통해 경제성장 자체를 견인하게 만들었다.
코로나19의 폭발적인 확산으로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어려움을 겪었지만 기초과학 기술 역량을 갖춘 최고의 대학이 존재하고 그 과학기술을 수요자가 원하는 제품으로 연결할 수 있는 연구개발 능력이 있는 기업이 존재하며, 그 기업들이 자유롭게 경쟁하면서 이윤을 추구하는 시장 시스템을 제공하는 국가가 어디인지를 생각하면 코로나19라는 어려움 속에서도 최종 승자가 누가 될지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바로 그 글로벌 내생적 혁신 성장을 가능하게 할 대학·기업·시장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것이 한국 경제가 나아갈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