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기회다. 지난 2년간 우리나라 소재·부품·장비(이하 소부장) 분야에서 일어났던 변화를 나타내는 데 이보다 적절한 말이 있을까. 시간을 2년 전으로 돌려보자. 지난 2019년 7월, 일본은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3개 핵심 품목에 대한 한국 수출 절차를 강화하고 화이트리스트에서 우리를 배제했다. 일본의 갑작스러운 조치로 기업들이 큰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대한상공회의소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과 거래 중인 국내 500개 기업 중 약 66.6%가 일본과의 거래 신뢰도가 낮아졌다고 답했다. 견고한 줄 알았던 글로벌 밸류체인은 약점을 드러냈고 구멍난 공급망 대처와 소재 자립화가 눈앞의 과제로 부상했다.
정부는 빠르게 움직였다. 소부장 분야의 현재 공급망과 기술 수준을 점검한 뒤 장기·단기 투트랙의 종합 대책을 마련했다. 핵심 소재와 부품의 기술 개발에 매년 1조 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하고 원천 기술 연구개발(R&D), 시설 투자 및 세제 지원 강화 등 기술 자립화를 위한 전 방위적인 정책을 추진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역할도 컸다. 한국기계연구원 부설 기관인 재료연구소를 연구원으로 승격하는 한편 12개 공공 연구기관이 모여 소재 연구 혁신을 위한 ‘소재분야연구기관협의회’를 출범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산하에 소부장 기술특별위원회를 설치해 연구개발 주요 정책과 투자 전략, 성과 관리 방안을 마련했다. 25개 연구실, 11개 시설, 15개 연구 협의체를 국가 연구 인프라로 지정해 흩어져 있던 연구 역량을 모으고 한층 체계적인 연구개발과 상호 협력 강화도 모색했다. 지난해에는 도전적 목표와 혁신적인 수행 방식을 도입한 ‘소재혁신선도프로젝트연구단’을 선정, 주력 산업 100대 핵심 품목의 자립화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지난달 경남 창원에 소재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우주 발사체 제작 현장 시찰에 이어 국산 소재 자립화의 최일선 기관인 한국재료연구원을 방문했다. 코로나19로 힘든 상황에도 원천 기술 개발과 기업 지원에 땀 흘리며 소재 자립화 선도 기관으로서 책무를 다하는 연구자들의 모습을 확인했다. 수출 규제 이후 정부출연연구기관은 중소·중견 기업에 대한 기술 자문, 시험과 분석 지원, 연구 인력 파견 등 현장 맞춤형 기술 지원을 수행하고 수요에 따른 기술 개발과 연구 장비의 공동 활용 등 기업에 촘촘한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재료연구원은 에너지 플랜트용 타이타늄 신소재 및 블레이드 제조 기술을 개발해 국산 타이타늄 소재의 효율 향상과 자립화에 기여했다. 한국화학연구원이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불소계 소재를 독자 기술로 개발해 약 2,000억 원의 수입 대체 가능성을 연 성과는 이 같은 노력의 수많은 결실 중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여기서 끝은 아니다. 정부는 핵심 기술 자립화를 계속 지원하는 동시에 특정 국가 의존도를 낮추고 미래 첨단 소재 분야를 먼저 점유할 수 있도록 연구와 투자를 계속해 나갈 것이다. 정부출연연구기관도 소부장 분야 수요 기반 기술 개발, 중소·중견 기업의 애로 기술 해결, 시험·분석 지원, 연구 인력 파견 등 산업계를 뒷받침하기 위한 지속적인 소통과 협력 네트워킹 구축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비온 뒤에 땅이 한층 단단해지듯 소부장 기술 자립화 또한 오늘의 위기를 협력으로 극복한다면 우리는 앞으로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실력과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다. 2년 전 갑작스러운 위기를 극복한 대한민국이 이제는 기술 자립화를 넘어 세계 최고의 소부장 선도 국가로 뻗어 나가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