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고체 배터리는 전기차 대전환을 가로막는 모든 심리적 장벽을 무너트릴 수 있는 꿈의 기술이다. 긴 주행거리, 빠른 충전 속도, 화재 안정성을 앞세워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를 한켠으로 밀어낼 ‘게임 체인저’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같은 이론을 구현할 기술이 부족해 양산성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전고체의 장벽을 누구보다 빠르게 정복하겠다고 호언장담한 배터리 회사가 있다. 한 번 충전으로 800km를 달리고 15분 내 80%를 충전하는 고속 충전이 가능한 배터리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밝힌 미국 배터리 스타트업인 솔리드에너지시스템(SES)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소 스타트업에서 독립해 현대자동차, SK, LG, 미국 제너럴모터스(GM) 등 글로벌 기업으로부터 총 2억7,000만달러(약 3,118억원)를 투자받았다.
이 회사의 손용규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지난달 28일 서울경제와 만나 “2025년 리튬메탈 배터리를 상용화할 것”이라며 “제휴개발계약(JDA)을 체결한 현대차와 제너럴모터스(GM)도 이 시점에 차세대 배터리를 적용하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SES가 개발 중인 리튬메탈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떨어지는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와 전고체 배터리의 부족한 양산성을 극복한 것이 특징이다. 양극과 음극 사이에 고체를 쓰는 전고체와 달리 리튬메탈 배터리는 기존 리튬이온처럼 전해액(양극과 음극 사이를 이동하는 이온의 흐름을 높여주는 물질)을 쓴다. 손 CTO는 “자체 개발한 특수 전해액(고농도염 리튬메탈 전해액)을 쓰기 때문에 전고체에 버금가는 에너지 밀도를 구현하고 경량화가 가능했다”며 “사고 위험을 미리 인지하는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적용해 안정성도 확보했다”고 말했다.
새로운 양극 소재와 전용 생산설비가 필요한 전고체와 달리 리튬메탈은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 생산시설을 활용해 생산이 가능하다. 손 CTO는 “전고체는 비싼 소재와 새로운 공정이 필요해 비용 측면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지만, 리튬메탈 배터리는 리튬이온 공정을 그대로 쓸 수 있기 때문에 양산성이 좋다”고 말했다.
SES는 이를 뒷받침할 능력이 있다는 점을 현대차, GM 등 완성차 업체들에 증명했다. 손 CTO는 “2017년부터 월 1,000셀을 시험생산 시설에서 만들어내고 있다”며 “실제 전기차에 필요한 600mm 크기의 대형 셀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고, 내년까지 현대차 등 완성차 업체들에 샘플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했다. 다른 전고체 배터리 개발사들이 최근에 내놓은 셀의 크기는 100mm를 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이어 “2028년까지 100GWh 규모의 생산력을 확보해 리튬이온 배터리와 동등한 수준의 가격 경쟁력을 갖춰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손 CTO는 한국이 SES의 주요 생산기지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한국에는 주요 배터리 소재 업체들부터 대형 배터리 제조사, 고객사(현대차·기아)까지 몰려 있다”면서 “2024년 지을 예정인 첫 기가팩토리(생산량 1GWh)를 한국에 구축하는 것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현대차의 새로운 성장 축인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로보틱스 등에서도 가볍고, 효율 높은 배터리 수요가 크다”며 “현대차와의 협력 범위가 넓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