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들과 대화하던 중 한 친구가 최근 북한 공작원과 관련한 뉴스를 언급하며 “요즘도 간첩이 있네. 도대체 간첩은 어떻게 만나는 거냐”고 화두를 던졌다. 듣고 있던 한 친구가 나름 농담이랍시고 “그거 모르면 간첩인데”라고 답했다. 무척 재미가 없었다. 친구들은 못 들은 척 대화를 이어갔다. 농담을 던진 친구는 “간첩을 어떻게 만나는지 모르면 간첩인데”라며 기어이 한 번 더 이야기했다. 그러자 친구들의 타박이 뒤따랐다.
통상 특정 농담이나 주장에 대해 여럿이 동시에 호응을 하지 않는다면 그건 그 메시지 자체에 공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제대로 못 들었기 때문이 아니니 굳이 한 번 더 이해시키려 할 필요가 없다. 정 한 번 더 해야겠다면 호응이 없는 이유를 파악한 뒤 말하는 게 효과적일 것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지난 6월 3일 부동산 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집값 고점론을 꺼냈다. 집을 사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그런데 시장 흐름에 변화가 없으니 국민들이 이해를 못했다고 생각했는지 홍 부총리는 같은 달 30일 관계장관회의에서 또다시 집값 고점론을 내놓았다. 여전히 시장의 반응이 없자 지난달 28일에는 아예 부동산 관계장관 합동 담화 자리를 마련해 엄포를 놓으며 집값 고점론을 재차 말했다. 그 사이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도 지난달 5일 기자 간담회에서 집값 고점론을 거들었다.
정부가 부동산 정책과 관련한 여론의 반영 없이 같은 메시지를 반복하는 일이 요즘 들어 부쩍 잦다. 노 장관은 기자 간담회에서 전세 갱신 계약 비율이 50%에서 73%로 올랐다며 임대차 3법이 긍정적인 결과를 보이고 있다는 메시지를 냈다. 현실을 사는 국민들은 호응하지 않았다. 홍 부총리가 이에 지난달 21일 똑같은 메시지를 냈다. 같은 날 국토부는 보도 설명 자료로 또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시장의 비판에 대한 해명보다 갱신 비율이 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뿐인가. 3기 신도시 사전청약의 분양가가 시세의 60~80% 수준이라는 메시지 역시 각종 반론에도 불구하고 총 세 차례 나왔다. 공급이 늘어난다는 이야기는 수십 번째다. 투기를 잡겠다는 이야기도 4년째다.
국민들이 정책에 호응하지 않는 이유가 소통이 충분하지 않아서일까. 영끌을 하는 국민들은 앞으로 집값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일까. 또 공급이 충분하다거나 충분히 공급하겠다는 정부의 말을 지난 4년 동안 한 번도 못 들었기 때문일까.
오히려 그 반대다. 지금 부동산 수요자들은 정책이 나올 때마다 각종 자료를 찾아보면서 공부하고 있다. 신문 기사는 물론 정부 자료, 각종 해석 자료를 통해 정부의 메시지를 이해하려 애쓴다. 국민들은 메시지의 구절까지 익히 들어 알고 있고, 거기에 시장 상황을 고려해 판단을 내린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전세가 안정되지 않았다고 느끼는 것은 갱신율이 높아진 것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어차피 2년 뒤 신규 계약 때는 보증금을 올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추격 매수를 하는 것은 집값이 떨어질 수 있겠지만 전셋값을 고려하면 지금 사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정부는 정책이 호응을 얻지 못하는 이유를 정말 모르나. 메시지가 아니라 정책 자체가 본질이다. /ro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