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올림픽 메달리스트까지 저격대상?…들불처럼 번지는 남녀갈등

양궁 3관왕 안산 선수 둘러싼 페미니즘 논란

연일 정치권 공방 속 일부 연예인까지 가세

‘남녀 대결구도’로 변질되면서 갈등 표면화

“사회 구조적 문제…분노의 화살 엇나간 격”

2020 도쿄올림픽 3관왕에 오른 양궁 대표팀 안산 선수가 지난 3일 모교인 광주 북구 문산초등학교를 찾아 은사와 후배들의 사인 요청에 응하고 있다. /연합뉴스2020 도쿄올림픽 3관왕에 오른 양궁 대표팀 안산 선수가 지난 3일 모교인 광주 북구 문산초등학교를 찾아 은사와 후배들의 사인 요청에 응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쿄올림픽에서 양궁 3관왕을 달성한 안산 선수를 둘러싼 페미니즘 논란이 ‘남녀 성 대결’ 양상으로 변질되면서 젠더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이번 갈등은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리는 올림픽이라는 이벤트와 맞물리면서 정치권과 연예계 등 사회 전방위로 들불처럼 번지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와 취업난 등 사회 구조적 문제에서 촉발된 분노가 애꿎은 젠더 갈등으로 비화하고 있다며, 갈등을 부추긴 정치권이 나서서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양궁대표팀 안산 선수가 연거푸 금메달을 따며 언론의 주목을 받자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때 아닌 페미니즘 논란이 불어닥쳤다. 안 선수의 헤어스타일이 쇼트커트인데다 그가 과거 ‘남성혐오’로 읽힐 수 있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이유에서다. 논란은 온라인상에서 그치지 않고 정치권으로 옮겨붙었다. 국민의힘 양준우 대변인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논란의 핵심은 ‘남혐 용어 사용’과 ‘래디컬 페미니즘’(급진적 여성주의)에 있다”고 주장했다. 자칫 안 선수의 남혐 용어 사용이 논란을 자초했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자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여성혐오 정서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비판했고,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아주 우려스러운 인식”이라고 맞받아쳤다. 정세균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 캠프의 장경태 대변인도 “마치 안 선수가 문제를 제공했다는 것처럼 들린다”고 지적했고,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공당의 대변인이 여성혐오의 폭력을 저지른 이들을 옹호하는 황당한 사태”라고 분노했다.



안 선수를 둘러싼 공방은 연예계로까지 번지고 있다. 방송인 홍석천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안 선수를 응원하는 글을 올렸다가 협박문자 폭탄에 시달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영화배우 정만식도 안 선수를 욕하는 네티즌들을 강하게 비난했다가 댓글 테러를 당하고 있다. 일부 여성혐오 사이트에서는 안 선수의 금메달을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올라오며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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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김기현(왼쪽) 원내대표가 지난달 7일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양준우 신임 대변인과 간담회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국민의힘 김기현(왼쪽) 원내대표가 지난달 7일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양준우 신임 대변인과 간담회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동안 일부 온라인 공간에 국한됐던 젠더 갈등이 사회 전방위로 번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극심한 취업난이나 코로나19와 같은 사회 구조적 문제의 탓을 젠더 이슈로 돌려 분노를 폭발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장미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조사 결과 페미니즘에 가장 강하게 반발하는 건 20대 남성”이라며 “취업시장이 어려운 건 코로나19나 경기침체와 같은 사회 구조의 문제 탓인데도 이를 실체도 없는 ‘젠더’ 이슈의 탓으로 돌리는 건 논리적 비약”이라고 지적했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대표도 “이번 사태는 사실상 성별갈등이 아닌 남성들의 일방적 ‘린치’라고 보는 편이 가깝다”며 “남녀 갈등이 아닌 여성이라는 특정 집단에 대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현재 20대 남성의 위치를 보면 취업을 비롯해 경쟁이 치열한 구조적 불평등 속에 있는 건 맞다”면서도 “구조적인 문제를 페미니즘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안 선수에서 촉발된 젠더 갈등에 기름을 붓고 있는 건 정치권이다. 특히 일부 정치인들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젠더 갈등을 선거에 이용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장 위원은 “이번처럼 젠더 갈등이 전면적으로 선거 이슈에 등장한 사례는 많지 않다”며 “일부 정당은 페미니즘을 상대진영에 대한 분노의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권 대표는 “표심을 잡기 위해 그동안 온라인 커뮤니티 공간에서만 주장돼온 이야기를 공적 의제로 승인해준 건 정치권”이라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젠더 갈등을 풀 책임 역시 정치권에 있다고 지적한다. 정치권이 내년 대선까지 이용하려 든다면 계속 증폭될 수도 있고, 차별과 혐오에 단호히 반대한다면 사그라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천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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