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다시 아이돌 '픽'하다

‘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의 경쟁이 다시 시작됐다. 엠넷의 ‘프로듀스101’(프듀) 시리즈를 필두로 각종 방송사에서 경쟁적으로 프로그램을 내놓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던 아이돌 오디션은 최근 트로트, 밴드 등 비주류 장르 오디션에 밀려 설 곳을 잃은 듯했다. 물론 여기에는 ‘프듀’ 시리즈와 ‘아이돌학교’의 투표 조작 파문이 결정타가 됐다. 논란을 딛고 명예 회복에 나선 각 방송사의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차별화를 무기로 다시 한 번 팬덤과 시청자 공략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닫힌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 지는 아직 미지수다.

엠넷(Mnet)은 지난 6일 걸그룹 멤버를 뽑기 위한 서바이벌 오디션 ‘걸스플래닛999 : 소녀대전’을 시작했다. ‘프듀’ 시리즈, ‘아이돌학교’의 투표 조작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엠넷이 2년 만에 다시 선보이는 아이돌 오디션은 한국·중국·일본에서 33명 씩 선발한 총 99명의 참가자들 중 최종 9명의 걸그룹 멤버를 가려내기 위한 경쟁의 무대다. 걸스플래닛999가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투명성이다. 전 과정이 엔씨소프트의 K팝 팬 플랫폼 ‘유니버스’를 통해 진행되는 투표는 100% 글로벌로 진행된다. 한국 50%, 그 외 해외 지역 50%의 비중으로 재조정해서 집계하는데, 해외 투표에서 엄청난 인구 수를 자랑하는 중국의 표가 몰릴 경우 표심이 왜곡될 수 있다는 지적을 고려한 조치다. 3개국 참가자를 3명씩 묶은 ‘셀’(CELL)이 운명공동체로서 당락을 함께 한다는 독특한 설정도 눈에 띈다.

SBS ‘라우드’는 박진영과 싸이라는 검증된 가수 겸 프로듀서가 각자 회사의 색깔을 담은 글로벌 보이그룹을 만든다는 기획에서 출발했다. 최종 선발된 두 팀은 각각 JYP엔터테인먼트와 피네이션 소속으로 데뷔한다. "춤과 노래가 핵심 기준이 아니라 개인적인 매력을 가진 지원자들을 선발할 것”이라는 박진영의 말대로, 초반 심사 무대는 ’매력 무대‘와 ’실력 무대‘로 나누어 아이돌 그룹에 필요한 끼와 재능을 포괄적으로 평가한다. 이를 통해 다양한 참가자들을 부각하는데 성공했다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재기를 노리는 ‘아이돌 오디션’을 향한 시청자 반응은 아직 달궈지지 않고 있다. 지난 6일 방영된 ‘걸스플래닛999’ 첫 회 시청률은 전국 0.46%. 동시간대에 한국 대표팀이 참가한 올림픽 여자배구 준결승전이 방영된 점을 고려해도 출발이 좋은 편은 아니다. 첫 회가 공개된 후 ‘프듀’ 시리즈의 제목을 바꾸고 재단장한 프로그램이라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실제 참가자들이 첫 등장한 무대의 모습부터 초반 레벨 테스트, 탐색전 속 경쟁 구도 등은 ‘프듀’ 시리즈의 전개와 흡사하다. 첫 회 9%대의 시청률로 눈길을 끌었던 ‘라우드’도 지난 7일 방영된 10회 분은 2.9%에 그치며 화제성을 이어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아이돌 오디션’은 계속될 전망이다. 당장 올 가을에는 MBC에서만 두 개의 프로그램이 기다리고 있다. 9월에는 여운혁 PD가 미스틱스토리와 손잡고 만드는 보이그룹 오디션 ‘극한데뷔 야생돌’이 방송을 시작한다. 이미 주요 참가자들, 진행을 맡은 가수 김종국을 비롯한 주요 출연자의 면면이 공개된 상태다. 이어 11월엔 걸그룹 오디션 ‘방과후 설렘’이 나온다. ‘프듀’ 시즌1의 한동철 PD가 연출을 맡는다.

‘걸스플래닛999’의 윤신혜 엠넷 CP는 제작 발표회에서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많은 연습생들의 데뷔가 미뤄지거나 무산되고, 데뷔 그룹들도 설 수 있는 무대가 현저하게 줄었다”면서 “어려운 상황임에도 기회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방송사 입장에서도 참가자들의 팬덤을 모으기 쉬운 아이돌 오디션은 시청률 뿐만 아니라 유튜브 조회수 등 온라인 지표도 끌어올릴 수 있는 검증된 포맷이다.

K팝 인기를 타고 아이돌 오디션 포맷의 해외 수출도 활발하다. 하이브는 유니버설뮤직그룹과 미국에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세계를 무대로 활동할 보이그룹 멤버를 뽑을 예정이다. 선발 과정은 미국 TV를 통해 방영된다. SM 역시 미국 콘텐츠 제작사 MGM과 손잡고 보이그룹 NCT의 미국 활동 유닛인 ‘NCT할리우드’ 멤버를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론칭할 예정이다. JYP엔터테인먼트는 일본에서 소니뮤직과 손잡고 ‘니지 프로젝트’ 시즌2에서 현지 보이그룹 멤버를 뽑는다. CJ ENM도 워너미디어의 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OTT) HBO맥스와 손잡고 남미 시장을 대상으로 한 K팝 오디션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