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도쿄 쇼크[동십자각]

양준호 골프팀 차장


“성적 지상주의, 엘리트 체육 위주의 육성 방식을 전면 재검토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체육계 미투’가 한창이던 지난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다. 성적 지상주의를 뿌리 뽑자던 대통령은 그러나 도쿄 올림픽 기간에 메달을 따거나, 4강에 들거나, 신기록을 작성하는 등 좋은 성적을 낸 선수들에게 열성적으로 축전을 보냈다.

사실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성적에 목을 매는 체육계 문화가 사라져야 한다는 데는 모두가 공감하지만 막상 올림픽이 시작되면 메달 하나에 자기 일처럼 웃고 울게 마련이다.

도쿄 올림픽에서 금 6, 은 4, 동메달 10개를 딴 한국은 금메달 수가 기준인 전통적 집계 방식으로 따지면 37년 만에 가장 저조한 성적을 냈다. 금 27개 등 총 58개 메달로 역대 최고 성적을 낸 일본과 대조적이다. ‘도쿄 쇼크’다. 한국이 금 13개로 7개인 일본보다 거의 두 배 많았던 2012 런던 올림픽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일본의 ‘대박’은 홈어드밴티지도 컸지만 시스템의 성과라는 데 이견이 없다. 그들은 안방 올림픽을 겨냥해 2015년 장관급 부처인 ‘스포츠청’을 신설했다. 국가 차원에서 엘리트 스포츠를 중점 육성했다. 예산을 늘리고 전략 종목에 집중 투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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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사례는 2024 파리 올림픽을 곧 준비해야 하는 한국 스포츠에 참고 사항으로 쓰일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참고 사항에 그치기를 바란다. 일본은 대표적인 생활체육 선진국이다. 일반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으리으리한 종합체육관이 전국 방방곡곡에 수두룩하다.

이번 올림픽에서 남자 경보 동메달이 바로 그런 생활체육 문화의 토양에서 꽃을 피웠다. 주인공인 야마니시 도시카즈는 아이치제강 엔지니어로 교대 근무시간 전후에 아침저녁 훈련을 하며 기량을 유지했다. 고교 때부터 학업과 운동의 병행이 자연스러웠던 그는 명문 교토대 출신이다.

우리나라 체육계도 2011년부터 고교 야구 주말 리그제를 시행하는 등 ‘공부하는 운동선수’를 길러내기 위한 패러다임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체육계 미투와 ‘학폭’이 터지면서 엘리트 체육 문화에 대한 반성은 더 깊어졌다. 당장은 올림픽 메달 개수가 기대에 못 미칠 수 있어도 생활체육의 저변을 다지고 그 위에서 엘리트 체육의 열매를 거두는 방향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다만 종목별 특성을 배려하지 않은 합숙 축소, 선수의 의견을 무시한 일률적인 학업 강요 등이 있지 않았나 돌아보는 등의 과제는 만만치 않다. 패러다임 전환에서 정교함이 떨어지면 죽도 밥도 안 되는 법이다. 도쿄 쇼크를 계기로 “공부도, 운동도 그저 그런 수준의 선수만 늘어나고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만하다.






양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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