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로 집을 잃은 야생 북극곰이 먹이를 찾아 도심을 활보한다. 저출산 고령화로 아기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고 노인들만 넘쳐난다. 저성장 고착화, 소득 양극화로 경제 허리인 중산층이 사라진다. 자산·교육 격차 확대로 부(富)의 대물림이 이어진다. 플랫폼 노동은 가속화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심화된다. 노조 등 이익집단의 기득권은 더욱 공고해지고 청년층은 꿈과 희망을 잃어버린 세대가 된다. 진영 논리로 갈라진 정치권은 포퓰리즘을 쏟아내며 유권자의 눈과 귀를 현혹한다.
암울한 미래의 묵시록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현재이자 예정된 미래다. 바로 눈앞의 현실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서서히 물이 끓는 냄비 속 개구리’ 신세다. 숱한 경고음이 반복됐지만 조금씩 뜨거워지는 냄비 속 개구리처럼 생사를 가를 위협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는 대한민국이 부딪힌 가장 큰 난제 중 하나다. 인구 절벽에 따른 생산 가능 인구(15~64세) 감소로 경제 기초 체력인 잠재성장률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지난 2001~2005년 5.1%에서 2006~2010년 4.1%, 2011~2015년 3.2%, 2016~2020년 2.7%, 2019~2020년 2.5% 등으로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금 추세라면 한국개발연구원(KDI)의 2013년 경고처럼 잠재성장률이 1%대로 추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하지만 근본적인 처방과 치료를 위해 결단을 내릴 리더가 안 보인다. 경제 기초 체력을 길러줄 구조 개혁은 기득권의 이해관계에 밀려 시동조차 걸지 못했다.
더 큰 위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최근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1850~1900년)보다 ‘1.5도’ 오르는 시기가 오는 2052년에서 2040년으로 10년 이상 빨라졌다. 1.5도는 최근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폭염과 산불·홍수·가뭄 같은 기후 재앙이 상시화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다. 지구온난화의 후폭풍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지금 멈추지 않으면 가속도를 줄이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경고다. 영화 ‘설국열차’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삶은 개구리 증후군(boiled frog syndrome)’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도 없다. 반드시 혁신을 동반한 변화가 필요하다. 일반적인 변화가 ‘체인지’라면 ‘트랜스포메이션’은 애벌레가 나비로 탈바꿈하듯이 근본적인 양질 변화를 의미한다. 지금은 체인지가 아닌 트랜스포메이션이 필요한 때다. 과거로부터 단절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롭게 리셋해야 근본적인 트랜스포메이션도 가능하다.
리셋 버튼을 과감하게 누르고 국민들의 가슴을 뛰게 할 국가 비전과 정치·경제 철학을 보여줄 리더는 있는가. 임기 1년도 안 남은 대통령은 기대 난망이다. 안타깝지만 아직 차기 대통령 후보 가운데서도 잘 보이지 않는다. 현재 경선이 진행 중인 집권 여당은 물론 경선을 준비 중인 제1야당도 뚜렷한 정책 비전 없이 상대 후보를 공격하는 네거티브 공방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정책을 강조하는 일부 경선 후보들 역시 마찬가지다. 장밋빛 전망을 이야기하지만 고통을 동반한 체질 개선은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하고 용기 있게 결단할 수 있는 정치 리더를 보고 싶다. 변화는 반드시 체질 개선을 동반해야 한다. 새살이 돋아나려면 고통 감내는 불가피하다. 대중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에 더 이상 기대지 말자. 지구온난화, 저출산 고령화, 경제 양극화 등 각종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 동의를 얻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뚝심을 보여달라. 예정된 미래, 암울한 묵시록에서 벗어날 리셋 버튼을 용기 있게 누를 후보자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