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을 생각하는 뉴스레터 ‘지구용’에 게재된 기사입니다.[구독링크]
지난 6월 <순종 개, 품종 고양이가 좋아요?>라는 책이 출간됐어요. 이 책을 감명 깊게 읽은 생강 에디터, 마침 온라인 북토크가 열려서 수줍게 참가했어요. 고양이 둘의 반려인으로서 '반려동물 시장'을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품종에 집착하는 인간의 욕심이 그들의 삶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보곤 그만 복장이 터지고 말았어요.
근친교배와 개량의 끝은 유전병
북토크의 주제는 책과 비슷했어요. 품종 동물에 대한 욕심이 유전병처럼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는 내용. 동물권행동 카라의 동물전문도서관, 킁킁도서관과 이 책을 번역한 최태규 수의사님이 북토크를 진행하셨구요. 최태규 수의사님은 곰보금자리 프로젝트를 이끌고 계신 분이기도 해요.
'품종견', '품종묘'가 어떻게 생겨나는지는 들어보셨을 거예요. 개체수는 한정돼 있는데 비슷비슷하게 생긴 녀석들이 계속 태어나도록 하려면 근친교배가 이뤄질 수밖에 없어요.
품종 개량도 마찬가지에요. 닥스훈트는 원래 지금처럼 다리가 짧고 허리가 길지 않았대요. 하지만 '귀여우니까' 지금 같은 모습이 나오도록 교배를 거듭해서 개량된 거예요.
유전적 다양성을 인위적으로 막은 결과는 각종 유전병이에요. 닥스훈트는 허리에 병이 생기기 쉽대요. 얼굴이 납작한 '단두개종(=프렌치불독이나 퍼그 같은)'은 호흡기폐쇄증후군이 잦구요. 심지어 콧구멍이 너무 작아서 숨을 제대로 못 쉬니까 콧구멍을 넓히는 수술도 하게 된다고.
시츄는 눈이 튀어나와서 귀엽다고들 하는데, 안구돌출이 흔하대요. 피부가 쭈글쭈글한 샤페이는 주름 사이로 공기가 통하질 않아서 피부병에 잘 걸리고요.
최 수의사님은 "소형견이 특히 병이 많다"고 하셨어요. "조상인 늑대와 비교해 10분의 1 크기로 억지로 줄인 종들이다보니, 슬개골탈구 같은 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설명을 덧붙이셨어요.
품종동물 선호를 부추기는 못된 미디어
최 수의사님은 '품종견 문화'를 퍼뜨린 주역 중 하나로 방송을 꼽았어요. 우리가 아는 바로 그 프로그램을 포함해서요. 아무 문제의식 없이 계속 품종 동물을 보여줌으로써 특정 품종이 유행하는 데 지대한 기여를 한다는 말씀. 2000년대 초반 닥스훈트와 샤페이, 2010년대의 웰시코기와 보더콜리 같은 '트렌드'가 그냥 생겨난 게 아니란 거죠. 심지어 가끔은 인간과의 생활에 적합하지 않은, 야생동물을 기르는 사람들마저 '세상에 이런 일이'처럼 재밌는 이야깃거리로 방송되구요.
최 수의사님이 보여주신 일부 방송 화면은 정말 너무했다 싶어서 북토크에 참가한 모두가 분노로 활활 타오르기도 했어요.
해외도 마찬가지예요. '순종 혈통서'를 발급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협회인 켄넬클럽이 공인하는 품종은 1885년 19종에서 2018년에는 200종으로 늘었대요. 이중 40여종은 2000년 이후 추가된 거구요. 동물을 사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미디어가 만드는 트렌드에 맞춰 '신품종 개발'이 꾸준히 계속된 거예요. 최 수의사님은 "개를 비싸게 팔려는 자본주의적 요구와 맞물려 돌아간다"고 설명하셨어요.
사지 마세요, 입양하세요
안타깝게도 한국에선 아직 품종 동물의 문제점에 대한 공감대가 없어요. 당연히 처벌 근거도 없고요.
일단은 인식 강화가 절실한 상황이에요. 영국의 경우엔 프렌치불독, 퍼그가 인기를 끄는 만큼 유전질환과 관한 수술이 늘어나다 보니 수의사들 사이에 공감대가 확산됐대요. 필연적으로 질병을 안고 태어나는 품종 동물을 더이상 소비하지 말자는 공감대가요. 그 결과 2016년부터는 품종 동물을 반대하는 캠페인이 늘어났다고.
우리나라에선 '사지 마세요, 입양하세요'란 슬로건이 꾸준히 확산되고 있죠. 펫샵, 브리더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점점 퍼지는(에디터만 그런건 아니겠쬬...??) 것 같고요. '품종 동물 산업'의 성장을 막기 위해선 미국 캘리포니아처럼 반려동물 '구입'을 아예 금지하는 법이 가장 효과적일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개 공장' '고양이 공장' '순종 혈통서'가 사라지고 수많은 유기 동물들이 반려인을 찾을 수 있겠죠?
용사님들도 힘을 보탤 수 있어요. 주변에 품종 동물을 찾는 지인이 있다면, 꼭 이런 사실을 알려주고 설득해 주세요. <순종 개, 품종 고양이가 좋아요?>를 슬며시 건낸다거나(광고 아님, 진심임) 지구용의 이 기사를 보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동물들이 괴롭지 않을 날까지 조금씩 함께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