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어느 때보다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큰 요즘, 상생을 위해 지원은 못 할 망정 정부가 불합리한 이유로 일감을 뺏어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최근 군수품 전체에 대해 국방부가 '중소기업자간 경쟁제품(중기간 경쟁제품)'에서 제외하기로 추진하는 가운데, 관련 중소기업들은 16일 한목소리로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한국피복공업협동조합과 한국어육연제품공업협동조합은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업계를 대표해 가진 서울경제와 인터뷰에서 공통적으로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지난해 중소기업은 평균 매출이 60.3% 감소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이후 최악의 경영 환경을 직면해, 업계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오히려 '중기간 경쟁제품' 지정을 확대해야 할 상황"이라며 "군수품의 품질을 개선하자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대기업의 진입을 허용하는 것은 대안이 아니다"고 호소했다.
중기간 경쟁제품은 2007년부터 시작된 대표적인 중소기업 판로지원 정책이다. 공공조달을 통해 판로로 적정 이윤을 보장하면서 제조 중소기업의 성장을 지원한다. 2019년 기준으로 612개 품목을 대상으로 19조 4,000억 원 규모의 시장이 형성돼 있다. 올해는 682개 품목에 대해 중기간 경쟁제품 지정을 검토하고 있다. 이 가운데 국방부는 59개 전 품목에 대해 지정을 반대하고 나섰다. 군복, 이불과 같은 피복·장구류(35개)부터 김치, 건빵 등 식량류(24개)까지 전부를 대기업이나 해외기업도 진입할 수 있도록 개방하겠다는 것이다.
이같은 움직임은 지난 4월부터 논란이 일었던 장병 부실 급식 사태에서 촉발됐다. 코로나19 격리 장병에게 제공된 부실한 식사가 외부로 알려지면서 국방부는 장병생활여건 개선 전담팀(TF)을 출범하고 군납 체계 개선에 나선 바 있다. 이를 통해 국방부는 일부 업체에 쏠림 현상으로 인해 급식이나 군복의 품질이 저하됐다며 '중기간 경쟁제품'을 주원인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중소기업계는 다른 입장이다. 최병문 한국어육연제품공업협동조합 전무이사는 "부실 급식은 부대 지휘와 운영의 문제이기 때문에 중소기업이 만든 식품 탓으로 잘못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며 "일부 업체에 쏠려 계약됐다는 지적도 중소기업의 잘못이 아니라 국방부(방위사업청)가 적격심사제도와 입찰제도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중기간 경쟁제품 시행 초기에는 전국 4개 권역에 각각 한 업체만 참여자격을 부여했지만 방사청이 2014년부터 전지역 동시 참여로 규제를 완화했고, 적격심사 점수도 상향 조정돼 소수품목에 쏠림 현상이 나타났다"며 "더구나 총 급식 예산의 64%는 농·수·축협으로부터 원물 수의계약이고, 나머지를 보훈단체와 중소기업이 나누는데, 연 925억 원 규모의 중기간 경쟁품목만 부실급식의 원인을 떠안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군복 분야에 대해서도 중소기업계는 다른 시각으로 보고 있다. 김연임 한국피복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계약이행능력 심사 세부 기준이 조달청의 일반 물자와 달리 군납 실적 중심이고, 대량 물자는 보훈 단체나 중증장애인 단체의 수의계약으로 이뤄져 있어 중소기업의 쏠림 현상은 제도상 문제"라며 "공동수급체 구성을 확대하면 더 다양한 중소기업들이 나누어 계약을 수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이사장은 군복의 착용감에 관한 불만에 대해서도 "전시 동원 품목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정해준 국방규격에 따라 중소기업은 제작할 뿐이다"며 "같은 중소기업이 만들어도 군 PX에 납품하는 상용품은 인기가 많은 만큼 국방 규격을 현실에 맞게 개정하는 게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중소기업들은 국방부에 조달 시장의 특수성을 인정해주고 보여주기식이 아닌 현실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최 전무는 "효율적인 군식량 조달을 위해 정부의 규제에 맞춰 꾸준히 시설 투자를 이어왔다"며 "정확한 데이터 조사를 기반하지 않은 땜질식 대처에 수십 년간 쌓아온 산업 생태계가 무너지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노동집약적인 봉제산업이 시장경제 논리에 의해 중국·동남아로 빠져나가 지난해 마스크 대란과 같은 위기를 겪었다"며 "공공 조달 제품을 통해 국가 기반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제조 중소기업에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