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은퇴 후 창직으로 국내 1호 모바일아티스트 되다”

정병길 모바일아티스트, 금융업 30여 년 종사 후 은퇴

모바일 그림으로 인생 2막 시작

언제, 어디서든 모바일 기기만 있으면 그림 그릴 수 있게 매력

초?중등학교 방과후 수업 및 문화센터 등 강의 통해 수익 발생

모바일아티스로 인생 2막을 활짝 연 정병길 씨/사진=정혜선모바일아티스로 인생 2막을 활짝 연 정병길 씨/사진=정혜선




여기 창직으로 인생 2막을 활짝 연 신중년이 있다. 바로 정병길 모바일아티스트다. 모바일아티스트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말한다. 자신을 ‘국내 1호 모바일아티스트’라고 소개하는 정병길 씨는 30년 넘게 금융업에 종사하다 2010년 퇴직했다.



정 씨는 퇴직 전부터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에 관심이 많아 틈틈이 배우러 다녔다. 글쓰기에 대한 관심은 퇴직 후에도 이어져 두 권의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는 책 홍보를 위해 SNS를 배우러 기관에 갔다가 우연히 모바일 그림을 접하게 됐고, 태블릿 PC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에 매력을 느껴 모바일 그림에 빠져들었다.

정병길 씨는 ‘모바일 그림을 그리며 인생 2막을 살아가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모바일아티스트’라는 직업을 스스로 만들었다. 그야말로 세상에 없던 업(業)이 만들어진 ‘창직’의 순간이다. 정 씨의 모바일아티스트로서의 첫걸음은 ‘초보를 위한 모바일 그림 강좌’였다. 강좌에 대한 반응은 생각보다 좋았다. 그는 모바일 그림을 그려 개인전을 열한 번이나 개최해 2014년에는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한 ‘2014 시니어 IT 일자리 사례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국내 1호 모바일아티스트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정병길 씨를 라이프점프에서 만나봤다.

- 만나서 반갑다. 자기소개 부탁한다.

“모바일아티스트 정병길이다. 나는 농협에서 30여년을 근무했다. 은퇴 직전에는 지점장을 지내면서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다. 막연히 글 쓰고 그림 그리며 프리랜서로 살아야지 했었는데, 그게 실현됐다.”

- 최근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표지에 실렸더라. 요즘 관심을 많이 받고 있는데 어떤가.

“기분이 좋다(웃음). 나보다 돈 많고 출세한 사람이 많은데, 내게 이렇게 관심을 가져 주는 것은 새롭기 때문인 듯하다. 가만히 보면 세상은 새롭고 이야기가 있는 곳에 주목한다. 그림에는 언제나 이야기가 있고, 그림을 그리는 나도 이야기를 지녀서 관심을 받는 것 같다.”

- 은퇴 이전에 금융업에 종사했다고 들었다.

“농협에서 30년 넘게 근무했다. 마지막에는 지점을 지냈다.”

- 직장에 다니면서 은퇴 준비를 했던건가.

“사실 내가 은퇴를 준비할 당시에는 이렇게 길게 살 줄 몰랐다(웃음). 선배들이 대부분 70세 이후 돌아가셨으니까 나도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그래서 막연히 은퇴 후 10년 정도 더 살거라 생각해 준비를 딱히 하지 않았다. 그저 글 쓰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 자유롭게 취미 활동하며 자녀들에게 효도 좀 받다가 떠날거라 생각했다. 은퇴하고 보니 그게 아니더라.”

- 직장에 다니면서 글쓰기나 그림 그리는 법을 배웠다고 하던데.

“원래 성격이 한번 하면 열심히 한다. 직장에서도 ‘정병길만큼 일해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농협에서 한 번씩 농촌 봉사활동을 가는데, 그곳에 가서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일만 하니까 후배들이 조를 짤 때 나와 같은 조를 하기 싫어했다(웃음). 글쓰기와 그림도 열심히 배웠다. 글쓰기를 배우다 한번은 신문에 투고해 여러 번 실렸다.”

- 기억에 남는 투고 기사가 있나.

“있다. 한 번은 친일인명사전을 만드는데 예산이 깎여 편찬이 어렵다는 기사를 보고 한겨레에 ‘국민 성금으로 편찬하자’는 내용의 투고를 했다. 그게 실렸다. 이후 한겨레에서 ‘국민 성금을 모아달라’는 내용으로 투고를 하려는 데 오마이뉴스에서 성금을 시작하더라. 당시 마음에서부터 뿌듯함이 올라왔었다.”

- 은퇴 후 바로 책을 냈더라.

“원래 금융업계는 은퇴하면 2년에서 3년 정도 더 일할 기회를 준다. 일하면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시스템인데, 나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은퇴 후 칩거해 책을 써 1년 만에 <내 나이 이웃과 함께, 더 큰 세상으로>를 냈다. 그리고 다시 또 책을 썼다.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에서 착안해 <이젠 아빠를 부탁해>로 제목을 지어 책을 냈다. 반응이 좋았다.”


- 책을 낸 작가인데, 화가를 인생 두 번째 직업으로 삼게 된 경위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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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반응이 좋았지만, 유명한 작가가 아니다보니 홍보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몇차례 신문에 광고를 냈는데 비용이 부담스럽더라. 직접 SNS를 이용해 책을 홍보해야겠단 생각을 갖고 SNS를 배우기 위해 서울은퇴자협동조합을 찾았다. 그곳에서 처음 모바일 그림을 접했다.”

- 교육 과정 중에 모바일 그림이 있었던 건가.

“아이패드를 이용해 교육을 받았는데, 그때 강사가 그림 그리는 애플리케이션인 크레용을 알려줬다. 교육이 일주일에 한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림 그리는데 제일 즐거웠다. 일주일에 한 번은 부족해 당장 아이패드를 사서 수시로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잘 그리려면 애플리케이션을 잘 활용해야 하니까 크레용에 대한 연구도 했다. 내가 매주 새롭고 다양한 그림을 그려 보여주니 강사가 놀라더라. 그러더니 모바일 그림을 업으로 삼아보라고 권하더라.”

모바일 기기로 그린 중국 장가계 전경/이미지=정병길모바일 기기로 그린 중국 장가계 전경/이미지=정병길


- 모바일아티스트라는 직업이 없었는데, 어떻게 일로 삼을 생각을 했나.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일단 모바일 그림에 대한 반응을 살펴보기 위해 SNS에 강좌에 대한 정보를 올렸다. 그런데 수요가 꽤 있더라. 그때 이 일을 인생 두 번째 직업으로 삼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보를 얻기 위해 모바일 그림에 대해 인터넷에 검색했는데 정보가 거의 없더라. 외국 사례는 있었는데 한국엔 없었다.”

- ‘모바일아티스트’라는 세상에 없는 직업을 만들었다.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은퇴한 신중년들에게 창직에 대해 조언해준다면.

“‘내가 원하는 일을 스스로 만들어 한다’는 것에 너무 의미를 부여해 어렵게 생각하지 안았으면 한다. 평소 자기가 좋아하거나 잘하는 활동을 일로 확장한다고 여기면 좋겠다. 코로나19로 디지털 없이는 활동이 어려우니 디지털과 접목시켜 새롭게 활동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하다.”



- 모바일 그림의 매력은 무엇인가.

“모바일 기기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점이다. 그 그림의 형태 역시 원하는 방식으로 구현이 가능하다. 더 나아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게 모바일 그림의 가장 큰 매력이다.”

- 모바일아티스트의 소득 구조가 궁금하다.

“모바일아티스트는 강의를 통해 소득이 발생한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초중등학교 방과후 수업과 문화센터 등에서 강의를 했다. 최근에는 한 대학교에서 비교과과정으로 모바일 그림에 대한 수업을 했다.”

- 코로나19로 강의가 많이 열리지 않아 어려움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

“그렇다. 처음에는 강의가 모두 취소돼 전시회에만 집중했다. 그러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니까 줌으로 수업이 가능해졌다. 줌도 한국은퇴자협동조합에서 연을 맺은 강사가 배워야 한다고 해서 배웠는데, 요즘 유용하게 쓰고 있다.”

- 줌 초보자를 위한 책도 냈던데.

“강의가 취소되고 줌 공부를 시작하면서 그 강사를 비롯해 저를 포함한 네 명이 매일 아침 줌으로 회의를 했다. 줌 회의를 하면서 앞으로 줌으로 모든 게 가능해질 시대가 오겠다는 말이 나왔다. 막상 줌에 대해 알려주는 책은 없었다. 그럼 우리가 쓰자는데 의견이 모여 한 달 만에 ‘줌 활용을 알려줌’ 1권이 나왔고 이어 2권도 펴냈다. 현재 1권은 반응이 너무 좋다(웃음).”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모바일 그림 전시회를 꾸준히 하고 있다. 오프라인 전시가 어려워져 온라인 전시를 하려 한다. 온라인 갤러리에 전시하면 SNS로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다. 이제 줌으로 전시회 오프닝도 할 수 있게 됐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앞으로는 모든게 디지털화될듯하다. 메타버스가 최근 화두인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다음에는 메타버스에서 모바일 그림 전시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웃음).”


정혜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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