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회·정당·정책

사생활 침해에 권력형 비리도 원천봉쇄…'제2 정유라·조민' 보도 막힌다

[與 '언론중재법' 강행]

열람차단청구·정정보도청구권 등 초기 의혹부터 입막음

부주의 오보도 거액 배상…'가짜' 낙인땐 추격보도 못해

"반헌법적 이중처벌"…기업 횡령·배임 취재도 위축될듯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야당 간사인 이달곤(오른쪽) 의원이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문체위 언론중재법 개정안 의결을 앞둔 전체회의에서 도종환 위원장의 회의 진행를 막고 있다. /성형주 기자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야당 간사인 이달곤(오른쪽) 의원이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문체위 언론중재법 개정안 의결을 앞둔 전체회의에서 도종환 위원장의 회의 진행를 막고 있다. /성형주 기자




#이화여대의 정유라 특혜 문제가 터지자 최순실 보도에 지극히 소극적이던 다른 언론사들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무관심했던 일반 국민들도 ‘이게 뭐지’ 하고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최순실 게이트에 기름을 부은 건 이화여대의 정유라 특혜였다.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이 기자 시절 동료들과 당시 사건을 정리한 책 ‘최순실 게이트-기자들, 대통령을 끌어내리다’의 일부 내용이다.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이 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 문턱을 넘어서면서 언론의 역할이 크게 주목 받았던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다시 이목을 끌고 있다. 당시 그는 특종 보도를 이끈 이후 범여권의 국회의원으로 변신했다. 또 김 의원은 5년 전과 달리 국민의힘이 요청한 안건조정위원회에 비교섭단체 몫으로 참여해 여야 균형추를 깨면서 여당의 언론중재법 강행에 속도를 높였다. 일각에서는 현 정부 최대 아킬레스건으로 꼽히는 조국 전 법무장관의 이른바 ‘조국 사태’ 이후 집권 여당의 언론 정책이 변곡점에 들어선 것이라는 진단도 내놓고 있다. 사모펀드 문제나 조 전 장관 자녀 조민 씨의 입시 비리 보도에 ‘의도적·악의적’ 프레임을 씌워 언론중재법의 불가피성을 내세웠다는 시각이다. 언론중재법 강행이 조민 입시 비리 보도에 대한 여당의 전형적인 ‘내로남불’ 접근이 빚은 참사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배경이다.



①권력·자본의 만병통치약 ‘열람차단청구권’=김 의원이 ‘정유라 이화여대 입시 비리’를 보도한 2016년 당시 언론중재법이 존재했다면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보도는 시작부터 막혔다. 언론중재법에 포함된 열람차단청구권과 정정보도 청구로 기사 열람을 일정 시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유라 특혜 보도 당시 청구권이 적용됐다면 김 의원의 특종은 열람이 차단될 뿐만 아니라 인터넷 기사에 정정보도 청구까지 표시해 ‘허위’라는 낙인이 불가피하다. 이화여대는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썼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즉 정유라 씨와 이화여대가 개정안에 신설된 ‘사생활 침해’와 ‘인격권’ 등을 내세워 정정보도와 열람차단청구권을 요구할 경우 언론중재위원회에 회부된다. 다른 언론이 이 같은 의혹 보도를 추종 보도한 뒤 중재위가 정유라 씨의 정정보도청구권을 인정하게 되면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돼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으로 손해액의 5배까지 적용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김의겸 의원 측은 개정안 5조2항을 들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서, 진실한 것이거나 진실하다고 믿는 데에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언론 보도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진보 성향의 시민 단체 오픈넷의 손지원 변호사는 “공공의 이익이 소송 남발을 막을 수는 없다”며 “명백한 증거가 부족한 단계지만 초기 의혹 보도는 대중의 관심을 촉발시켜 은폐되고 있는 진실을 발견하는 데 힘을 실을 수 있는데 소송으로 초기 의혹 보도는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②언론 재갈에 제어장치 없는 ‘유전·유권 무죄’=여당은 언론자유 침해 요인 일부를 완화시키며 여론 달래기에도 나섰지만 ‘유전·유권’에 면죄부를 부여할 수 있다는 비판은 계속되고 있다. 여당은 고위 공직자와 대기업 및 그 관계자(주요 주주 및 임원)에겐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를 하지 않고, 공익 신고자 보호법상 ‘공익침해행위’나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 위반 행위에 관한 보도 등은 손배 대상에서 배제했다. 다만 핵심 독소 조항으로 지적돼온 언론사나 기자의 고의·중과실을 추정하는 요건은 그대로 뒀다.

문제는 고의뿐 아니라 부주의로 벌어진 오보도 대상인데, 어디까지 ‘고의 또는 중과실’로 규정할 것이냐부터가 문제점으로 꼽힌다. 최순실 게이트 당시 언론은 최 씨 등이 대기업에 미르와 K재단 출연을 강요하거나 특정 업체와의 계약 체결을 강구하며 협박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강요죄 성립 요건인 협박으로 보기에는 부족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언론중재법을 적용할 경우 당시 보도는 모두 ‘가짜 뉴스’가 되는 셈이다.

여당은 개인이 아닌 법인 차원의 고의·중과실 추정도 열어놓아 기업의 횡령과 배임 등의 비위 행위를 보도하는 데도 위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을 역임한 김한규 변호사는 “언론이 위축되면 유전·유권 무죄에 제어장치가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③사법부 ‘중립’ 상실 및 ‘이중 처벌’ 우려=전문가들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언론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고의와 중·경과실을 판단하게 될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 문제도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최소한의 기본 전제 조건은 사법부가 정치적으로 독립적인 판단을 한다는 신뢰와 믿음”이라며 “사법부의 판단 독립 보장 장치 등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한규 변호사도 “꼭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해야 한다면 자의적인 판단 여지가 큰 ‘중과실’은 빼고 누가 봐도 명백한 ‘고의’만 갖고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중 처벌도 문제다. 기자 출신으로 국회 문광위 소속인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명예훼손과 관련해 형사처벌이 이뤄지는 우리 실정에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도입하면 이중 처벌 문제가 발생한다”면서 이중 처벌 우려를 제기했다.


송종호 기자·임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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