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불안하고 예민하게만 느껴지는 열여덟 소녀들이 각자의 상황 속에서 더 나아지기 위해 탈출구를 찾아 나선다. 옳은 길이 아닐지라도, 그때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으며 자신을 내던진다. 더 아픈 방식으로 상처를 치유해 나가려는 이 소녀들의 이야기는 먹먹하면서도 깊은 여운이 남는다.
20일 오후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영화 ‘최선의 삶’ 언론시사회가 진행됐다. 이우정 감독과 배우 방민아, 심달기, 한성민이 참석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최선의 삶’은 가난과 학교폭력 등으로 아픔을 겪고 있는 열여덟 소녀 강이(방민아), 아람(심달기), 소영(한성민)이 더 나은 삶을 위해 가출을 감행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임솔아 작가의 동명 장편소설이 원작으로, 가수 아이유가 인생책으로 언급해 주목받기도 했다.
이우정 감독은 각색과 연출을 맡아 10대 시절의 불안하고 예민한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이들이 어떤 아픔을 안고 있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 보다 현재의 감정에 집중한다. 이 감독은 “원작은 내가 피해 왔던 과거의 상처와 닿아있는 소설”이라며 “강이라는 인물이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가는 것에 위로를 받았다. 강이에게 힘을 받아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고 작품 선택 이유를 밝혔다.
이어 “원작은 긴 시간 동안 세세한 감정을 담고 있는데, 2시간 안에 담기 어려웠다”며 “영화는 원인과 과정을 생략하고 강이라는 인물이 맞닥뜨리게 되는 감정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비슷한 상처와 경험이 있는 관객들이라면 그 방식에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고 설명했다.
작품은 소녀들이 성장하는 방식을 따뜻하고 포근하게 비추지 않고, 가출 청소년들이 노출되는 각종 범죄들과 현실을 건조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심달기는 “착하지 않은 이야기를 만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느끼는데, ‘최선의 삶’은 착하지 않게 끝까지 가는 이야기라 큰 매력이 있었다”며 ‘최선의 삶’만의 분위기를 설명했다.
이야기는 단짝 친구 강이, 아람, 소영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당연히 세 배우의 흡인력이 가장 중요했다. 이 감독은 원작을 읽으면서 아람 역에 심달기가 바로 떠올라 제일 먼저 캐스팅을 진행했다. 그는 “심달기를 알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알쏭달쏭한 인물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심달기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이어 소영 역 캐스팅에 대해 “다른 배역들 캐스팅하려고 하던 중에 휴대폰에 저장해 놓은 한성민의 사진이 떠올라 미팅을 잡았다. 한성민이 걸어들어오는 순간부터 소영이었다”며 “그의 분위기에 압도됐다. 이 정도 힘과 아우라를 가진 사람이라면 소영을 다 표현해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작품의 시선을 담당하는 강이 역의 방민아는 마지막에 캐스팅됐다. 이 감독은 “‘강이 역을 맡는 배우도 안 해본 모험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며 “방민아와 처음 미팅하는 자리에서 본인이 원작을 보고 들었던 고민과 괴로움을 정말 너무 솔직하게 쏟아냈다. 이런 사람이라면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이 의미 있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배우들은 모두 자신의 배역의 감정에 공감하며 연기에 임했다. 방민아는 좀처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타인에게만 맞춰주다가,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는 강이를 연기했다. 방민아는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개인적인 트라우마가 떠올랐다”며 “나 또한 타인에게 상처받았던 기억이 있다. 강이처럼 자기 자신이 없고 타인이 더 중요한 때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그런 부분들이 강이의 시점에서 그 마음이 어떨지 공감이 됐다. 그래서 ‘강이 역할을 연기하고 나면 내 인생에 있어서도 한 챕터가 지나가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이 영화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강이와 내가 비슷한 점도 있지만 결국 다른 사람이니까 강이가 어떠한 선택을 하거나, 옳지 않은 선택이 점점 더 최악에 치달을 때가 가장 어려웠다. 그 지점에서는 공감하기 어렵고 유추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심달기는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아람 역을 맡았다. 그는 “아람이를 처음 봤을 때 많이 놀랐다. 실제로 나의 어린 시절과 닮아 있어서 놀라웠다”고 운을 뗐다. 그는 “버려진 물건을 주워 온다든지, 고양이에게 집착하는 것이 닮았다. 또 친구 관계에 있어서도 아람의 위치가 독특하다고 느꼈는데,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강이에게 이입되면서도 친구들에게 의견을 들어보면 ‘넌 그냥 아람이었다’고 하더라”며 “아람이를 통해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반면 아람을 표현하는 과정에서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는 “아람이가 처해있는 환경이나 아람이가 당하는 사건들이 폭력적이고 위험한데, 그게 영화 장면에 직접적으로 묘사되지 않고 그 상황을 직면할 기회가 없어서 상상 속으로만 해야 했다. 아람이는 그런 아픔을 갖고 있는 인물인데 그런 것들이 안 보여질까 봐 겁이 많이 났다”고 털어놨다.
한성민은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높은 계급에 있으면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소영을 연기했다.“어른도 아이도 아닌 열여덟 나이에서 겪는 새로운 환경과 감정이 나의 열여덟과 오버랩 돼 공감됐다”면서도 “소영은 대범하고 확실하게 표현하는 성격인데, 난 조금 소극적인 면이 있어서 그 접점을 찾는 게 어려웠다”고 했다.
작품 속 세 사람은 각기 다른 상황과 성격임에도 하나로 뭉쳐 다니고, 그 속에서도 미묘하게 계급이 나뉘는 친구 사이를 표현했다. 이 감독은 작품에 들어가기 전, 가장 친한 친구의 분위기를 풍겨야 하는 세 사람의 관계에 가장 걱정을 많이 했다. 그는 “영화를 준비하는 시간이 짧아 조급했다. 배우들에게 ‘촬영에 들어가자마자 완전 찐친이 돼있어야 한다. 얼굴만 봐도 꺄르르 해야 한다’고 말로 압박했다”고 말했다. 이어 “내 마음을 방민아가 먼저 눈치채고 따로 자리를 마련했다. 세 명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후에 세 명이 친해져서 돌아왔다”고 후일담을 전하기도 했다.
방민아는 “우리가 친해질 수 있을지 걱정했다. 일단은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극적으로 제안을 했다”며 “촬영 들어가기 전에 작품 속에서 동갑이니까 서로 말을 놓자고 했는데, 처음에는 당황해하더라.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서로 노력을 했고, 촬영장에 갔을 때 진짜 친구 같았다”고 말했다.
방민아는 지난 8월 ‘최선의 삶’으로 제20회 뉴욕 아시안 영화제에서 국제 라이징 스타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그룹 걸스데이로 데뷔하고 현재 배우 활동에 집중하고 있는 그는 “주변에서 ‘데뷔한 지 좀 됐는데 라이징상을 받은 느낌이 어떠냐’고 물어보더라. 개인적으로 정말 좋고 계속 라이징 하고 싶다”며 “감독님, 배우들과 주변인들 덕분에 이렇게 상을 받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고 겸손한 소감을 전했다.
이 감독은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2관왕, 제46회 서울독립영화제 새로운선택상을 수상하고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받기도 했다. 그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그 시절에 설명 불가한 감정들, 그걸 믿으면서 영화를 만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업을 할 때 배우들과 웃을 수 있을 때 웃고, 웃음기를 거둬야 할 때는 거두고 열심히 촬영을 마쳤다는 것에 뿌듯했다. 그 과정을 함께한 배우들과 이 자리에 함께할 수 있어서 뿌듯하다”고 만족해했다.
한편 ‘최선의 삶’은 9월 1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