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경선 ‘명락대전’ 한복판에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가 소환됐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측이 황 씨에게 ‘보은인사’ 의혹을 제기한 것이 이 전 대표와 황 씨 사이의 ‘친일공방’으로 격화되더니 이내 논란은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화재먹방’으로 옮겨붙었다. 일주일 남짓한 기간 동안 여러 논란이 동시에 불거지면서 이 지사와 이 전 대표 양 측 모두 상처를 입었지만 ‘대중 이미지’ 측면에서는 이 지사의 출혈이 더 심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논란의 중심에 선 황교익…검색량 윤석열·이재명 압도
황 씨가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네이버 검색량으로 확인된다. 검색량 분석 서비스인 ‘네이버 데이터랩’으로 지난 2주간 황 씨와 여야 주요 대선 후보들의 검색량을 비교해본 결과 검색량이 0에 수렴하던 황 씨는 지난 13일 하루만에 여야 주요 대선 후보들을 제치고 검색량 1위가 됐다. 이날은 황 씨가 경기관광공사 사장에 임명된 것을 두고 이 전 대표 측에서 “황 씨에게 전문성을 찾아볼 수 없고 정치적으로도 이 지사를 옹호해왔다”며 보은인사 의혹을 제기한 날이다. 황 씨는 앞서 한 라디오 방송에서 이 지사의 ‘형수 욕설’을 두고 “성장 환경을 고려하면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라고 감싼 바 있다.
광복절 연휴에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예비 후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던 황 씨의 검색량은 지난 17일 전날에 비해 68% 급증하며 다시 한 번 1위(검색량 47)가 됐다. 보은인사 논란이 친일공방으로 확전된 날이다. 이날 이 전 대표 캠프의 신경민 상임부위원장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황 씨를 겨냥해 “(황 씨는) 일본 음식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한국 음식은 아류라고 말해왔다”며 “도쿄나 오사카 관광공사에 더 맞을 분”이라고 비판했다. 황 씨는 즉각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렇다면 이 전 대표는 ‘일본통’이니 일본 총리를 하라”는 글을 올리며 맞불을 놨다.
이후 황 씨는 페이스북을 통해 “이 전 대표가 일본 정치인 제복인 연미복을 입었다”, “짐승”, “이낙연의 정치 생명을 끊겠다”와 같은 발언을 잇달아 내놓으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그는 “이 지사와의 인연은 다른 대선 주자들과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이 지사가 ‘황교익TV’에 출연한 것 뿐”이라며 “저는 다른 대선 주자들에게 차별의 시선을 둔 적 없다”고 보은 인사 공세에도 정면 대응했다. 황 씨를 둘러싼 논란에 여야 정치인들도 한 마디씩 평을 보태면서 18일 황 씨의 검색량은 100을 기록했다. 같은날 윤 예비 후보의 3.3배, 이 지사의 4배가 넘는 수치다. 네이버 데이터랩은 검색 기간 중 가장 검색량이 많은 날을 100으로 잡고 상대적인 검색량을 시각화해주는 서비스다.
황 씨를 매개로 한 네거티브전이 ‘친일공방’으로까지 격화되자 민주당에서는 사태를 정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더 이상 논란이 지속돼봐야 이 지사 측과 이 전 대표 측 모두에게 좋을 것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 전 대표가 먼저 화해를 시도했다. 이 전 대표는 19일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과 만나 황 씨가 사과를 요구한다는 기자들의 질문에 “저희 캠프에 책임 있는 분이 친일 문제를 거론한 것은 지나쳤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황 씨는 “이 전 대표가 직접 친일 프레임의 막말을 한 것이 아니니 이 정도의 말씀을 하신 것으로 추측한다”며 “저도 ‘짐승’, ‘정치생명’ 등을 운운한 것은 지나쳤다고 생각한다”고 화답했다. 민주당의 ‘큰어른’ 격인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도 황 씨에게 ‘원만한 수습’을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날 황 씨는 “소모적 논쟁을 하며 공사 사장으로 근무 한다는 것은 무리”라며 경기관광공사 사장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황 씨의 사퇴로 사태가 일단락되나 했더니 불똥이 이 지사에게 튀었다. 이 지사가 황교익TV를 녹화한 날이 ‘이천 쿠팡 물류센터 화재’가 발생한 지난 6월 17일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출동한 소방관 1명이 순직하고 불길이 6일 동안 이어진 사건이었다. 이에 여야를 막론하고 비판이 쏟아졌다. 이 전 대표 측은 “이 지사는 화재경보기가 울린 지 20시간만에 현장에 갔다”며 “무책임하고 무모한 행보”라고 지적했다. 유승민 국민의힘 대선 예비 후보 측도 “도민의 생명을 책임질 지사의 책무를 버린 것”이라고 꼬집었다. 윤희숙 국민의힘 대선 예비 후보는 “도민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을 때 도지사가 멀리 마산에서 떡볶이를 먹으며 키득거리는 장면은 사이코패스 공포영화처럼 소름 끼친다”고 날을 세웠다. 이 지사의 ‘화재 먹방’ 논란이 화제가 되면서 20일 이 지사의 검색량(33)은 윤 예비 후보(29)를 넘어 섰다.
잘 수습된 ‘친일공방’ vs 이목 집중되는 ‘화재먹방’
황 씨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상에서도 상당한 주목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SNS상 텍스트를 분석해주는 빅데이터 서비스 ‘썸트렌드’에 따르면 하루 평균 수백건 수준이던 황 씨의 SNS상 언급량은 지난 13일 1만 7,771건으로 급증했다. 친일 논란이 격화된 지난 18일에는 언급량이 7만 4,850건까지 늘었다. 웬만한 유력 대선 주자들보다 높은 수치다.
황 씨에 대한 늘어난 관심은 이 전 대표보다 이 지사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썸트렌드로 분석한 결과 두 후보 모두 8월 3주차 연관 키워드에 ‘황교익’이 상위권에 올랐지만 이 지사의 경우 키워드 ‘황교익(11만 363건)’의 순위가 13단계 상승하며 1위에 올랐다. 다른 연관어를 살펴봐도 넷심은 보은인사나 친일공방보다 화재먹방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 것으로 풀이된다. 친일 논란이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정치인들 사이의 ‘설전’이라면 대형 화재와 같은 재난 상황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문제라 인화성이 더 컸던 것으로 분석된다.
이 지사의 8월 3주차 연관어 상위 15개 중 6개는 새로 진입한 단어들이다. 화재(6만 2,538건), 쿠팡(4만 1,603건), 먹방(2만 6,492건), 떡볶이(2만 3,007건) 등 대부분 이천 쿠팡 물류센터 화재와 직접 관련된 키워드 들이다. 특히 연관어 ‘화재’가 ‘이낙연(6만 2,538건)’을 제치고 ‘황교익’에 이어 2위에 오른 것이 눈에 띈다. 키워드 ‘박근혜(2만 271건)’의 경우에도 이 지사가 20시간만에 현장에 나타난 것을 두고 일각에서 세월호 사건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보가 연상된다는 비판이 일면서 회자된 것이다.
반면 이 전 대표의 연관어에는 황 씨가 상위권에 오른 것을 제외하면 큰 변화가 없다. 새로 15위 이내에 진입한 단어들도 ‘정치(1만 8,221건)’, ‘검찰(1만 8,208건)’, ‘개혁(1만 8,187건)’ 등 네거티브 공방과 무관한 단어들이다. 키워드 ‘생명(2만 722건)’ 역시 황 씨가 이 전 대표를 향해 “정치 생명을 끊겠다”고 맹공하면서 언급 빈도가 높아진 경우다. 전체적으로 이 전 대표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할 친일 프레임 키워드는 수면 위로 부상하지 않은 셈이다. 친일 공방이 과열되기 전에 이 전 대표가 먼저 사과하면서 위기관리에 성공한 모습이다.
화재먹방 정면대응에 비난 고조…결국 “더 빨리 갔어야 했다”
이 지사의 ‘화재 당일 떡볶이 먹방’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고조되며 이 지사가 대처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자 이 지사는 결국 화재 당일 경기도지사로서 대응이 부족했음을 인정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지난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 지사가 현명하지 못한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적어도 소방 구조대장이 진화 작업 중 행방불명돼 생사도 모르는 시점에 떡볶이집은 아무리 생각해도 도지사가 있기에 적합한 장소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구구절절 변명할 것 없이 ‘잘못했다. 생각이 짧았다’라고 사과하는게 좋다. 랠리를 길게 끌고 가야 좋을 것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앞서 이 지사는 20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화재 당시 마산과 창원에 가 있기는 했지만 실시간으로 보고 받고 그에 맞게 지휘도 했다”며 “이것을 가지고 빨리 가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면 부당하다”고 반박했다. 이 지사는 “국민 안전 문제를 가지고 왜곡하고 심하게 문제 삼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그날 밤늦게 경남 일정을 포기하고 새벽에 도착해 현장 일정을 충분히 했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고 주장했다.
이 지사가 출연했던 황교익TV의 영상에 네티즌들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한 네티즌은 “세월호 사건 당시 진도 체육관에서 당시 교육부 장관이 사발면 하나 먹었다가 비난받았는데 그 분은 지금 억울하겠다”고 꼬집었다. 다른 네티즌들도 “악마를 보았다”, “소방관은 목숨을 불태우며 책무를 다하는데 도지사는 히히덕 거리며 떡볶이나 먹고 있다”, “이래놓고 영결식에서 눈물이 나오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해당 영상 조회수는 21일 14시 기준으로 7만회를 넘겼다. 황교익TV의 같은 시리즈 영상들의 조회수는 1만회 내외에 그친다.
여론이 악화되자 이 지사는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과문을 올리고 진화에 나섰다. 그는 “나름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했지만 모든 일정을 즉시 취소하고 더 빨리 현장에 갔어야 마땅했다는 지적이 옳다”며 “저의 판단과 행동이 주권자인 국민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음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권한과 책임을 맡긴 경기도민을 더 존중하며 더 낮은 자세로 성실하게 섬기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