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올해 제출된 증권신고서 10건 중 1건꼴로 정정 요구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본시장이 활기를 띠었던 지난해부터 부쩍 증권신고서 미비점을 수정해 제출하라는 금융 당국의 요구가 강해지고 있다. 증권신고서는 증권을 발행할 때 금융 당국에 무조건 내야 하는 서류다. 투자위험 요소, 조달 자금 용도, 발행사 재무 상태 등 공모 전반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23일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금감원은 2021년 1~6월 총 318건의 증권신고서(스팩 제외)에 대해 총 32건의 정정 요구를 했다. 이를 비율로 집계하면 10.06%다. 지난 2017~2019년에는 4~5%에 불과했는데 지난해 12.8%로 급증했다.
지난해부터 기업공개(IPO)·유상증자 등을 통해 자금 조달에 나선 기업이 늘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해 증권신고서 제출 건수는 총 530건으로 2019년보다 12.3% 늘었다. 올해 상반기에만 318건이 접수돼 하반기에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진다면 2011년(739건) 이후 처음으로 600건을 넘길 가능성이 높다. 금감원 관계자는 “원인을 정확히 꼬집기는 쉽지 않다”면서도 “지난해 주식 시황 개선으로 IPO도 늘다 보니 준비가 소홀한 상태로 자금 조달에 나서는 기업이 늘어 증권신고서 부실 기재 사례가 늘어났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형식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거나 △중요 사항 기재가 거짓되거나 미흡한 경우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할 수 있다. 최근에는 형식보다 내용상 부실 기재나 근거 불충분으로 인해 정정을 요구하는 사례가 더 많다는 설명이다.
증권가에서는 증권 발행 시장에 참여하는 개인투자자가 급격히 늘면서 금융 당국이 ‘후견인’ 내지 ‘규제주의’적 역할을 강화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특히 금감원의 정정 요구로 IPO 기업이 공모가 범위를 낮추는 사례가 늘면서 이 같은 관측이 ‘합리적 의심’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다. 가령 크래프톤은 처음 증권신고서를 낼 때 공모가 희망 범위를 45만 8,000~55만 7,000원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시장에서 월트디즈니 등 글로벌 콘텐츠 기업을 비교 기업으로 삼은 것을 두고 비판이 나온 후 금감원이 정정을 요구하자 크래프톤은 공모가 밴드를 40만~49만 8,000원으로 낮췄다. SD바이오센서는 공모가 범위를 두 번이나 내렸다.
금감원이 지나치게 시장가격에 간섭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만만찮다. 발행액은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판단할 대목이라는 뜻이다. 성희활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금융 당국의 개입 확대를 소비자 보호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면서도 “공모가 정정 등 사실상의 가격 규제가 나타나는 것은 시장경제 관점에서 역행하는 부분이 있다”고 평가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나친 간섭은 자본시장을 왜곡시키고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만큼 국회가 금감원 감독 행위의 타당성을 사후 검증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금감원의 ‘가격 간섭’ 측면이 부각되는 데는 역으로 애널리스트·신용평가사 등 민간 부문의 IPO 기업 가치 평가가 활발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