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동십자각] 보고타의 6층 석탑

정영현 문화부 차장


콜롬비아 보고타 국방대 교정에는 우리에게 무척 익숙한 형태의 조형물이 하나 서 있다. 한국 전통 양식의 6층 석탑이다. 높이가 12m나 돼 꽤 웅장한 분위기를 풍긴다. 한국 석탑이 왜 1만 4,775㎞나 떨어진 남미 한복판에 세워졌을까. 탑에 얽힌 사연은 7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1951년 4월 콜롬비아 북부 카르타헤나에서 프리깃함 1척이 출항했다. 목적지는 같은 민족끼리 총을 겨누고 있다는 극동의 한반도. 식민 수탈에서 벗어나자마자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했다. 1,000여 명의 콜롬비아 보병도 미국 수송선을 타고 한반도를 향해 떠났다. 다른 국가에 비해 늦은 참전이었지만 이들은 치열한 고지 쟁탈전에 뛰어들어 북한·중공군과 맞서 싸웠다. 중요한 전투였던 만큼 큰 희생을 치렀다.

4차례 파병에 5,100여 명이 참전했고, 213명이 전사했으며 수백 명이 다쳤다. 이들의 희생을 기억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1973년 보고타에 석탑을 세웠다.

이들 중 일부 희생자는 정말 탑의 존재로만 기억된다. 전사 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아직도 한국 땅 어딘가에 묻혀 있다. 24일 2박 3일 일정으로 국빈 방한한 이반 두케 콜롬비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발표한 공동선언문에서 70년째 실종 상태인 콜롬비아 장병을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자고 다시 한번 강조했을 정도다. 언제 생각해도 숙연해지는 희생이다.



한때 한국을 도왔던 콜롬비아의 정상이 한국을 떠난 날, 공교롭게도 고국이 격변에 휩싸인 아프가니스탄인들이 도움을 청하며 한국에 왔다. 묘한 엇갈림이다. 정부는 이들의 입국에 대해 “우리와 함께 일한 동료들이 처한 심각한 상황에 대한 도의적 책임, 국제사회 일원으로서의 책임, 인권 선진국으로서의 국제적 위상, 그리고 유사한 입장에 처한 아프간인들을 다른 나라들도 대거 국내 이송한다는 점 등을 감안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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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들의 한국 입국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작지 않다. 우리도 먹고살기 힘들어 남을 도울 처지가 아니라고 한다. 일부에서는 종교에 대한 혐오 발언을 거침 없이 내놓는다. 한국은 미국이나 영국과 달리 아프가니스탄에 ‘부채’가 없는데 왜 이들을 받느냐고 항의하기도 한다. 이에 정부는 이들을 난민 대신 ‘특별공로자’ ‘협력자’ 등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현지에서 ‘엘리트 계층’이었고 국내 입국자 중에 어린 아이가 많다는 점을 계속 강조한다. ‘기적’이라는 구출 작전명까지 공개하는 등 여론의 눈치를 굉장히 살핀다.

다시 말하지만 한국은 다른 국가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위기에서 벗어난 경험이 있다. 한국에 아무런 부채가 없던 나라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내놓았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경제 번영과 자유, 민주주의는 우리 선열들의 투쟁과 노력 덕분이기는 하나 먼 나라 청년들의 붉은 피도 더해진 결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국제사회 도움의 선순환 트랙에 올라 있음을 기억한다면 아프간인들의 이날 입국은 정부가 여론의 눈치를 이토록 살필 일도, 국민들이 그렇게 눈치 줄 일 도 아니다.





정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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