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시대에는 사상가들이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자신의 사상을 세상에 펼치기 위해 이 나라 저 나라를 찾아다녔다. 이를 ‘유세(遊說)’라고 한다. 이 말은 오늘날 맥락이 조금 다르지만 선거에서 후보자가 자신의 정책을 알리는 행위를 가리킬 때 사용한다. 맹자도 양나라·제나라 등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사상을 현실에서 실현하고자 노력했다. 사실 당시 도로와 숙박업 등 여행 여건이 오늘날과 비교할 수 없이 열악한 상황이라 유세는 상당히 위험한 일이었다. 맹자는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열망으로 온갖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맹자’의 첫 문장은 맹자가 양나라 혜왕(惠王)을 만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혜왕은 맹자를 보고 “천 리를 멀다고 여기지 않고 양나라로 왔다”며 그 노고를 치하했다. 혜왕은 맹자를 몇 차례 만나면서 자신이 실현하고자 하는 정책에 관해 맹자에게 자문하기도 하고 궁금한 점을 물어보기도 했다. 그중의 하나를 소개하면 이렇다. 혜왕은 하내 지역에 흉년이 들면 그곳의 주민을 하동으로 이주시키기도 하고 구휼미를 보내기도 했다. 혜왕이 당시 다른 나라의 재해 대책을 살펴보니 자신처럼 하는 경우가 없었다. 이에 그는 백성들이 어느 나라가 살기 좋은지 따져보고서 많은 사람이 양나라를 찾으리라 내심 기대를 많이 했다.
당시가 ‘싸우는 나라들의 시대’로 불릴 정도여서 약육강식의 현실을 이겨내려면 땅을 넓히고 인구도 늘려야 했다. 혜왕은 자신의 재해 대책이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뛰어나므로 다른 나라에서 양나라로 살려고 오는 이민 행렬이 줄을 이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기대는 이뤄지지 않았다. 혜왕은 자신이 국가 재해의 발생에 진심으로 대처하고 있는데 왜 자신의 백성이 많아지지 않는지(과인지어국야·寡人之於國也, 진심언이의·盡心焉耳矣. 과인지민불가다·寡人之民不加多, 하야·何也) 그 이유를 몰라 맹자에게 물었다.
맹자는 그 유명한 오십보백보 이야기를 했다. 전쟁터에 오십 보 도망간 사람이 백 보 도망간 사람더러 자신보다 더 많이 도망갔다고 비웃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혜왕이 다른 나라 군주보다 재해 대책을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정도의 문제일 뿐이라는 말이다. 사실 양나라를 비롯한 당시 국가들은 군사의 식량을 창고에 쌓아두고 마구간의 말은 관리를 잘 받아 온몸에 윤기가 흘렀지만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림으로 고생하다가 죽은 사람이 길에 즐비했다. 이런 상황에도 부국강병을 외치며 국부를 늘려야 한다고 외칠 뿐 호전적인 정책을 반성하지 않았다. 재해에 구휼미 제공은 언 발을 녹이는 미봉책에 불과했다.
혜왕은 진심했다고 하지만 맹자가 보기에 그건 진심의 전부가 아니라 진심의 일부를 한 것일 뿐이다. 이 진심의 일부마저 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자격이 없다고 할 수 있다. 혜왕은 전쟁에 승리해 패자(覇者)가 되려는 부푼 꿈을 꾸고 있지만 사실 그 꿈은 백성의 엄청난 희생을 도외시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재해에 따른 작은 고통을 볼 뿐이지 호전에 따른 큰 고통을 보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혜왕은 백성의 큰 고통에 눈을 감고 자신의 욕망과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결국 그가 말하는 진심은 자신의 명리를 키우려는 진심(塵心)이거나 자신의 기대에 따르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진심(嗔心)이다. 혜왕은 개인의 야욕에 빠져, 오로지 백성을 잘살게 하겠다는 진심(眞心)이 없기 때문에 진심(盡心)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진심(眞心)의 진심(盡心)에 사람들이 공감하고 호응하지 누가 진심(塵心)과 진심(嗔心)의 진심(盡心)에 맞장구를 치겠는가.
요즘 대선 출마를 선언한 후보들은 자신의 진심이 알려지지 않아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다고 걱정을 한다. 걱정을 하기 전에 자신의 ‘진심’이 자신과 주위 사람들의 출세와 이익을 잡으려는 진심인지 국가와 민족을 더 안전하고 평화로운 세상으로 이끌 수 있는 진심이 따져봐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혜왕처럼 희생과 공감은 하지 않고 자신의 영광을 키우고자 한다면 그런 진심에 귀 기울일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진심은 혼자 할 일일 뿐 함께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