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정책

"법적 근거도 없는 무리한 중징계"…우리은행, 한시름 덜었다

함영주 하나지주 부회장도 승소할 듯

감독체계 재정립도 불가피해져

내부통제 위반 근거마련이 숙제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해외 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관련 징계 취소 소송에서 ‘완승’하면서 금융감독원의 사모펀드 관련 징계 자체가 무리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금감원이 관련 징계 계획을 전면 수정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그동안 징계 여파로 위축될 수밖에 없었던 우리은행의 행보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법원에서 금감원이 법령상 허용된 범위를 넘어서 제재를 내렸다고 판단함에 따라 금감원 입장에선 법적 근거도 없는 부당한 조치를 내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번 판결로 같은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도 승소 가능성이 높아졌다. 윤석헌 전 원장이 밀어붙였던 사모펀드 제재가 방향을 틀면서 금융 감독 체계 재정립도 불가피해졌다.



금감원은 지난해 3월 손 회장과 함 부회장의 문책경고를 확정했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이 DLF를 불완전 판매했고, 당시 경영진이었던 손 회장과 함 부회장이 내부 통제를 부실하게 했다는 게 이유였다. DLF는 금리·환율·신용등급 등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결합증권(DLS)에 투자하는 펀드다. 2019년 하반기 세계적으로 채권 금리가 급락하면서 미국·영국·독일 채권 금리를 기초자산으로 삼은 DLF에서 대규모 원금 손실이 발생했다.



이번 소송의 핵심 쟁점은 금융사 지배구조법상 내부 통제 기준 ‘준수 의무’의 책임을 어디까지 물을 수 있느냐였다. 27일 열린 DLF 관련 소송에서 행정법원이 손 회장의 손을 들어준 것은 관련 법령이 충분히 구체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는 “현행법상 내부 통제 기준 ‘준수 의무’ 위반을 이유로 금융회사나 그 임직원에 대해 제재 조치를 가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이 법령상 허용된 범위를 벗어나 처분 사유를 구성한 징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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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에선 당연한 결과라면서도 이번 기회를 반면교사로 삼겠다는 입장이다. 우리금융 측은 “그동안 고객 피해 회복이 가장 시급하다는 판단하에 금감원 분쟁 조정안들을 즉각 수용했으며 대다수 고객 보상을 완료하는 등 신뢰 회복 방안을 성실히 추진했다”며 “앞으로도 철저한 내부 통제와 금융 소비자 보호를 위한 정책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재판부는 금감원이 제재의 근거로 들었던 5개 사유 중 ‘금융상품 선정 절차 마련 의무 위반’은 인정했다. 쉽게 말해 문책경고와 같은 중징계까진 아니더라도 손 회장 등 CEO가 내부 통제 부실과 관련해선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관련 법령 개정이 숙제로 남았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재판부도 금감원 패소 판결을 내렸지만 이례적으로 법령과 고시를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히 개정해 달라고 제안했다. 또 내부 통제 규범과 기준을 위반한 금융기관 내부의 조직적 행태와 문제점을 판결문을 통해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 금감원도 제도 개선 의지를 피력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재판부도 내부 통제의 조직적 행태나 문제점을 적시했다”며 “내부 통제 제도 운영 상황에 대해 점검하고 필요한 경우 금융위와 협의해 개선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관건은 금감원이 어떤 행보를 택하느냐다. 금융권에서는 항소를 포기하고 이번 판결을 감독 체계 재정립의 명분으로 삼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실제로 정은보 금감원장은 지난 6일 취임 일성으로 “금융 감독의 본분은 규제가 아닌 지원에 있다”며 감독 체계 재정립을 천명한 바 있다.

금감원이 항소를 포기하면 손 회장은 법원이 인정한 한 가지 사유를 바탕으로 다시 제재 심의를 받아야 한다. 법에 근거한 제재 사유가 다섯 가지에서 한 가지로 줄어든 만큼 중징계를 받을 가능성은 낮다.

라임과 옵티머스 등 줄줄이 이어지는 사모펀드 관련 제재 수위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금감원은 라임자산운용·디스커버리·헤리티지·헬스케어펀드 등을 불완전 판매했다며 하나은행에 ‘기관경고’를, 당시 은행장이었던 지성규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에게 문책경고를 사전 통보했다. 지난 7월 제1차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9월로 미뤄둔 상황이다.


김상훈 기자·심우일 기자·한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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