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거짓의 세상을 만들지 말라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삼권분립마저 흔드는 '언자완박'

언론의 권력 견제 기능 원천봉쇄

조선부터 흐르던 정론직필 역사

대선 앞두고 퇴보시켜서는 안돼





조선왕조 시대에는 임금에 대한 시민의 직언과 상소의 전통을 모두가 보존했기에 전제 왕정을 막을 수 있었다. 외세의 침략과 독재 정권하에서 국민들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쟁취하는 것은 민주주의 회복의 시금석이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기사 열람 차단 청구권 등을 신설한 언론중재법 개정으로 수천 년의 언론 정치 역사가 민주화 세력을 자처하는 자들에 의해 거꾸로 흐르고 있다.



가짜 뉴스와 허위 정보를 잡겠다는 명분하에 ‘고의나 중과실로 인한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하겠다는 발상 자체는 겉보기에 신선해 보인다. ‘고위공직자와 대기업을 징벌적 손배 청구 주체에서 배제’한 것도 언론이 권력에 통제당하는 위험을 줄인 것처럼 보인다. ‘공익 침해 행위와 공적 관심사에 대한 언론 보도의 경우 손배 소송을 제기할 수 없게’ 원안을 수정한 것도 소송 남용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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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실제로는 제대로 운영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특히 정치적 사안에 있어 시민 집단이나 수많은 개인은 자신들 뜻에 맞지 않는 보도를 막기 위해 이른바 ‘전략적 봉쇄 소송’을 일단 남발하는 체제로 급격히 이행할 것이다. 소송이 제기될 경우 언론사·기자가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을 직접 입증해야 하니 웬만한 보도는 아예 엄두도 못내는 ‘냉각 효과(chilling effect)’가 발생한다. 보도 내용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는 과정에서 기자가 제보자를 공개해야 할지도 모른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집단 괴롭힘을 당할 텐데 앞으로 누가 정치적 비리를 제보할까. 권력형 비리나 가해자가 진술을 거부하는 성(性)폭력 피해 보도는 애초에 가로막히고 가습기 살균제 위험성 고발 등 사회적 파장이 큰 과학 기사를 쓰는 것도 어렵다. 대형 사건 초기에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는 엄두도 못 낼 것이다. 실체 파악이 이뤄질 리 없다.

원래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었는지는 법원이 구체적 사건에서 보편적인 판단 기준을 적용해 결정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언론중재법은 ‘반복적 허위·조작 보도, 별도 검증 없는 정정·추후 보도 내용 인용 행위, 제목·시각자료 재조합을 통한 내용 변경’을 자동적으로 ‘허위·조작 보도로 추정’하도록 법원에 명령하는 특칙까지 두고 있다. 이는 삼권분립의 한계까지 벗어난 것이다.

대놓고 검열하고 정치적 보도를 선별하는 중국과 북한식 체제에 대해서는 항시적으로 국제적 비난의 화살이나 날릴 수 있다. 선택적 봉쇄와 냉각 효과로 인해 무엇이 보도되고 무엇이 금지되는지도 모르는 새 여론 몰이가 진행될 한국에서는 지능형 언론 장악이 진행될 것이다. 지금 당장 정권 말기 권력형 비리의 폭로를 막고 곧 있을 대선에서 선거 부정 등 사실 확인을 위한 사회적 논의 자체가 초기부터 봉쇄당할 것이다.

이런 실질적 문제점들을 해소하기 위한 입법 장치는 미비하다. 우리 사회의 현 정치 문화가 이 제도들을 악용하기에 안성맞춤인 상황이다. 여당의 입법 독주 체제가 정치 검찰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활용해 검찰의 권력 견제 기능 자체를 무력화시켰듯이 언론의 무책임성에 대한 사회적 비판을 전체주의 완성의 고리로 활용한 셈이다. 소송 수행 및 입증의 부담을 원고로부터 언론사 측으로 대폭 전가시켜 대다수의 언론이 소송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만들어 언론의 권력 견제 기능이 전반적으로 위축되게 만들 것이다. 허위 보도가 줄어드는 것 이상으로 진실 보도가 봉쇄당하게 되면 세상은 결국 거짓으로 물들어 퇴보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 자랑할 만한 우리 민족의 언론 정치 역사를 퇴보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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