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지난 27일(현지 시간) 잭슨홀 미팅 기조 연설을 통해 연내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을 시작하는 게 적절할 수 있다며 긴축으로의 방향 전환에 힘을 실었다. 파월 의장이 연내 테이퍼링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다만 앞서 공개된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을 재확인한 수준인 데다 테이퍼링과 금리 인상이 직접적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 실제 금리 인상까지는 시간이 꽤 남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큰 틀의 긴축 가이드라인 확인
월가에서는 파월 의장의 연설이 전반적으로 비둘기파적이었다고 해석했다. 파월 의장이 공식적으로 연내 테이퍼링을 언급하고 나서면서 별다른 내용이 없을 것이라는 시장의 예상은 깼지만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는 주장을 고수했고 앞으로 데이터와 리스크(델타 변이 바이러스)를 잘 살펴보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은 “파월 의장이 테이퍼링 발표 시점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서두르지 않는 모습을 보인 까닭에 이날 10년물 국채 금리가 하락했다”고 전했다.
추가로 연준은 이미 7월 FOMC에서 “상당수 위원들이 연내 테이퍼링을 시작하는 게 적절하다고 밝혔다”고 결론 내렸다. 섀넌 사코시아 보스턴프라이빗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시장은 연말 전 테이퍼링 시작을 예상해왔다”며 “(파월 의장의) 연설에서 데이터 얘기가 많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시장은 바로 반응했다. 이날 미 뉴욕 증시의 주요 지수는 1% 안팎씩 올랐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과 나스닥은 각각 0.88%, 1.23% 상승하면서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미 국채 금리도 연 1.30%대로 하락했다.
고용 지표가 핵심 관건
전문가들은 다음 달 3일에 나올 8월 고용지표가 중요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일자리 상황이 예상을 크게 웃돈다면 조기 테이퍼링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고 그렇지 않으면 11월 FOMC로 넘어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미 경제 방송 CNBC는 “이제 일자리 보고서가 초점”이라며 “시장의 관심은 다음 달 3일에 나올 고용지표에 쏠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로서는 9월보다는 11월 FOMC 발표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게 월가의 분위기다. 앞으로 남은 FOMC는 9월(21~22일)과 11월(2~3일), 12월(14~15일) 3번이다. 이 가운데 12월은 회의 이후 실질적인 준비 시간이 부족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조 브루셀라스 RSM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파월은 테이퍼링이 연내 시작될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를 재확인해줬다”며 “공식 발표는 11월, 실제 시행은 아마도 12월 초일텐데 그가 델타 변이의 리스크를 거론했지만 이것이 매우 심각해지지 않는다면 경로를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매파들이 요구해온 9월 FOMC 때 테이퍼링 계획 발표는 연준의 카드에 없을 것이라며 델타 변이 환자가 감소하기 시작하면 투자자들은 11월 FOMC 발표를 준비해야만 할 것이라고 전했다.
고물가 지속 여부에 금리 대응 달라져
하지만 테이퍼링과 금리 인상은 별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날 파월 의장은 “다가올 자산 매입 축소 시기나 속도는 금리 인상과 관련해 직접적인 신호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금리 인상은 (테이퍼링 기준과는) 다르며 훨씬 더 엄격한 틀이 적용될 것”이라고 했다.
특히 파월 의장은 전반적인 급여 인상 폭이 여전히 완만하며 장기 인플레이션 기대가 높지 않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물가 상승이 일시적이며 향후 완화할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물가 대응을 위한 금리 인상은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스테이트스트리트 글로벌어드바이저스의 마이클 아론은 “금리 인상은 멀고 멀며 투자자들은 이것에 행복한 것”이라고 점쳤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2023년에야 금리가 올라갈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다만 물가 상승이 일시적이지 않다면 연준은 공격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 파월 의장도 물가 상승이 지속적이면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월가 내에서도 내년 말 금리 인상을 점치는 이들이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