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해인 내년 예산안이 발표됐다. 604조 원 규모로 올해보다 8.3% 늘어났다. 출범 당시의 400조 원과 비교하면 50% 넘게 확대돼 역대 어느 정부보다 증가 속도가 빠르다.
문제는 이 급격한 재정지출 확대가 생산가능인구가 축소되는 상황에서 진행되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15∼64세 인구는 현 정부가 출범한 지난 2017년을 정점으로 감소하고 있다. 국가 경제활동을 실질적으로 담당하는 인력이 줄어드는데 정부 지출만 늘면 세금은 누가 내라는 말인지 알 수가 없다.
국가 채무도 눈덩이처럼 늘어 내년에는 1,068조 원에 이른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추세대로 국가 채무가 늘면 올해 태어나는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각자 1억 원씩 나랏빚을 떠안게 될 것이라고 한다. 코로나19 발생으로 재정 적자가 특이하게 늘었던 기간을 제외한 평균 증가율로 추산한 전망이므로 개연성이 높다. 미래 세대에 물려주기에는 정말 부끄러운 유산이다.
여당은 올해 본예산에 추경예산을 합하면 604조 원이 넘으므로 내년 예산도 그 수준이 돼야 한다고 정부를 압박해 이를 관철했다. 그런데 추경은 전쟁, 대규모 재난, 경기 침체, 대량 실업 등이 발생한 경우 이를 복구하기 위해 지출하는 돈으로 올해는 코로나19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대규모 추경을 편성하는 바람에 지출이 이례적으로 늘었다. 내년에도 같은 액수의 돈을 써야 한다는 주장은 재해가 지속된다는 생각에서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사실 올해 쓰는 돈도 줄일 부분이 있다. 이달 6일부터 지급한다는 국민지원금이다. 지원 대상이 누구인지, 어디서 쓸 수 있는지가 오랫동안 뉴스의 관심 거리가 됐고 정부는 그 관리를 위해 머리를 짜냈는데 코로나19 상생 국민지원금이라고 이름 붙은 이 돈의 목적이 무엇인지 불분명하다. 추석 전에 지급한다니 정부가 주는 명절 보너스로 치부하면 좋겠지만 결국은 국민 세금이다. 이 돈을 받지 못하고 태어날 아이들에게는 11조 원의 나랏빚만 더 안겨주는 셈이다.
정부가 예산 확대의 근거로 내세운 것은 ‘확장 재정→경제 회복→세수 증대→건전성 개선’이라는 재정의 선순환구조론이다. 재정 확대가 경제도 살리고 재정도 건전화한다는 주장인데 이는 어느 경제 이론에도 없는 궤변이다. 경기 침체 시 확장 재정 정책은 충격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지만 민간 경제가 살아나야만 경기가 회복된다. 올해 미국·유럽·한국 경제가 높은 성장을 보이는 것은 기본적으로 코로나19에 대한 경제의 대응 능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세수가 늘어난 것은 경제가 회복돼서이지 재정 확대 덕분이 아니다.
정부는 내년 예산과 함께 오는 2025년까지의 중기재정계획을 발표했다. 재미있는 부분은 현 정부 임기 동안 8∼9%씩 늘려온 재정지출을 2023년 이후에는 5% 이하로 낮춰 잡은 것이다. 매년 40조∼50조 원씩이었던 증가액이 30조 원으로 낮아진다. 재정의 선순환 구조는 현 정부에서만 유효하니 다음 정부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의미인지 묻고 싶다.
실상은 최종 연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이 신용평가사의 경고 수준인 60%를 넘지 않게 보이려고 계획을 짜 맞춘 것이다. 그러나 신용평가사도, 국내의 많은 전문가도 중기재정계획의 2025년 채무 비율 58.8%가 지켜지리라고 믿지 않는다. 국가 채무 증가 속도를 실질적으로 억제하기 위해서는 많은 선진국처럼 재정준칙을 채택해야 한다.
선거의 해에 쓸 예산, 출발점인 정부안부터 부풀려놓았으니 국회에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그래도 국민, 특히 미래를 짊어질 청년들은 국가 재정이 빚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봐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