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2일 구속됐다. 지난 5~7월 서울 도심에서 여러 차례 불법 시위를 주도한 혐의다. 지난달 13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감염병예방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지 20일 만이다. 경찰은 그동안 여러 차례 양 위원장에 대한 영장 집행에 나섰지만 소극적인 대응으로 비판 받았다. 이날 3,000여 명의 병력을 동원해 영장 집행에 성공했지만 보여주기라는 지적이다.
양 위원장 구속 직후 민주노총은 “문재인 정권의 전쟁 선포”라며 “총파업으로 갚을 것”이라고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당장 다음 달로 예정된 총파업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8개월도 채 남지 않은 문재인 정부 말기 노사 관계가 더욱 험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5년 동안 친노(親勞) 정부로 노동에 기울어진 운동장을 보인 결과가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는 지적이다.
서울경찰청 7·3 불법시위 수사본부는 이날 오전 5시 28분께 민주노총 사무실이 입주한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 본사에 수사팀과 경찰 병력 3,000여 명을 투입했다. 경찰은 진입 40여 분 만인 오전 6시 9분께 양 위원장의 신병을 확보해 구속 절차에 착수했다. 당시 양 위원장은 경찰의 영장 집행에 응하고 동행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양 위원장은 오전 6시 29분쯤 경찰과 사옥에서 함께 나와 호송차에 탑승했다.
경찰은 지난달 18일 구속영장을 집행하기 위해 민주노총 사무실을 찾았지만 ‘수색영장을 가지고 오라’는 민주노총 측 변호인들의 요구에 물러섰다. 경찰은 지난달 18일 기자회견을 예고한 양 위원장이 민주노총 사무실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적극적으로 영장 집행에 나서지 않아 비판을 받았다. 이날 경찰이 뒤늦게 양 위원장의 신병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지만 늑장 대응, 보여주기 식 집행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민주노총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마지못해 집행에 나섰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민주노총은 거세게 반발했다. 이날 민주노총 조합원 80여 명은 오전 11시께 서울 종로경찰서를 찾아 경찰에 항의하며 양 위원장의 석방을 촉구했다. 민주노총은 입장문에서 “문재인 정권의 전쟁 선포”라며 “탄압에는 투쟁으로, 강력한 총파업 투쟁의 조직과 성사로 되갚겠다”고 날 선 비판을 내놓았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기자회견장에서 삭발식을 갖고 다음 달 20일로 예정한 110만 명이 모이는 총파업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강조했다. 민주노총은 “민주노총 죽이기의 결정판인 강제 구인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한다”며 “어느 정권도 노동자의 분노를 넘어 좋은 결과로 임기를 마무리하지 못했다”고 경고했다.
민주노총의 강경 대응 선언은 올해 각 사업장에서 총파업 같은 집단 행동을 하거나 예고한 노동조합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노사 관계의 긴장감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우려를 키우고 있다. 택배노조는 택배 기사 처우 개선을 위해 6월 총파업을 단행했고 협력사 비정규직 근로자의 직접 고용을 요구하는 현대제철 노조의 파업은 진행되고 있다. 7월에는 건강보험공단 앞에서도 비정규직 직접 고용을 촉구하는 400여 명의 집회가 이뤄지면서 원주 시민들의 원성을 샀다. 오는 14일에는 서울교통공사 노조, 다음 달 20일에는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한다.
보건 의료 공백과 물류 대란의 우려를 키웠던 보건의료노조와 HMM이 예고했던 총파업은 이날 가까스로 피했지만 반복되는 강성 파업에 대한 국민 반감이 높다는 우려가 노동계 내부에서도 나온다.
민주노총의 강경 대응이 노동계 전체로 확산될지도 주목된다. 한국노총은 이날 논평에서 양 위원장을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한국노총은 “백신 수급 상황에 대해 국민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책임을 면피할 대상을 민주노총으로 삼은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한국노총은 민주노총과 달리 노사정 대화에 참여하면서 합리적인 행보를 보여왔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공개적인 파업이 거의 없을 만큼 온건 노조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점에서 이날 정부를 향한 비판 수위는 이례적으로 높았다는 평가다. 한국노총은 2019년 김명환 전 민주노총 위원장의 구속 당시 민주노총과 연대해 석방을 요구한 전례가 있다. 만일 한국노총이 민주노총과 연대한다면 문재인 정부 집권 말기 노사 관계는 회오리에 휩싸일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