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중재법 강행 처리 시도가 전 사회적 반발에 부닥치고 나서야 비로소 잠시 늦춰졌다. 그러나 여당이 처리 시한을 미리 못 박아 놓은 만큼 이 문제는 시한폭탄처럼 9월 내내 우리 사회를 위협할 예정이다.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벌어진 이번 사태는 지난 2007년의 데자뷔를 느끼게 한다.
2007년 노무현 정부는 ‘취재 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이라는 이름으로 정부 부처 기자실을 폐쇄하고 언론의 취재 여건을 대폭 제한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물론 민주신당 이낙연 대변인도 “언론계가 한목소리로 반대하는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옳지 않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정치권·언론·학계·시민단체 모두가 반대했지만 정부는 임기가 끝날 때까지 기자실 문을 걸어 잠갔다. 그러나 기자실은 정권이 바뀌자마자 모두 원상 복구됐고, 당연히 문재인 정권에서도 활짝 열려 있다. 당시 노무현 정부의 결정이 얼마나 잘못된 일이었는지 알 수 있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오늘 문재인 정부의 ‘언론 개혁’은 법의 형태를 빌려 한층 과격해진 폭주로 이어지고 있다. 이번에는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도 연일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이처럼 국경과 이념을 초월한 반대 의견들마저 ‘뭣도 모른다’고 치부했다. 정부의 문제적 인식, 국제적 반대 여론, 입법 부작용 등 모든 면에서 이번 사태는 2007년 기자실 폐쇄 수준에 비할 수 없이 훨씬 상황이 심각하다.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를 부르짖던 세력들이 정작 집권한 뒤에는 언론과 전쟁을 선포한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노무현·문재인 정부 모두 부동산 정책 실패를 비롯해 임기 내내 중대한 실정들을 쌓아가면서 임기 막바지에는 진보 언론들조차 냉정한 평가를 쏟아냈다. 그러자 두 정권은 감시와 비판이라는 언론 본연의 역할을 끝내 견디지 못하고 폭거를 저질렀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주요 7개국(G7) 초청국 반열에 이를 정도로 명실상부한 민주주의 선진국이 됐다. 이런 한국의 민주주의를 586 운동권 세력들은 본인들만의 전리품쯤으로 여겨오더니 정작 정권을 잡은 뒤에는 민주주의를 가장 불편해하고 있다. 민주화 운동을 내세워 권력을 획득한 이들이 민주주의의 근간인 언론을 옥죄고 있다.
언론중재법에 동조하는 여당 대선 후보들의 모습을 보면서 만일 그들이 집권하면 얼마나 더 많은 민주주의적 가치들이 훼손될지 심히 우려된다. 국회 다수 의석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망치고 있는 이들에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퇴임 전 언론인들에게 남긴 말을 전하고 싶다.
“여러분들이 쓴 기사가 다 마음에 들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관계의 핵심이다. 언론이 권력자에게 아부해서는 안 된다. 언론이 비판했기 때문에 우리도 더 큰 책임감으로 일할 수 있었다. 행운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