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뒷북비즈]노다지로 탈바꿈한 ‘쓰레기 사업’…대기업, ‘폐(廢)경제’에 눈돌린다

미국·EU 탄소세 등 친환경 중요성 부각

폐플라스틱·폐배터리 차세대 먹거리로

SK지오센트릭, 폐플라스틱에 4년간 5조 투자

K배터리 3사도 폐배터리 재사용·재활용 사활





“리사이클 사업은 이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차원에서 이행하는 책임과 의무의 차원을 넘어섰습니다. 재활용 사업을 차세대 핵심 포트폴리오로 육성할 계획입니다.” (강동훈 SK지오센트릭 그린비즈추진그룹장)



기업들이 폐플라스틱·폐배터리 등 애물단지 취급을 받던 ‘폐(廢)경제’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고 사업 진출과 대규모 투자에 나서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탄소국경세를 도입하고 우리 정부도 탄소 중립을 천명한 만큼 차세대 친환경 분야를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리튬이온 배터리 자원 순환 시장은 지난 2019년 기준 15억 달러(약 1조 7,000억 원)에 불과했지만 오는 2030년에는 181억 달러(약 21조 원)로 연평균 8% 이상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2010년 전기자동차가 보급된 뒤 2018년부터 배터리 반납 물량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2025년에는 8만 4,000여 개가 쏟아져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 오창 공장 전경 /사진제공=LG에너지솔루션LG에너지솔루션 오창 공장 전경 /사진제공=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SK이노베이션·삼성SDI 등 ‘K배터리’ 3사는 배터리 투자와 함께 폐배터리 분야의 역량도 강화하고 있다. 2050년 배터리 시장 규모가 600조 원에 달하면서 폐배터리 활용 분야도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중국 CATL과 함께 글로벌 수위를 다투는 LG에너지솔루션은 폐배터리를 재사용해 만든 ‘전기차용 충전 에너지저장시스템(ESS)’ 공장을 오창에 설립했다. 배터리 사업을 분사하는 SK이노베이션은 차세대 성장 사업으로 배터리재활용(BMR)을 낙점해 내년 초 시험 공장을 완공하고 2025년 상업 가동에 들어갈 계획이다. 삼성SDI도 폐배터리 전문 기업과 협업해 관련 사업을 강화할 방침이다.

폐배터리는 리튬·니켈·구리 등을 추출해 재활용하거나 배터리 팩이나 모듈 단위로 재사용된다. 현대차그룹도 OCI·한국수력원자력 등과 협력해 폐전지를 활용한 ESS를 태양광 발전 시스템에 접목하는 실증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폐플라스틱도 대기업들이 눈독을 들이는 분야다. 친환경 기업으로의 변신을 선언한 SK지오센트릭은 폐플라스틱 재활용 사업에 향후 4년간 5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기존 석유화학 업체에서 폐플라스틱 재활용을 주도하는 글로벌 도시 유전 기업으로 탈바꿈하겠다는 것이다.



롯데케미칼은 2024년까지 울산 2공장에 1,000억 원가량을 투자해 11만 톤 규모의 화학적재활용페트(C-rPET) 공장을 만들기로 했으며 SK케미칼은 화학적 재활용 방식으로 만든 코폴리에스터 ‘에코트리아 CR’ 소재를 이달부터 상업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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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화학·배터리 기업들이 속속들이 ‘폐(廢)경제’로 눈을 돌리는 것은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라고 업계에서는 입을 모은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주요 국가가 연일 탄소 중립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데다 친환경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눈높이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재활용 시장이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성장 가능성도 커 ‘탄소 배출 업종’으로 낙인찍힌 기업에 버려지는 플라스틱과 배터리를 재활용하는 일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LG화학·롯데케미칼·SK케미칼·SK지오센트릭·SKC·한화솔루션 등 주요 화학사는 플라스틱 재활용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연구개발(R&D)과 업무협약(MOU) 등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과거 폐플라스틱 재활용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물리적 재활용을 가리켰다. 페트(PET)와 폴리에틸렌(PE)·폴리프로필렌(PP) 등 플라스틱을 수거해 씻은 다음 녹여 다시 사용하는 방식이다. LG화학이 이너보틀에 소재를 제공해 이를 화장품 용기로 만들고 사용 후 다시 회수해 재활용하는 사업이 이에 해당한다. 코오롱인더스트리의 경우 LG생활건강과 롯데알미늄에 재활용 플라스틱(PCR) 원료를 사용한 폴리에스터 필름을 공급한다. 이러한 물리적 재활용이 전체 플라스틱 재활용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0%가 넘는다.

최근 석유화학 업체들은 물리적 재활용을 넘어 플라스틱을 완전히 분해해 원료 상태로 되돌리는 화학적 재활용을 시도하고 있다. 황정준 그린플라스틱연합 사무총장은 “플라스틱을 물리적으로 리사이클하기 위해서는 깨끗한 플라스틱을 수거해 이를 세척하고 다시 만드는 과정이 핵심인데, 현실적으로 불순물이 들어가지 않은 페트병을 수거하는 일이 쉽지 않다”며 “화학 업체들은 기존에 갖고 있는 기술력과 인프라가 있기 때문에 중소기업이 하기 어려운 화학적 재활용 분야를 보완해 자원 선순환을 이룰 수 있다”고 설명했다.

SK케미칼은 해중합 기술과 생산 설비를 보유한 중국 기업 수예의 지분 10%를 사들여 화학적으로 재활용된 원료를 연간 2만 톤 사들일 수 있게 됐다. SKC는 일본 간쿄에네르기와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올해 폐플라스틱 열분해 파일럿 설비를 설치해 내년 상반기까지 상업화 기술을 확보할 계획이다.

세계 폐플라스틱 시장 규모도 점점 커지고 있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지난 2019년 1,310만 톤이었던 플라스틱 재활용 규모는 오는 2030년 2,010만 톤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폐배터리의 자원 순환 역시 친환경 사업으로 크게 조명받고 있다. 전기자동차와 수소차 등 친환경 차량의 보급이 확대되며 올해부터 수명을 다한 폐배터리들이 쏟아져나올 것으로 관측된다. 리튬이온 배터리 자원 순환 시장은 2019년 기준 15억 달러(약 1조 7,300억 원)에 불과하지만 2030년에는 181억 달러(약 21조 원)로 연평균 8.2%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주로 생산하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높아 성능이 저하되더라도 다른 분야에 재사용이 가능하다. 국내외 연구기관들은 전기차 리튬이온 배터리가 초기 용량의 70~80% 수준에서 재사용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재사용 후에는 폐배터리를 분해해 리튬·코발트·니켈·망간 등의 희귀 금속을 추출해 재활용할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에서 제너럴모터스(GM)와의 합작법인 ‘얼티엄셀즈’를 통해 북미 최대 배터리 재활용 업체인 ‘리-사이클(Li-Cycle)’과 폐배터리 재활용 계약을 맺었다. 얼티엄셀즈는 이번 계약을 통해 ‘셀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배터리의 코발트·니켈·리튬·흑연·구리·망간·알루미늄 등 다양한 배터리 원재료를 재활용할 예정이다.

폐배터리 재활용(BMR) 사업을 본격 추진 중인 SK이노베이션은 지난달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2022년 초 BMR 시험 공장을 완공하고 2025년 상업 공장을 가동할 것”이라며 “2025년 약 6만 톤의 재활용 물량 확보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접근성을 고려해 미국·유럽·중국 등에 공장 진출 가능성도 내비쳤다. 삼성SDI는 국내 사용 후 전지 시장을 선도하는 피엠그로우에 지분을 투자해 전기버스 배터리를 재활용한 에너지저장장치(ESS) 개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전희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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