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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이 만난 사람] 김복철 이사장 "출연연, 각자도생 안돼…국방硏과 융합 연구도 확 늘릴 것"

■ 김복철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이사장

융합연구 사업에서 국방은 빠져…미국처럼 '民軍' 시너지 시급

과제 중심 연구로 단기성과 매몰…고위험 도전 문화 구축해야

'과학기술, 장기 관점서 접근·협업환경 필요' 대선주자에 건의도

김복철 신임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이사장이 과총회관 사무실에서 가진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과학기술 출연연끼리는 물론 국방 쪽 출연연과의 융합 연구를 대폭 확대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진 제공=NST김복철 신임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이사장이 과총회관 사무실에서 가진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과학기술 출연연끼리는 물론 국방 쪽 출연연과의 융합 연구를 대폭 확대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진 제공=NST






“이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끼리 융합 연구를 확대하는 것은 물론 국방 분야 연구기관과도 융합 연구를 대폭 확대하려고 합니다. 미래 성장 동력 확충을 위한 기술 사업화와 국민 삶의 질 개선에도 적극 나서겠습니다.”



김복철(62·사진) 신임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이사장은 최근 서울 역삼동 과학기술회관 사무실에서 가진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출연연이 담을 쌓고 각자도생하는 경향이 있고 단기 성과에 매몰돼 도전적 연구 문화가 부족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지난 2014년 기초기술연구회와 산업기술연구회가 통합한 NST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 등 과기정통부 산하 25개 출연연을 관할하는 장관급 조직이다.

NST는 출범 이후 출연연 간 3년 또는 6년 과제로 에너지, 반도체, 인공지능(AI), 감염병 등 17개(6개는 종료) 융합 과제를 추진해왔으나 민군(民軍) 합동 연구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현재 출연연들과 기업들이 참여하는 11개 융합연구단(각각 연 20억~100억 원 규모) 중 ‘국방 무기 체계용 핵심 반도체 부품 자립화 플랫폼 개발’이 있으나 정작 국방부의 방위사업청 산하 국방과학연구소(ADD)는 참여 명단에 없다.

대담·정리=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김 이사장은 ‘정부 연구기관 간, 심지어 연구기관 내에서도 여전히 칸막이가 높다. 중복 연구도 많다’는 지적에 대해 “출연연들이 조금만 힘을 모으면 훨씬 가치가 큰 연구를 할 수 있다”며 “NST 소관 출연연에서 100개가 훨씬 넘는 융합 연구 과제를 ADD에 보내 이 중 연 10억~20억원 규모의 5개 민군 융합 연구 과제를 연내 착수 하기로 협의했다. ADD도 이전과 달리 출연연과의 협력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우리나라에 대해 미사일 개발 규제를 해제하고 아르테미스(미국 주도의 국제 달 탐사 프로그램) 참여를 허용하면서 민군 공동 기술 개발 가능성도 커졌다. 청와대와 과기정통부도 출연연이 국방 쪽과 융합 연구를 통해 시너지를 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항우연·ETRI·기계연구원 등이 ADD와 함께 융합 연구를 통해 레이더나 스텔스 기능 소재 개발 등을 추진해볼 수 있는 것이다. 항우연의 경우 ADD와 위성 개발에는 많이 협력했으나 발사체 쪽은 미국의 견제 등으로 협력하지 못했다. 김 이사장은 “미국에서 민군 융합 연구가 활발한 것처럼 우리도 출연연과 ADD 간 연구 협력을 대폭 확대할 것”이라며 “국방력도 강화하고 군의 기술을 민간에 적용해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도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출연연 간 융합 생태계 구축을 강조하며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과 도전적·자율적 연구 문화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도 거듭 피력했다. 현재 출연연은 연구원들이 연구비 중 절반가량은 경쟁을 통해 정부 기관이나 기업에서 연구 과제를 몇 개씩 수주해 동시에 수행하느라 단기 성과에 매몰돼왔다는 지적을 받는다. 올해 약 5조 원의 출연연 예산 중 정부가 연구기관에 지원하는 출연금 비중은 41.2%다. 연구원들이 국가의 중장기 성장 동력 확충이나, 기관끼리는 물론 기관 내에서도 융합 연구에 상대적으로 소홀해질 수 있고 선도(퍼스트무버) 연구나 기초·원천 연구를 수행하는 데 제약이 따르는 구조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과기정통부나 NST도 그동안 출연연의 이런 과제중심제도(Project Based System·PBS) 운영 방식에 대해 문제점을 알고 고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김 이사장은 ‘PBS의 혁신이 이뤄지지 않아 임팩트 있는 연구 성과가 많지 않다’고 지적하자 “과기정통부 등 여러 부처의 협조를 구해 PBS 사업에서 블록 펀딩(묶음 예산) 등 중대형화하는 쪽으로 바꿔가려고 한다. 융합 연구 생태계를 확실히 구축해 큰 성과를 내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연구비의 10~20%는 출연연 간 자발적인 융합 강화를 목표로 쓰도록 해야 한다는 포부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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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험·도전적 연구 문화를 위해 성실하게 도전했다면 성패를 떠나 인정해주는 ‘프라이드(PRIDE) 시스템’도 확산시키기로 했다. 그는 “출연연이 5조 원의 예산 중 코로나19, 한국판 뉴딜, 탄소 중립,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등 국가 현안 핵심 기술 개발에 1조 5,000억 원을 투입하고 있다”며 “코로나19 차세대 백신이나 양자 컴퓨터 개발 추진 등 출연연에서 감당해야 할 융합 연구가 많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KIST·생명공학연구원·화학연구원·안전성평가연구소 등이 융합해 먹거나 비강점막에 뿌리는 차세대 백신 개발을 공동 추진하는 것과 생명연에서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 플랫폼을 추진하는 것을 예로 들었다. ETRI와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등 7개 기관의 양자 컴퓨터 연구나 화학연, 에너지기술연구원, KIST, 지질자원연구원 등의 탄소 중립 기술 개발도 거론했다.



김 이사장은 기업에 대한 기술이전과 연구원의 창업 등 기술 사업화를 적극 유도하겠다는 뜻도 나타냈다. 이를 위해 독일 프라운호퍼연구회처럼 산학 협력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NST 차원의 기술이전 전담 조직(TLO)도 만들겠다고 했다. 그는 출연연의 기술료 수입이 2019년 처음으로 1,000억 원 이상을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1,200억 원까지 늘었다고도 소개했다. 그는 “출연연마다 쓸모없는 ‘장롱특허’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연구원의 창업 겸직 허용 기간도 기존 ‘3+2년’ 또는 ‘3+3년’에서 ETRI의 경우 아예 6년으로 늘리려고 하는 등 창업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창업 겸직 기간을 너무 길게 가져가면 창업에 올인하지 않을 수도 있고 조직 내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문제 제기도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출연연과 대학에서 지금도 ‘논문을 위한 논문, 특허를 위한 특허’가 많다는 지적에 대해 적극 해명했다. 그는 “과거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연구자 개인을 위한 것이 많았다. 조직이나 지원 기관에서 숫자를 따지는 정량 평가를 했기 때문”이라며 “특허 유지 관리비도 많이 들어 일부에서는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꼬집기도 했다”고 자성했다. 이어 “7~8년 전부터 장롱특허에 대한 문제점이 부각돼 현재 각 출연연마다 특허의 질을 많이 따진다”며 “갈수록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기관과 연구자 평가 시 특허 활용률이나 논문 피인용도를 따지는 정성 평가 쪽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연구 평가와 기관 평가를 각각 6년, 3년으로 늘린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했다. 다만 올해 출연연의 특허는 총 4만 5,753건으로 이 중 36.1%가 활용됐지만 5년 이상 미활용 특허도 10.2%에 달했다.



그는 ‘출연연 분원이 100개가량 되지만 지역 연구개발(R&D)의 허브 역할을 못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내년에 지역 연계 협력 사업을 발굴하기 위해 20억 원의 예산을 배정했는데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적극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김 이사장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일부에서 제기된 출연연 통폐합 이슈에 대해서는 “조직을 흔들기보다는 현 체계를 유지하며 시너지를 내는 게 맞다”고 선을 그었다. 대신 융합 연구를 일상화하고 출연연과 연구원들에 대한 감사 시스템을 NST로 일원화하는 등의 통합 운영에 방점을 두겠다고 했다. 현 정부 들어 NST는 출연연과 연구원들에 대한 중복 감사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고 연내 감사위원회와 감사단을 구성할 방침이다. 그는 연구원 채용 시 학력·경력을 따지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 문제와 관련해 “과기정통부와 기획재정부에 완화를 건의했고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여야 대선 주자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느냐’는 질문에 “과학기술 정책은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연구 자율성을 높이고 도전적이고 협력적인 연구가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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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서울 △1983~1996년 연세대 지질과학 학사·석사·박사 △2015∼2018년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정책본부장 △2017∼2018년 대한자원환경지질학회장·한국석유지질퇴적학회장 △2019∼2021년 대덕연구개발특구기관장협의회장 △2018∼2021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장 △2021년 7월∼NST 이사장


고광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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